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에서 도망친 대학생은 왜 동두천으로 갔을까 작성일 05-18 11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씨네만세 1345] 5·18 광주 민주화운동 46주기 <오! 꿈의 나라></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P2KI6cwa3v"> <p contents-hash="363d3fb86196eb2994b08f0b146170a11a64f85df8caedc295284349f3891fc8" dmcf-pid="QV9CPkrNpS" dmcf-ptype="general">[김성호 기자]</p>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4775c8b5c717b4c1ab9397a0a62f2ac94c39ab88db9753525d69eff2eef839c0" dmcf-pid="xZHn3PRfpl" dmcf-ptype="blockquote2"> 한국 영화사 속에서 '80년 광주'를 다룬 작품을 찾으려면 단연 독립영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독립영화사 속에서는 당시까지만 해도 언급조차 하지 못했던 '80년 광주'를 과감히 이야기한 영화들이 있었는데, 영화 <칸트씨의 발표회>(1987), <황무지>(1988)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 독립영화인들이 모여 만든 장편 극영화가 있다. 영화 <오! 꿈의 나라>(1989)가 바로 그것이다. -<독립영화> 4호, 53p </blockquote> <div contents-hash="b989362a069395e9a6fba5cf71857e802f0cd9404022940db8a5ded9587a9db4" dmcf-pid="yid5avYCuh" dmcf-ptype="general"> <br>때는 1989년이다. 반쪽짜리 승리였던 1987년 6월 항쟁의 성취, 직선제 개헌을 통한 6공화국의 탄생으로 전두환 정권이 물러났던 시절이다. 그러나 승리는 반쪽짜리, 혁명에 이르지 못하고 항쟁으로 끝난 싸움은 광장에 결집한 100만 시민의 의지를 받들지 못하고 6·29선언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던 것이다. 신군부 세력은 노태우를 중심으로 정치권력화했을 뿐 아니라 쪼개진 야권이 통합하지 못한 걸 기화로 다시 한 번 대권을 잡기에 이르렀다. 1989년은 겉으로는 민주화가 이뤄졌으나 신군부 실세가 고스란히 살아남은 어두운 시기이기도 했다. </div> <div contents-hash="468f396dddd20948aa3481fcbaaccf9434c1e73e4d105a61be376d5c5b2534e9" dmcf-pid="WnJ1NTGh3C" dmcf-ptype="general"> 민주화는 이뤄졌으나 시대는 엄혹했다. 1960년 5·16 군사반란부터 1979년 신군부의 쿠데타까지, 한국사회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했던 군이 하나회를 통해 사조직화 돼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했다. 야권은 호남과 영남, 충청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으로 쪼개져 통합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1990년 초엔 노태우가 김영삼, 김종필과 3당 합당을 이루었고, 호남을 기반으로 한 김대중은 고립돼 열세를 뒤집을 수 없게 된다. 정계 상황이 이러하니 반정부 투쟁은 제도권이 아닌 재야인사를 중심으로 이뤄질 밖에 없었다. 사회 전반의 변혁 또한 요원하기만 했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20502f7d540f74de7dcddc64b0c346c45052b70e30511b62d23ecc0f467fa8a1" dmcf-pid="YLitjyHl3I"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2020cgrf.jpg" data-org-width="1280" dmcf-mid="fdczm10H3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2020cgrf.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오! 꿈의 나라</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장산곶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0beaf5ef8b7ce725ebdc542e57c45e366b99ff606526352e821ba984a1a912c8" dmcf-pid="GonFAWXSuO" dmcf-ptype="general"> <strong>언론도, 상업영화도 해내지 못한 작업</strong> </div> <p contents-hash="fd01eb9239a1aeda9a09ad3ee0f66521164812804d9c7022855eb499968f66b7" dmcf-pid="HgL3cYZvzs" dmcf-ptype="general">1989년은 엄혹한 시기였다. 책임 있는 이들 중 제 역할을 하는 집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랜 군부독재에다 신군부가 일찌감치 언론통폐합 등으로 이빨을 뽑아 놓은 제도권 언론은 정권의 애완견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땡전뉴스까진 아니라도 여전히 대통령 동정이 주요 뉴스로 자리했고, 권력비판은커녕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심도 있게 파헤치는 매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p> <p contents-hash="46bc838bff051d525869e1cbecf678540f0cd4e6a039aae1db820d80060803d2" dmcf-pid="XWTRZV6bzm" dmcf-ptype="general">예술이라 해서 얼마 다르지 않았다. 독재기구가 마련해둔 검열기구, 심지어는 경찰과 검찰, 법원이 하수인이 되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작품이 세상과 만날 수 없도록 온갖 수를 썼다. 공식 사망자만 166명, 수천 명의 시민들이 죽고 다친 1980년 5·18 광주의 참극을 제대로 다룬 보도나 매체를 10년이 지난 1989년까지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다.</p> <p contents-hash="72d071bd9dc88970682305d8ab4a54fa8ec4938783ca37ce6de527cb4b9073fd" dmcf-pid="ZYye5fPK7r" dmcf-ptype="general">언론이 외면하고, 주류 예술이 침묵하는 동안 이를 다룬 시도가 아예 없진 않았다. 대중가요는 검열돼 가사가 뒤바뀌고, 미술작품은 백골단의 테러 가까운 진압에 부수어지기 일쑤였으나, 이 야심찬 독립영화 만큼은 사전심의 규정을 아예 어기고서 무단 배급을 강행하고,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며, 비디오를 통한 유통과 지하상영으로 정부의 감시를 우회한 것이다. 그나마 그 수가 많지는 않았는데, <칸트씨의 발표회> <황무지>, 그리고 <오! 꿈의 나라>가 바로 그 작품이다. 5·18을 일부나마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가 1990년에 나온 걸 떠올리면, 앞서 나온 이들 세 작품의 존재는 여러모로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p> <div contents-hash="cb2ac09cdc26503dc1cd3262c4872b245f91f24f68be65ef979a75b175e4dafd" dmcf-pid="5GWd14Q9zw" dmcf-ptype="general"> 이중 가장 늦은 1989년에 나온 작품이 <오! 꿈의 나라>다. 세 작품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는 이 영화가 전국 150곳이 넘는 상영관에서 모두 500회 이상 상영되며 당시로선 대단한 수치인 1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은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로써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은 혐의로 고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1997년에야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을 얻어낼 수 있었단 사실을 알아두어야만 하겠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98a77d8be1d7e3eec937c7c371228b001736d244269688c97be6804f2524043" dmcf-pid="1HYJt8x23D"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3320zkbi.jpg" data-org-width="1280" dmcf-mid="4bflxDsA0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3320zkbi.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오! 꿈의 나라</strong> 크래딧 이미지</td> </tr> <tr> <td align="left">ⓒ 장산곶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b90c3fed260b6c41fe38aaaa4b1f571fc7abb02bddd1886272216faa4e1c4370" dmcf-pid="tXGiF6MV7E" dmcf-ptype="general"> <strong>광주에서 도망쳐 다다른 곳엔 무엇이 있을까</strong> </div> <p contents-hash="5a01d1afdd17cdcdc48bdaaed55d520a88be10c3ae419795478b300f340fe045" dmcf-pid="FZHn3PRfzk" dmcf-ptype="general">영화는 1980년 광주로부터 도망친 대학생 종수(권인찬 분)의 이야기다. 영화는 종수가 고향 형인 태호(박충선 분)를 찾아 경기도 동두천시로 오며 시작한다. 동두천은 미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태호는 미군기지에서 일하며 인맥을 통해 PX물품을 빼돌려서 암시장에 가져다 파는 것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p> <p contents-hash="54cc480287e6751061901245f60e7facaedae23156bd0a07467fe933a4f6b1e5" dmcf-pid="35XL0Qe4Fc" dmcf-ptype="general">태호가 세를 사는 주택엔 미군 병사에게 몸을 팔아먹고 사는 양공주들이 여럿 살아간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이들은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성매매를 중개하는 미군클럽에 빚으로 묶인 이가 태반이다. 배움도 없고 기댈 곳도 없는데 돈 들어가는 곳은 많은 이들의 삶이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팍팍하다. 괜찮은 미군을 만나 연애를 할 때는 그래도 즐겁지만, 세상이 어디 마음처럼 돌아갈까. 몸 파는 여자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는 미군 병사들로부터 버림을 받기 일쑤고, 심한 경우엔 폭행이며 학대도 이뤄지는 것이다. 게다가 미군에게 몸을 파는 이들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어서 이들은 같은 피부색을 지닌 이들에게까지 차별과 멸시를 받고는 한다.</p> <p contents-hash="0f1d3f7ef59f080245f485d21ae2d195dfbeb5e76431475c31c38b70303775a0" dmcf-pid="0lC6WB2uuA" dmcf-ptype="general">영화는 종수가 태호와 함께 살며 겪는 이야기를 1980년 광주의 비극과 교차해 풀어간다. 종수는 태호에게 제가 겪은 일을 솔직히 말하지 않는데, 그건 그가 도망자 신세이고, 세상이 광주의 비극을 지금과는 달리 취급하는 때문이며, 그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까닭이다. 영화 가운데 군복을 입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불순해 보이는 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순간이 여럿 등장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날아오는 구둣발 앞에 평범한 시민은 무력하게 짓밟힐 뿐이다. 까딱 잘못해서 종수가 그날 광주 도청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가 어떤 취급을 받게 될 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날 도청 안에 있다 연행된 이들 가운데 고문을 받아 정신이 나가고 몸이 부서져 못쓰게 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p> <div contents-hash="2cc848d3db025cd54216a7ce4b5ede82011b300fc7a37f4e825ed969312cfd11" dmcf-pid="pShPYbV7pj" dmcf-ptype="general"> <오! 꿈의 나라>가 정면에서 다루는 건 동두천 어느 양공주, 그리고 미군 물자를 빼돌리는 태호의 이야기다. 이들이 질 나쁜 미군에게 당해 망가지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축으로, 희망 없는 현실과 그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발버둥, 필연적 좌절까지를 한 걸음 떨어진 인물 종수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1980년 광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광주의 소식이 소문으로만 전해진 동두천에서 종수는 그날의 광주를 거듭 떠올린다.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조금씩, 마침내 그 뿌리를 온전히 드러낼 때, 동두천의 현실이 광주의 그날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음이 확인된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c10600ea8c97027b6f06e7aba189571b2cbbe97609154aef23c9ee4d4834178b" dmcf-pid="UvlQGKfzUN"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4713iwmg.jpg" data-org-width="1280" dmcf-mid="8xfSMwOcp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4713iwmg.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오! 꿈의 나라</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장산곶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2e5e7b16a9e4cf3cd769d6d7a557b174eefbc76c0ff541d81cc30144eedb5396" dmcf-pid="uTSxH94qza" dmcf-ptype="general"> <strong>신군부와 광주를 넘어 미군과 미국을 겨냥한 이유</strong> </div> <p contents-hash="2dadcd19fcb9cc948497d85b37e02fb36ac03812896e261de816882e6894484b" dmcf-pid="7yvMX28Bpg" dmcf-ptype="general"><오! 꿈의 나라>는 1980년 광주를 넘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미국 정부의 불순한 의도까지를 겨냥한다. 실제 미국 국무부 비밀문건들이 시효만료로 풀려 확인된 바, 당시 광주에 군 병력이 투입돼 시민군에 대한 무력진압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미국은 인지하고 있었다. 광주 시민의 중재 요구를 무시했다거나 신군부의 행위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의혹 또한 사실로 확인된 지 오래다. 1980년대는 이와 같은 의혹이 무성했던 시기로, 미국이 한국 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한다는 믿음이 그저 조작된 환상에 불과하단 비판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공공연하기도 했다. 영화가 미국을 겨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테다.</p> <p contents-hash="5cabccdeb177643d39f15f5ff6554db81284db82a5eddd40446dd3b3129db9cf" dmcf-pid="zWTRZV6b0o" dmcf-ptype="general">5·18을 전면에서 다루는데 제약이 적잖았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자면 진압군과 시민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포함하여 다수 배우와 소품을 활용해야 하는 촬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당국에 촬영사실이 알려지면 당시 공공연했던 경찰의 간섭부터 백골단 등을 통한 테러, 또 검열을 우회하기 어려운 상황까지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앞서 제작된 다른 독립영화들도 이를 우회하길 택했던 것일 테다.</p> <div contents-hash="6e3f6a5b18e215d576d3c4f1bf077c12eec3b702b7e779530cc2f1ef8d4f601d" dmcf-pid="qYye5fPK0L" dmcf-ptype="general">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꿈의 나라>는 교차편집, 즉 회상을 통해 5월의 광주를 일시적으로 복원해내는 방식으로 관객 앞에 알아 마땅한 사실을 내보인다. 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의 입을 통하여 5월의 광주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혼재된 시선을 기록하고, 시대상 또한 투박하나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가진 여러 아쉬움, 극작부터 촬영과 연기, 편집 등 기술적 수준에 대한 지적보다도 성취한 것들부터 돌아보는 까닭은 영화가 감당하고 이루어낸 것이 결코 당연하거나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아서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563657df1bd4e49f2777b9a37b6d797036c1c1c819f0a085a8bb9f18153eb80a" dmcf-pid="BU0cBigRFn"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5998gkxt.jpg" data-org-width="400" dmcf-mid="6X8TemCE3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8/ohmynews/20260518133305998gkxt.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오! 꿈의 나라</strong>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장산곶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053d20c6fcb28dab35205514c324fd0a65f0dcc8b3be4aad319f07a892dd1d65" dmcf-pid="bupkbnaepi" dmcf-ptype="general"> <strong>한국 독립영화는 그저 인디가 아니다</strong> </div> <p contents-hash="6bd3d0b6c9ffdf996bec8064c46eabf7ecca3035b5dcd8a5723ddfa2ff6a6b10" dmcf-pid="K7UEKLNd0J" dmcf-ptype="general">이로부터 나는 독립영화가 무언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한국에서 독립영화가 갖는 지위를 그저 독립서점이나 인디밴드와 마찬가지로 자본에의 독립이라고만 이해하고는 한다. 지난 시대 할리우드 거대 영화사가 주도하는 스튜디오 시스템 바깥에서 제작된 일군의 영화, 인디펜던스 영화라고 불린 독립 자본 제작 영화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한국 독립영화를 규정짓는다.</p> <p contents-hash="62fa62670b6f06403f4f0438dd23c6cb3f779a4678820f5fbcc63a16cd47393d" dmcf-pid="9zuD9ojJud" dmcf-ptype="general">그러나 한국 독립영화는 그저 서구와 마찬가지로 자본에의 독립만을 말하지 않는다. 군부독재에 반해 저항해온 역사, 즉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 노동운동의 수단으로 출발해 독립영화의 지위를 이루었던 초창기의 흐름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p> <p contents-hash="a1371e137c877fe4b84a9ddd2693d383b024c6416acf88896a61bc2016bf4764" dmcf-pid="2q7w2gAi0e" dmcf-ptype="general">그렇다면 한국 독립영화는 저널리즘이 모른 체 버려두고 상업영화가 외면해온 정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운동이자 예술로의 지위 또한 갖는다. 바로 이것이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인정에 관한 업무 규정'이 독립영화의 개념을 규정하는 제7조 1항의 첫 요건으로 '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쟁점과 인물을 깊이 있게 다룬 영화'라 명시하고 있는 이유가 된다.</p> <p contents-hash="d36b564a378fe187bd0e88251ad9aa6bc709a951bf8d798c960f0844363d2df8" dmcf-pid="VBzrVacnzR" dmcf-ptype="general">이는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한국 독립영화가 이룬 성과이자 써온 역사, 또 앞으로도 해내어야 마땅한 역할이며 의무인 것이다. 46주기를 맞은 오늘, <오! 꿈의 나라>를 꺼내 이야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p> <p contents-hash="dc8759002c725305dca83d21687236e62b2e0711ccff0535a4afe5a5105e8c8a" dmcf-pid="fbqmfNkL7M"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공식] 서현우, ‘범죄도시5’ 합류…천만 시리즈 새 얼굴 05-18 다음 눈물로 고개 숙인 아이유…누가 그녀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나 [홍동희 시선] 05-18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