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84] 당구에서 왜 ‘삑사리’라고 말할까 작성일 05-14 24 목록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25/2026/05/14/202605140608210858305e8e9410871751248331_20260514060908101.png" alt="" /><em class="img_desc">여자프로당구 전설 김가영이 큐로 조준하는 모습</em></span> 당구장에서 “아, 삑사리 났네”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거의 공식 용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작 당구 교본에는 ‘삑사리’라는 기술 용어가 없다. 공식 용어는 영어 ‘cue miss’이다. 큐 끝의 팁이 수구를 정확히 맞히지 못해 미끄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본 코너 1774회 ‘당구용 막대기를 왜 ‘큐(cue)’라고 말할까‘, 1777회 ’당구에서 왜 ‘큐볼’이라 말할까‘ 참조)<br><br>삑사리는 사실 당구장에서만 쓰이던 말이 아니다. 노래를 부르다 음이 틀어졌을 때도 “삑사리 났다”고 했고, 마이크가 찢어지는 잡음을 낼 때도 같은 표현을 썼다. 즉, 원래는 “의도한 흐름에서 벗어나 우스꽝스럽게 틀어진 소리”를 뜻하는 생활 언어였다.<br><br>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음악에서 악기를 잘못 사용할 때 이 말을 쓴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99년 8월26일자 ‘‘김복수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압도적 好演‘ 기사는 ’2악장 도입부 중요한 몇마디에서 ‘피콜로 클라리넷’ 삑사리는 아쉽다. 이는 병가상사(兵家常事)다. 그 티를 지적하기에는 맑고 수려한 부분이 더 크고 압도적이었다. 개인적으론 3악장 아다지오에서 첼로파트가더 리치했으면 싶다‘고 전했다.<br><br>당구 용어 ‘큐미스’는 영어 cue miss를 음차한 말이다. 당구 큐대를 의미하는 ‘cue’와 ‘빗맞히다’ ‘놓치다’라는 의미인 ‘miss’의 혼성 표현이다. 문자 그대로는 ‘큐가 빗나갔다’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는 보통 한 단어처럼 붙여서 ‘miscue’라고 표기한다.<br><br>흥미로운 건 이 단어의 구조다. 영어의 miscue는 사실 당구 이전부터 존재했다. 원래는 연극이나 공연에서 쓰이던 말이었다. 배우가 자기 차례를 놓치거나, 잘못된 신호(cue)를 받았을 때를 뜻했다. 다시 말해 ‘큐를 잘못 받다’는 의미였다. 이 표현이 당구로 넘어오면서 뜻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br> 한국에서는 이 영어 표현이 직접 정착하기보다, 큐 끝이 미끄러질 때 나는 특유의 소리를 따라 삑사리라는 토착 표현이 더 널리 퍼졌다. 한국 당구 문화에서는 기술 용어인 큐미스보다 생활 언어인 삑사리가 훨씬 생생하게 살아남은 셈이다<br><br>삑사리의 정확한 국어학적 정설은 아직 없다. 다만 대체로는 의성어 ‘삑’과 접미적 표현 ‘-사리’가 결합해 생긴 속어로 본다. 한국어에서 ‘삑’은 원래 기계음이나 금속 마찰음, 또는 음이 틀어질 때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다. ‘-사리’는 표준 접미사라기보다 속어적 변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한국 구어에서는 어떤 상태를 우스꽝스럽거나 과장되게 만들 때 뒤에 리듬감 있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다. 삑사리는 문자 그대로 뜻을 분석하기보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굳혀 쓴 생활 언어에 가깝다.<br><br>재미있는 건 이 말이 당구장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1970~80년대 대중음악·공연계에서 먼저 널리 쓰였다. 이 표현이 당구장에서 쓰이게 된 건 큐미스 순간 나는 특유의 날카로운 마찰음이 마치 음향 장비의 ‘삑’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br><br> 흥미로운 점은 큐미스가 단순히 초보자의 실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로 선수들도 극단적인 회전을 시도하다가 삑사리를 낸다. 오히려 고난도 기술을 욕심낼수록 큐 끝과 수구의 접점은 위험해진다. 그래서 삑사리에는 묘한 인간미가 있다. 완벽해 보이는 선수도 한순간 “삑” 소리와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당구가 결국 물리학만이 아니라 감각과 심리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삑사리라는 말이 살아남은 이유는 정확성보다 공감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소리를 내봤고, 그 민망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자료 이전 “공포영화 침체기 뚫고 글로벌 1위”… ‘기리고’가 통하는 진짜 이유 05-14 다음 ◇오늘의 경기(14일) 05-14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