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자력 자립 이끈 이창건 前 원자력문화진흥원장 별세 작성일 07-07 3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b0qMLgWIXR">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75367cee8012b800bdf18821353f4f47b36dbe37b0cba951c74efe5276972256" dmcf-pid="KpBRoaYCGM"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YONHAP PHOTO-7735> 한국 원자력 자립 이끈 이창건 전 원자력문화진흥원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우리나라 원자력의 태동기부터 기술 자립까지 전 과정을 이끈 1세대 공학자이자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인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6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2026.7.6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6-07-06 19:33:05/<저작권자 ⓒ 1980-2026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7/07/chosun/20260707111121258mmjj.jpg" data-org-width="2222" dmcf-mid="bBm3uzLxY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07/chosun/20260707111121258mmjj.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YONHAP PHOTO-7735> 한국 원자력 자립 이끈 이창건 전 원자력문화진흥원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우리나라 원자력의 태동기부터 기술 자립까지 전 과정을 이끈 1세대 공학자이자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인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6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2026.7.6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6-07-06 19:33:05/<저작권자 ⓒ 1980-2026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c83196509b60f59b81c419193f699280a90b183f091adbe7cae5137232c3d42c" dmcf-pid="9UbegNGhZx" dmcf-ptype="general">우리나라 원자력의 태동기부터 기술 자립까지 전 과정을 이끈 1세대 원자력 공학자 이창건(96)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이 지난 6일 별세했다. 분단과 6·25 전쟁, 근대화와 산업화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겪으며 과학기술 입국의 길을 연 선각자로 꼽힌다.</p> <p contents-hash="40c499a793a145b3384ce1c96dc5b6bcf20ec769ffacc775fd8183603645bdf3" dmcf-pid="2uKdajHlGQ" dmcf-ptype="general">이 전 원장은 1930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났다.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했고, 1949년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6·25전쟁 때는 미군이 이북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운영한 비정규 첩보 조직 켈로(KLO) 부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p> <p contents-hash="208155aa1962f5e439c6ecbc37d62f2425940b84b33627196a889d30e5668119" dmcf-pid="V79JNAXSHP" dmcf-ptype="general">그는 1950년대 후반 자생적 원자력 연구 모임인 ‘뉴클리어 스터디 그룹’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내 원자력 기반을 닦는 데 참여했다. 이 모임은 원자력법 제정과 정부 원자력 기구, 연구소 설립 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p> <p contents-hash="b9e8df3eb2e2449ddf55ee289e0947ab3c300dbe180c846f3186bf7f6b3d3ca0" dmcf-pid="fz2ijcZv16" dmcf-ptype="general">이 전 원장은 1959년 국내 첫 원자로인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 도입과 건설 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원자력 연구관 해외 파견으로 미국 국제원자력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귀국 직전 트리가 마크-2 운전 훈련을 받으라는 긴급 훈령을 받고 시험에 합격해 한국 최초로 원자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p> <p contents-hash="a9ce56a2c509a57e4883886fe6d0693d1780b5145c5e36e7b6bba0bc43bb1d7b" dmcf-pid="4hWu9VcnY8" dmcf-ptype="general">트리가 마크-2의 출력을 100㎾에서 250㎾로 높이는 출력 증강 사업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해마다 외국에서 사 오던 중성자원을 재생식으로 바꾼 일은 국내 원자력 기술 국산화의 효시로 꼽힌다.</p> <p contents-hash="7b27f7de6f123fbf5d211cee80e1fa6540acc907c2c380584461ee42250bf273" dmcf-pid="8lY72fkL54" dmcf-ptype="general">이 전 원장은 우리나라 최초 원전 부지 선정 사업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는 고리를 첫 원전 부지로 선정하는 작업을 주도하며 이후 국내 원전 부지 선정의 모델을 구축했다. 또 한국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제정을 20여 년간 이끌며 한국 전력산업 기술의 표준화와 국제화에 기여했다.</p> <p contents-hash="364beeb8187e4f12a8bc45132acea98bdcf7516c37e86dd73d07cc7eb98c9e1e" dmcf-pid="6SGzV4EoYf" dmcf-ptype="general">국내 첫 소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 원자로 개발 과정에서도 역할을 했다. 스마트 원자로는 전력 생산과 해수 담수화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소형 원자로로, 이 전 원장은 관련 기술 개발을 통해 한국 원자력 기술의 해외 진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p> <p contents-hash="2487539091317997b61c4685a6f1c20f376c020cdd0c03297d3705bde0d926e8" dmcf-pid="PvHqf8DgYV" dmcf-ptype="general">그는 한국원자력학회 창설 회원으로 초대 편집위원을 지냈고, 국제원자력학회협의회(INSC) 회장도 맡았다. 2012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INSC 글로벌 어워드를 받았고, 2017년에는 정부가 선정한 초대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32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p> <p contents-hash="18d6082e1d06f63f1a9533c524f52e86fa931c2e2909fa837ece680c5aa3a942" dmcf-pid="QTXB46waX2" dmcf-ptype="general">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9시 30분, 장지는 광릉추모공원이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필리핀 영웅 이알라의 위대한 도전, 파올리니 앞에서 멈추다 07-07 다음 "'AI 도입했다' 자족하면 안 돼…'AI가 움직이는 회사'만 생존" [2026 한경 AX 서밋] 07-0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