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의 스포츠 브레인] 18홀 라운드 후나 야구장을 나서고 나면 왜 잡념이 사라지는가...호연지기(浩然之氣)의 뇌과학 작성일 04-27 11 목록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25/2026/04/27/202604270949360779606cf2d78c681439208141_20260427095109816.png" alt="" /><em class="img_desc">하이원CC / 사진=연합뉴스</em></span> 이른 아침, 골프장 1번 홀 티박스에 서는 순간이 있다. 잔디 위로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았고, 페어웨이는 멀리까지 길게 뻗어 있다. 클럽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몸 어딘가가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직 아무것도 치지 않았는데 왜일까. <br><br>야구장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입장 통로를 빠져나와 그라운드의 잔디가 와락 눈앞에 펼쳐지는 그 찰나,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멎는다. <br><br>두 공간은 종목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 첫 순간의 느낌은 묘하게 닮아 있다. 라운드를 마치고, 혹은 경기장을 나서고 나면 그 느낌은 더 선명해진다. 아침에 안고 나온 직장 걱정, 어제의 말다툼, 이번 주 마감, 그 모든 것들이 어딘가로 흘러내린 듯 사라진다. 기분 탓일까. 아니다. 뇌가 한 일이다.<br><br>△ 초록은 눈이 가장 편안하게 쉬는 파장이다.<br><br>인간의 눈은 가시광선 스펙트럼 중 초록 파장에서 감도가 가장 높다. 망막과 시각피질이 가장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색이다. 붉은색이나 파란색처럼 초점 조절에 힘을 쓸 필요가 없다. 골프장 페어웨이를 내다보든, 야구장 외야 잔디를 바라보든, 그 순간 눈의 수정체 근육은 이완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수렴한다. "눈이 트인다"는 말은 낭만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생리 반응이다.<br><br>흥미로운 점은 잔디의 결, 나뭇가지의 분기, 구름의 가장자리가 모두 자기 반복 구조를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뇌는 이 패턴에 노출될 때 이완과 집중이 동시에 일어나는 알파파 상태로 전환되고, 스트레스 지표가 눈에 띄게 낮아진다. 섬세하게 설계된 골프 코스도, 정교하게 다듬어진 야구장 그라운드도, 의도치 않게 뇌를 달래는 공간이 되는 이유다.<br><br>△ 그 안에 있는 동안 전전두엽은 쉬고, 뇌는 충전된다.<br><br>인간의 주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회의, 이메일, 운전처럼 의식적으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주의는 판단의 사령탑인 전전두엽을 빠르게 소진시킨다. 반면 잔디 위를 걷거나 탁 트인 그라운드를 멍하니 바라보는 경험은 전전두엽을 쉬게 한다. 그 틈에 DMN(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즉 아무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조용히 켜지는 뇌의 공회전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br><br>뇌는 그 시간 동안 스스로를 정리하며 회복한다. 창의력과 통찰은 바로 이 공회전의 순간에 소리 없이 태어난다.<br><br>18홀을 라운드하면서 걷는 것, 카트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그린에서 라인을 읽다가 무심코 먼 산을 바라보는 것, 야구장 관중석에서 이닝 사이 그라운드 정비를 멍하니 내려다보는 것, 파울볼 하나를 기다리며 외야를 바라보는 것, 이런 모든 행위가 그 회복의 연속이다. 경기장을 나선 뒤 머리가 개운한 이유는 의지나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뇌가 실제로 쉬었기 때문이다.<br><br>한 가지 더, 흙과 잔디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 비 온 뒤 맡게 되는 그 서늘하고 묵직한 향은 후각 수용체를 통해 변연계에 직접 닿아 마음의 안전벨트인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이른 아침 골프장의 그 묘한 평온함도 야구장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흙 냄새가 주는 설렘도 정체는 같다.<br><br>△ 호연지기(浩然之氣) 넓은 데서 키우는 것<br><br>맹자는 제자 공손추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크고 넓은 기운, 억지로 가르칠 수 없고 오직 자연과 함께 쌓아가는 것이라 했다. 탁 트인 페어웨이 앞에 설 때도, 야구장 외야를 가득 채운 초록 앞에 섰을 때도, 가슴 어딘가가 조금 넓어지는 그 감각을 아마 2,500년 전 맹자도 비슷한 무언가를 알았을 것이다. <br><br>뇌과학은 이제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인다. 편도체의 경보가 꺼지고, 전전두엽이 쉬며, 알파파가 잔디 결을 따라 흐른다. 호연지기는 서재 깊숙이에서 오지 않는다. 초록이 넘실대는 그 공간 위에서 자란다.<br><br>골프채를 들고 나가든, 야구 모자를 쓰고 입장하든, 당신의 뇌는 자연의 초록을 기다리고 있다. 관련자료 이전 5월 황금연휴 서울 한강공원 광나루 피클볼장…오후 2~6시 가족 무료 체험행사 04-27 다음 “차트 휩쓸었다” 아이유 변우석 ‘21세기 대군부인’ OST까지 대박 04-27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