누가 돌보고, 누가 돌봄을 받을까... 이 관계를 정의하는 법 작성일 04-20 32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이 장면 이후 우리 사회는] 넷플릭스 〈나의 특별한 형제〉, 돌봄의 언어를 다시 묻다</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xDL2jXLxzl"> <p contents-hash="295ac72552c9f0ea91f3809ccfa31717b574faf0ed3dd5512f7c079dd451310a" dmcf-pid="yq1OpJ1y3h" dmcf-ptype="general">[이 장면 이후 우리 사회는] 영화, 방송, 책등 작품 속 한 장면을 통해, 오늘의 사회적 장면과 감정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기자말></p> <p contents-hash="9b77fa4cbb46d3f2c11833db7a223f5949d0b23ad6086c4dd063a31b0add5fca" dmcf-pid="WymJhqmj7C" dmcf-ptype="general">[안상우 기자]</p> <p contents-hash="e599d763748d6e7363a3e3801d2152d69b74cb1291e63c769d982c3c3f148733" dmcf-pid="YWsilBsAzI" dmcf-ptype="general">당신에게도 그런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깊고, 동료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된. 서류 한 장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 사람 없이는 하루가 온전히 돌아가지 않는 관계.</p> <p contents-hash="e8cebd6255aeb728641a8b3723ef245a8412a484607ca51aa641b3b0a76d6a16" dmcf-pid="GYOnSbOczO" dmcf-ptype="general">그런 관계를누군가 앞에서 설명해야 했던 순간이 있다면, 당신은 그때 무엇이라고 했을까.</p> <p contents-hash="8c54cfb8e2648b84efa961d4043779d078b35b73fb01a5d9daa586e33e10f156" dmcf-pid="HGILvKIk0s" dmcf-ptype="general">휠체어에 앉은 사람과 그 휠체어를 미는 사람이 있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우리는 거의 망설임 없이 역할을 나눈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보다, 우리는 먼저 가늠해 본다. 누가 더 의지하고 있는지, 누가 더 감당하고 있는지.</p> <p contents-hash="ad7d96327aea66182a243e1430c3950b40ecf7c417a9fe9929db5d2519cf1465" dmcf-pid="XHCoT9CEUm" dmcf-ptype="general">그런데 애초에 그 구분이 잘못된 것이라면. 미는 사람 없이는 이동할 수 없고, 앉은 사람 없이는 방향을 잃는다면.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누가 누구의 짐이고, 누가 누구의 이유일까.</p> <p contents-hash="15820ad2777380527c2de1913c45d93b582700322fdf0ec1a6796cb8afa54a6f" dmcf-pid="ZXhgy2hDpr" dmcf-ptype="general">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시간을 통해, 그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 질문이 무너지는 곳이, 바로 이 두 사람 사이이다.</p> <div contents-hash="209edc5bd88e46a2ce8ed1ae6fc47fd3d638821016cfe56cdd9d62429ff82f65" dmcf-pid="5ZlaWVlwUw" dmcf-ptype="general"> <strong>약한 사람끼리 돕고 사는 것</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94cf967c8d2c5d12f200a69fc7cb88e8602cce6c1b3df3d4602f3f8e9e545603" dmcf-pid="1n60RC6bzD"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20/ohmynews/20260420134709772ikss.jpg" data-org-width="1280" dmcf-mid="8PlOpJ1yz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0/ohmynews/20260420134709772ikss.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나의특별한형제</strong> 메인예고편</td> </tr> <tr> <td align="left">ⓒ 넷플릭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4d27b92bef14369e0f570537538867e4c8eb17410914109cd26bfb4953c1e772" dmcf-pid="tLPpehPK7E" dmcf-ptype="general"> 강세하(신하균)는 목 아래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가 있다. 지적장애인 박동구(이광수)는 세상을 혼자 헤쳐나가지 못한다. 둘은 복지시설 '책임의 집'에서 만나 20년을 함께 살아왔다. 박주민 신부(권해효)가 세상을 떠나고 시설이 폐쇄 위기에 처하자, 두 사람은 처음으로 헤어질 위기에 놓인다. 영화는 그 위기 앞에서 이 관계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div> <p contents-hash="0d2fad23f7f29675046dc580411f7ed4fc29ecfa846eabfeb7557490a3322777" dmcf-pid="FoQUdlQ93k" dmcf-ptype="general">세하는 동구에게 공부를 가르쳤고, 동구는 세하의 휠체어를 밀었다. 몸이 되어주고, 생각이 되어주었다. 시설을 세운 박주민 신부는 말했다. "약한 사람들은 약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거라"고. 세하와 동구는 그 말을 몸으로 살았다.</p> <p contents-hash="09bd22155f3798d9d35dce2560f1f55ab1158de51a14e5bb6a78f19e25d695ba" dmcf-pid="3gxuJSx2zc" dmcf-ptype="general">이 관계는 사회가 '돌봄'이라고 부르는 것과 정확히 다른 자리에 있다. 돌봄은 보통 방향이 있다. 제공하는 쪽과 받는 쪽. 강한 쪽과 약한 쪽. 그러나 세하와 동구 사이에는 그 방향이 없다. 결핍이 관계의 조건이 된 삶. 가진 것이 없어서 오히려 줄 수 있었던 삶.</p> <p contents-hash="b81403346f18e628382ac6168e5221c428b62983aff592bfc4ade701748f469f" dmcf-pid="0aM7ivMVzA" dmcf-ptype="general">현실도 다르지 않다. 노부모가 성인 장애 자녀의 하루를 함께 살아내고, 장애가 있는 형제가 서로의 몸과 판단이 되어준다. 제도 바깥에서, 이름 붙이기 어려운 관계들이 삶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이 관계들은 여전히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누가 돌보고, 누가 돌봄을 받는가.</p> <div contents-hash="d97fa3e660abf96fc72282eca8893eb97bba3d4a48809a3bfd74b82ecc716972" dmcf-pid="pNRznTRf3j" dmcf-ptype="general"> <strong>그 관계에 이름을 붙인다면</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7c74f317684beecdfe9a60800cb3a04ed9d0bddc7b4db737827001845903cec" dmcf-pid="UjeqLye4FN"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20/ohmynews/20260420134711064paic.jpg" data-org-width="1280" dmcf-mid="66JMsUEo0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0/ohmynews/20260420134711064paic.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나의특별한형제</strong> 메인예고편</td> </tr> <tr> <td align="left">ⓒ 넷플릭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02b5ee5c20a3f06dcf82905ea1dd2dd9926bf6c31af725cae03ae8e74d9d274d" dmcf-pid="uymJhqmjpa" dmcf-ptype="general"> 박주민 신부가 세상을 떠나자 지원이 끊겼다. 시설은 폐쇄 수순을 밟았고, 입소자들은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절차대로였다. 그러나 관계는 그 절차 안에 없었다. </div> <p contents-hash="8e78826c8c4f3b5821b675d517853ffe550717c0a10e2e7f03ca8b7c0a8c42bd" dmcf-pid="7WsilBsAFg" dmcf-ptype="general">세하는 동구의 법적 후견인이 되려 했다. 상대 변호인은 물었다. 장애인끼리 사는 것과 비장애인 가족과 함께 사는 것,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냐고.</p> <p contents-hash="b6f7d556435be5ab6acff8b4ca0984d31c08343d143e3e5ea945d7876e705c6b" dmcf-pid="zYOnSbOcuo" dmcf-ptype="general">잠시 말이 멈췄다. 세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몸이 그 질문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법정 한가운데서,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내듯이.</p> <p contents-hash="dc0c31831f05849ea953a4cd79eabd48f07e3555707f8933bb2e2eaf5acd3681" dmcf-pid="qGILvKIk3L" dmcf-ptype="general">그 움직임에는 설명보다 먼저 도착한 감정이 있었다. 자신의 관계를 제도의 언어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의, 말로 다 꺼낼 수 없는 무언가. 그가 겨우 만들어낸 방향 끝에서, 말이 따라 나왔다.</p> <p contents-hash="e292c6323d1fe96256ffaa62475cfe3fc3f53d1af0a50c21acca5d714cb127e1" dmcf-pid="BHCoT9CEzn" dmcf-ptype="general"><span>"내가 동구를 이용했다면 동구도 나를 이용한 겁니다. 동구가 나를 도왔다면 나도 동구를 도운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살아온 거라고요."</span></p> <p contents-hash="c829f20323bfc65dab92798726159326879bbcd4a1bb64abdedcca387e796195" dmcf-pid="bXhgy2hD0i" dmcf-ptype="general">법정은 그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곳이 요구한 것은 말이 아니라 증명이었다. 이 관계가 공식 요건에 부합하는지, 수혜자는 누구이고 보호자는 누구인지. 이 관계는 분류할 수는 있어도, 끝내 설명되지는 않는다.</p> <p contents-hash="612fa87cd073025ee1b4a49e62ed61953c2047b61050f963e7b081325b665363" dmcf-pid="KZlaWVlwzJ" dmcf-ptype="general">2026년 3월 27일, 통합 돌봄이 전국에서 시행됐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살던 곳에서 의료와 요양, 복지 서비스를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방향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제도 안에서도 돌봄은 역할로 나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p> <p contents-hash="3fb170040a99ac0df0817898a1441504ca8295f812c83496e9ac692382549e70" dmcf-pid="95SNYfSr7d" dmcf-ptype="general">세하와 동구처럼 그 어느 쪽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관계는, 신청서의 어떤 칸으로도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20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이 제도는 묻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 관계가 어떻게 이해되는가에 있다.</p> <div contents-hash="afbbb0bb7a0888cb21b0d387568da1e29f26d10824d285b1124f7987ca32fd00" dmcf-pid="21vjG4vm0e" dmcf-ptype="general"> <strong>우리가 만들어야 할 돌봄의 언어</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5bfd49f8ea9a3918c1547776aa3abc9271e14283508ae34f4277cd235ff7269" dmcf-pid="VHzW9AztzR"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4/20/ohmynews/20260420134712317elsk.jpg" data-org-width="1280" dmcf-mid="Qp1OpJ1yF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0/ohmynews/20260420134712317elsk.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나의특별한형제</strong> 메인예고편</td> </tr> <tr> <td align="left">ⓒ 넷플릭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fdbb0f46568790b85a1e8786eb3c538808917e0e7bb1fa591ed26b38f7e59259" dmcf-pid="fXqY2cqF0M" dmcf-ptype="general"> <span>"우리 그 사람들한테 가족 아니야. 짐이라니까."</span> </div> <p contents-hash="21140a8e9e6ed88808326da047fccae35285142caeeb4d3f6e05f7975386add8" dmcf-pid="4ZBGVkB3Fx" dmcf-ptype="general">세하는 알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돌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가 가족을 돌봄의 기본 단위로 전제하는 동안, 그는 이미 그 바깥에 있었다. 세하의 그 말은 체념이 아니었다. 관계를 먼저 역할로 갈라놓는 시선에 대한 거부였다.</p> <p contents-hash="c444f8bc4352b7eecae1f7b10e33decabac10a9655fa524d24083edffca8391c" dmcf-pid="85bHfEb07Q" dmcf-ptype="general">돌봄은 어느 순간부터 서비스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누가 제공하고, 누가 수혜를 받는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계되는가. 통합 돌봄이 시행된 이후에도 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신청하고, 조사받고, 분류되고, 연계된다. 그 과정 어디에도 세하가 힘들게 고개를 돌리며 꺼낸 말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p> <p contents-hash="3f0e165f4e73eba478fec9c88e01dbfe6f54214008c5d97d80b0fe4b31d6f99f" dmcf-pid="61KX4DKpUP" dmcf-ptype="general">지금의 돌봄은 먼저 묻는다. 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그래서 활동 지원사와 서비스를 연결하고, 지원은 전달된다. 하지만 다른 질문도 가능하다. 이 사람에게 이미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세하와 동구의 경우, 지금의 방식은 두 사람을 각각의 수혜자로 나눈다. 그러나 20년을 함께 살아온 관계라면,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지원이 될 수는 없을까.</p> <p contents-hash="71a3656c4c9bf557a767a73f22c638467db48d5a9114ed7a143ac1db969e3605" dmcf-pid="Pt9Z8w9Up6" dmcf-ptype="general">제도가 관계를 이해하도록 설계되기는 어렵다. 관계는 측정되지 않고, 수치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하는 것은 다르다. 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묻기 전에 이 사람 곁에 이미 있는 관계는 무엇인가,라고 먼저 묻는 것. 그 질문 하나가 설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p> <p contents-hash="7603b28d9b63b04c6b3ee74951d599fcd247519c3270a5642c0c599732a3c67b" dmcf-pid="QF256r2uz8" dmcf-ptype="general">육상효 감독은 말했다. "강한 존재라면 혼자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않고 버텨낼 수 있다."</p> <p contents-hash="838eb43fa81040716d25825c747b4d25cd6bad1921fe61075555b096c74bc661" dmcf-pid="x3V1PmV704" dmcf-ptype="general">돌봄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에 더 가깝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돌봄의 언어는 여전히 누가 누구를 돕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돌봄의 언어는 이미 그 순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하가 힘들게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에.</p> <p contents-hash="544985af0681ede0a42c0b8776ff1651f81e1c50e29cc1a709ac59463366bede" dmcf-pid="ynrdCzrN0f"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ezmind921에도 실립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냉장고가 아니라 쓰레기통"…김지유, 위생 수준 처참한 '공포 하우스' 공개 ('미우새') 04-20 다음 86세 전원주, 인공관절 수술 이후 무대서 춤까지…“여러분 덕분” 04-2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