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마무리들의 '수난시대' 작성일 05-02 9 목록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6/05/02/0000057972_001_20260502040009030.gif" alt="" /><em class="img_desc">지난 4월 5일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기아 포수 한준수(오른쪽)가 마운드에서 투수 정해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KIA 타이거즈</em></span></div><br><br>지난 4월 22일 수원KT위즈파크. 이날 KIA 타이거즈 선수단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이 합류했다. 2군에서 재충전과 재조정을 마치고 1군 엔트리에 복귀한 정해영. 2021년부터 KIA의 마무리로 다섯 시즌 연속 20세이브를 기록하고 통산 149세이브를 쌓은 타이거즈 수호신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정해영의 자리는 9회가 아니다. 이범호 감독은 취재진에게 "처음에는 마무리가 아니라 추격조에서 던지게 할 예정"이라며 "좋아지면 7회, 8회로 조금씩 올라간다"고 설명했다.<br><br>정해영은 시즌 초 극심한 부진 끝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퓨처스리그에서 재조정 기간을 거쳤다. 해마다 한두 차례씩 크고 작은 고비를 겪으면서도 잘 이겨냈던 선수지만, 올해의 부진은 개인이나 팀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은 수준이었다. 지난 3월 28일 SSG전 개막전, 6 대 3으로 앞선 9회에 등판해 0.1이닝 3실점하며 충격적인 역전패를 자초한 것이 시작이었다. 4월 10일 한화전에서도 6 대 3으로 앞선 9회에 올라와 0.1이닝 2실점, 또 경기를 끝내지 못하고 강판당했다. KIA는 정해영의 문제가 기술이 아닌 멘탈이라고 판단했다. 2군에서 머리를 비우고 선발과 중간계투 등 평소와 다른 역할을 소화하며 일종의 '리프레시'할 시간을 준 배경이다. 정해영이 사라진 동안 KIA는 8연승을 질주했다. 임시 마무리를 맡은 성영탁은 4월 26일까지 7경기 10.1이닝 1실점, 세이브 3개로 흔들림 없이 9회를 막아내는 중이다. 이범호 감독은 "지금 성영탁의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마무리는 성영탁에게 맡긴다"고 했다. 정해영도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성영탁이 이 안정감을 유지한다면 KIA로서는 잘 돌아가는 마무리를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정해영이 통산 150번째 세이브를 따내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br><br><strong>각 구단 마무리 잇단 전력이탈</strong><br><br>개막 이후 마무리가 교체된 팀은 KIA만이 아니다. 마치 마블 영화의 타노스가 손가락이라도 튕긴 것처럼, 각 구단 마무리들이 9회 마운드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2024시즌 리그 세이브 TOP10 중 올해도 같은 팀에서 마무리로 뛰는 선수는 KT 박영현, LG 유영찬, 두산 김택연 셋뿐이다. 지난해 세이브 TOP10 가운데 현재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투수는 KT 박영현, SSG 조병현, NC 류진욱, 두산 김택연, LG 유영찬, 삼성 김재윤 정도. 이 가운데 유영찬과 김택연이 4월 25일 부상으로 동반 말소되면서, 2024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마무리 자리를 지키는 선수는 10개 구단을 통틀어 KT 박영현만 남았다.<br><br>거인의 수호신 김원중은 요즘 7회나 8회, 심지어 5회에도 등판한다. 통산 164세이브로 KBO 역대 세이브 부문 10위, 롯데 구단 역사상 최초 개인 100세이브, 역대 5번째 6년 연속 10세이브를 올린 롯데 대표 마무리지만 오프시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 만들기가 늦어졌고, 개막전 9회를 끝내지 못하고 내려온 뒤 마무리 자리를 잃었다. 최준용에게 자리를 내준 김원중의 올 시즌 세이브는 4월 26일 기준 '0'이다.<br><br>한화 이글스 김서현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난 시즌 69경기 33세이브로 팀의 가을야구 진출을 이끈 21세 마무리는 4월 14일 삼성전(1이닝 3실점) 이후 세이브 상황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무리라면 절대 나올 일이 없는 3회와 4회에 올라와 자신감을 재충전하는 중이다. 그사이 한화 마무리 자리는 6주짜리 부상 대체 외국인 투수 잭 쿠싱이 급한 불을 끄고 있다. 지난해 마무리였던 조영건이 개막을 앞두고 부상으로 빠진 키움 히어로즈는 좌완 김재웅을 마무리로 쓰다 최근엔 아시아쿼터 일본인 가나쿠보 유토로 바꿨다. 오승환이 은퇴한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해 후반기 마무리였던 이호성의 수술로 다시 마무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고, 돌고 돌아 김재윤이 다시 마무리가 됐다. LG 트윈스는 세이브 1위 유영찬이 갑작스레 팔꿈치 통증으로 이탈해 비상이 걸렸고, 두산 베어스 역시 김택연의 극상근 염좌로 집단 마무리 체제를 구상하고 있다. 그야말로 마무리투수들의 수난시대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6/05/02/0000057972_002_20260502040009076.gif" alt="" /><em class="img_desc">지난 4월 18일 KT 위즈 마무리투수 박영현이 역투하고 있다. photo KT 위즈</em></span></div><br><br><strong>특급 마무리 신화는 생존자 편향의 착각</strong><br><br>야구팬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마무리투수의 이미지는 이렇게 평범하고 유약한 존재가 아니다. 그보단 9회, 장엄한 음악과 함께 불펜 문을 열고 걸어나오면서 엄청난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 트레버 호프먼의 '헬스 벨스(Hells Bells)', 한국 야구팬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오승환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까지. 구장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투수 한 명을 향하는 그 순간, 응원팀 팬들에겐 짜릿한 쾌감을 안기고 상대팀 팬들에겐 공포감과 무력감을 선사하는. 마무리는 그런 존재여야 한다.<br><br>이런 연출의 정점은 뉴욕 메츠 시절 에드윈 디아즈의 등판이었다. 구장 전체가 암전된 가운데 티미 트럼펫이 사이드라인에서 '나르코(Narco)'를 라이브로 연주하고, 디아즈가 불펜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은 전 세계 야구팬들 사이에 하나의 밈이 됐다. LA 다저스는 3년 6900만달러(약 1015억원)를 들여 디아즈를 영입하면서 등장곡도 함께 가져왔고, 다저스타디움에 라이브 트럼펫 연주자를 별도로 고용할 만큼 공을 들였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현대 야구장의 무대 연출은 마무리를 다른 불펜투수들과는 종 자체가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게 만들었다.<br><br>물론 블록버스터식 연출에 걸맞은 슈퍼히어로급 마무리들이 실제로 있었다. 현역 시절 마리아노 리베라가 등판하면 그대로 경기 종료를 의미했다. 오승환의 전성기 삼성을 상대하는 팀 타자들은 어떻게든 9회가 오기 전에 점수를 내려다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덕분에 삼성은 사실상 경기를 8회까지만 하는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이런 마무리는 야구 역사에 손에 꼽는다. 리베라와 오승환이 전설이 된 건 그 자리를 커리어 내내 꾸준히 지키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특급 마무리 반대편에는 무너지고 쓰러지면서 실패하는 수많은 보통 마무리가 있다. 우리가 마무리하면 떠올리는 존재감과 특급 마무리 신화는 일종의 생존자 편향이 만든 착각일지 모른다.<br><br>미국 야구계에선 마무리가 다른 투수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이론이 정설로 통한다. ESPN에서 활동한 분석가 마이크 페트리엘로는 일찍이 "마무리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올스타 마무리와 이름 없는 7회 셋업맨을 가르는 것은 세이브 기회를 얻었느냐는 우연의 차이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전성기의 진정한 엘리트 투수가 아니라면 9회 전담 마무리에 거액을 쓰는 것은 항상 리스크를 동반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이 판타지 리그에서 마무리를 너무 일찍 드래프트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마무리로 예상했던 선수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시즌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투수들이 세이브를 쌓기 시작한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1세이브 이상 올린 투수가 사상 최초로 200명을 돌파했다는 통계도 있다. 30개 팀으로 나누면 팀당 6~7명이 마무리 역할을 한 번 이상 해본 셈이다.<br><br>이 이론에서 대부분의 마무리는 팀의 전략이나 우연에 의해 그 자리에 배치된 것이지, 날 때부터 마무리의 자질을 타고나서 마무리를 맡은 게 아니다. 감독들은 팀 내 최고의 강타자들을 1번부터 4번까지 배치하듯 불펜 투수들을 마무리와 필승조 자리에 조합한다. 마무리는 여러 필승조 불펜 가운데 9회에 던지는 역할이 주어진 한 선수일 뿐이고, 그 역할에 실패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다른 투수로 바뀔 수 있다. 이를 가리켜 '마무리투수의 수명은 3년'이란 다소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다. <br><br>한 구단 투수코치는 이에 대해 "2~3년 연속 꾸준하기 어려운 건 마무리투수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라며 "2~3년 꾸준히 제자리를 지키면 그게 진짜 실력"이라고 말했다. 한 시즌 반짝 활약이 아니라 2~3년 연속 정상급 성적을 이어간 선수가 슈퍼스타로 인정받듯, 마무리도 마찬가지다. 2~3년을 넘어 10년 이상 정상급 마무리로 군림한 리베라와 오승환이 전설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br><br><strong>KT 박영현의 특별함</strong><br><br>물론 아무나 마무리를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 이닝이 가져다주는 압박감은 분명 다른 이닝과 차원이 다르다. 7회나 8회 구원에 실패하면 타선이 만회할 기회라도 있지만, 9회 실패는 그 즉시 경기의 종료이자 패배다. 매 등판이 팀의 운명을 결정짓는 하이 레버리지 상황이다. 등판 시점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 그에 맞춰 준비하는 장점도 있지만,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그만큼 크다. 7회와 8회에서 압도적 구위를 뽐내던 투수가 9회 마무리를 맡자마자 흔들리고, 다시 7·8회로 내려보내니 안정을 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 숫자로만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얘기다.<br><br>MLB 선수노조 조사 결과 불안장애를 진단받은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장기 부진을 겪을 가능성이 25% 높다는 데이터도 있다. 마무리는 심리적 압박을 가장 집중적으로, 가장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포지션이다. 소셜미디어(SNS)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일상화된 오늘날은 상황이 더 가혹해졌다. 스포츠베팅이 활성화되면서 실패한 투수에게 쏟아내는 악플과 메시지가 심각한 수준이고, 팀 패배와 직결되는 마무리는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마무리가 다른 불펜투수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은, 어쩌면 욕먹는 값도 포함된 것일지 모른다.<br><br>대부분의 마무리는 초인이 아니다. 만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보다는 영화 '다이하드'의 존 매클레인에 가깝다. "난 영웅이 아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안 하니까 하는 것뿐이지." 이리저리 얻어맞고 부딪히고 쓰러지면서도 5편까지 시리즈를 이어간 매클레인처럼, 마무리들도 시즌 중 숱한 컨디션 저하와 실패와 부상을 겪으면서 9회를 버틴다.<br><br>그런 의미에서 KT 박영현은 우리 시대 새로운 특급 마무리로 가는 길목에 선 선수다. 2024년, 2025년, 그리고 2026년 현재까지 주변 동료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하나둘씩 전열에서 이탈하는 동안에도 10개 구단을 통틀어 유일하게 팀의 마무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저렇게 던지다간 언젠가 부상당할 것'이란 카산드라식 예언들 속에서도 오히려 해마다 더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진다. 지난해 리그 최고 마무리로 올라선 SSG 조병현도 올 시즌 더 뛰어난 활약으로 향후 특급 마무리를 예감하게 한다. 이들이 앞으로 몇 년의 고비를 잘 버텨내고 이겨낸다면, 한국야구는 새로운 마무리의 전설을 얻게 될 것이다. <br><br> 관련자료 이전 '펀런 크루장' 전현무, 러닝에 메이크업이라니 "처음 본다" (나 혼자 산다) 05-02 다음 대한체육회, 의식불명 복싱 선수 가족에 부적절 발언한 김나미 사무총장 직무정지...징계 절차 착수 05-0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