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에 세상 떠난 천재...닌텐도 사장이 사위 대신 앉힌 '일본의 스티브 잡스'는 누구? 작성일 03-09 30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b2p0B4NdeS">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0a417f12a763ade3b24f4105e58f6830109da70bddea5533765940270e79aecf" dmcf-pid="K2p0B4NdRl" dmcf-ptype="blockquote2"> 닌텐도 어벤저스<4> </blockquote> <p contents-hash="0c4f6a0317cd42e80bc65caab5d5e5fc14ce3c50df54badc35e5198368157128" dmcf-pid="9VUpb8jJih" dmcf-ptype="general">닌텐도의 제4대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토루는 '일본의 스티브 잡스'로 불렸다.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혁명을 가져온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게임시장의 혁신을 이끈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타 사장은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와 온 몸을 사용하는 게임기 '위'로 전 세계에 닌텐도 돌풍을 일으켰다.</p> <p contents-hash="7f6be992ce17c6a001e432a53edbedc7ae6aa3571dae6265c845dd10fdb8314e" dmcf-pid="2fuUK6AiRC" dmcf-ptype="general">잡스와 이와타는 비슷한 면이 있다. 집념이 강했던 두 사람은 남다른 아이디어로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살렸고 전 세계 휴대폰과 게임기 시장을 뒤집은 뒤 약속이나 한 듯 56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p> <p contents-hash="c63e61b4379ec434cc9d4b0db3b9c9f3c741dec81354f6de1ebe033669f8eba5" dmcf-pid="V47u9PcnRI" dmcf-ptype="general">반면 기자가 만난 생전의 두 사람 분위기는 달랐다. 잡스가 기업의 깐깐한 최고경영자(CEO) 같다면 이와타는 친근하고 편안한 사람이었다. 잡스는 불 같은 카리스마를 드러낸 반면 이와타는 온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p> <p contents-hash="2acda65f23665819dab7f30633c7bed171f112ecd97a3387ffbefcaa25915b22" dmcf-pid="f8z72QkLeO" dmcf-ptype="general">기자는 2011년 6월 스티브 잡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마지막 공개 발표회에 참석했다. 당시 췌장암 투병 중이던 그는 수척해 보였지만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40분간 무대를 돌아다니며 5,000여명의 청중을 사로잡았다. 병마도 이겨낼 것 같은 강한 모습이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4개월 뒤 56세 나이로 타계했다.</p> <p contents-hash="c4174b3193d19b95993835618b7a50e8daeedc998e7eed7b59ebc08f2ee3c53c" dmcf-pid="46qzVxEons" dmcf-ptype="general">2006년 '닌텐도 DS라이트'로 한국 진출을 준비하던 이와타 사장을 일본 교토의 닌텐도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 진출 이유를 차분하면서도 자신있게 설명했다. 그도 56세인 2015년 담관암으로 고인이 됐다.</p> <p contents-hash="8323e589145541e9e07999324de7f3ef4e10132e07731184bcb944cc4cc56a9f" dmcf-pid="8PBqfMDgim" dmcf-ptype="general">지금도 이와타 사장이 건넨 선물을 잊을 수 없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그는 화투를 한 벌 건넸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화투 제조사다운 선물이었다. 이와타 사장은 화투를 자세히 보라고 했다. 화투를 펼쳐보니 재미있게도 화투 속 캐릭터들이 모두 닌텐도의 유명 게임 주인공 마리오였다. 이와타 사장은 "시중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라며 "마니아들이 갖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닌텐도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재미있는 선물이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c6d850fa90b12c97bc0ee25077c198c44dc21431f6b31cc1511dd56f4c4b05c7" dmcf-pid="6QbB4RwaRr"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전 사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0874xrql.jpg" data-org-width="640" dmcf-mid="7knCW1fzJ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0874xrql.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전 사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figcaption> </figure> <hr class="line_divider" contents-hash="a7eb43f27a415d39d21f44536a72f6e400b772c9eae5a333275dbf75f0f4f6c4" dmcf-pid="QM9K6dmjJD" dmcf-ptype="line"> <h3 contents-hash="32368a8931a06f3b93fcc9701d6087923879ee663f9494c29081f1e1c537e801" dmcf-pid="xR29PJsAdE" dmcf-ptype="h3">인생을 바꾼 물건을 만나다</h3> <p contents-hash="24c8ddfdcf2ed2ad663302b7cea8ed61d277335d19f3e613788a7e0c94f5b566" dmcf-pid="yYOsvX9UJk" dmcf-ptype="general">1959년 일본 삿포로에서 태어난 이와타 사토루는 어릴때부터 전자계산기에 빠져 게임 개발자가 됐다. 미국 휴렛팩커드(HP)에서 내놓은 공학용 전자계산기는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가능했다. 가격이 16만엔으로 꽤 비싼 이 제품을 사려고 그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p> <p contents-hash="c4217386fc7a94ab481a10f72e7e9c0e923cfd38d051af9c27877fa2f4f16ad0" dmcf-pid="WGIOTZ2unc" dmcf-ptype="general">어렵게 구한 전자계산기에 빠진 이와타는 그때부터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해 도쿄공업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이 자신이 아는 지식보다 뒤처져 아쉬움이 컸던 그는 도쿄의 이케부쿠로와 아키하바라의 컴퓨터 판매점들을 자주 찾아갔다. 당시 도쿄의 컴퓨터 판매점들은 국내 세운상가처럼 개발자들이 최신 정보를 주고 받는 장소였다.</p> <p contents-hash="22652adb0e461c461de7c1553b64f02e1a415dc75063f7687c7992926e6800bd" dmcf-pid="Yhkcsvu5iA" dmcf-ptype="general">그때 만난 사람 중 하나가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개발 실력을 눈 여겨 보고 자신이 만든 회사의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그 곳이 이와타와 닌텐도를 이어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할연구소다. 대학교 2학년때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워낙 실력이 뛰어나 개발팀을 이끄는 정직원이 됐다.</p> <p contents-hash="df462d2703aa2ecdea1fad6c1a601e4d003b4797c3bf8d20ab0c9f92d1721f8c" dmcf-pid="GlEkOT71ej" dmcf-ptype="general">그 곳에서 그는 1983년 닌텐도가 내놓은 가정용 게임기(콘솔) '패미컴'을 주목했다. 패미컴은 전자계산기처럼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닌텐도를 찾아가 게임을 개발해 납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의 나이 24세때였다.</p> <p contents-hash="fce634bebcc6e5ee6a79c922f5045e55a9c760ed41784a5f381683710577f314" dmcf-pid="HSDEIyztMN" dmcf-ptype="general">하지만 닌텐도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와타 사토루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닌텐도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닌텐도는 다른 게임개발업체의 하청 일을 이와타에게 맡겼다. 다른 개발업체가 개발해 닌텐도에 납품한 게임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이와타와 닌텐도의 인연이 시작됐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611870ad7db5db36a9056f7f2de227b25d3ebc3dec65d49555f9d827c318cd8d" dmcf-pid="XvwDCWqFda"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게임큐브'. 닌텐도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2204ltwt.jpg" data-org-width="640" dmcf-mid="znDX0BJ6L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2204ltwt.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게임큐브'. 닌텐도 제공 </figcaption> </figure> <hr class="line_divider" contents-hash="1b3a7368132ee989834e4ee2bcdd72a14c38acba4be78b27f289ef62104b8edf" dmcf-pid="5ymrlGb0Mo" dmcf-ptype="line"> <h3 contents-hash="cf0f3b3854b8e09e8fcc5aea987b6f8ec992dc29180e47d32f445c910929bb2d" dmcf-pid="1WsmSHKpLL" dmcf-ptype="h3">실패를 딛고 선 자</h3> <p contents-hash="0acba6b22044582bd32f85f003c59f3aef2cccedb360fe1a5e9ee1c44a5aa75d" dmcf-pid="tYOsvX9Uin" dmcf-ptype="general">할연구소는 닌텐도 일을 맡으면서 1991년 건물을 크게 지었다. 그런데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가 가라앉았다. 할연구소는 50억 엔의 빚을 안은 채 파산 위기로 내몰렸다. 위기를 타개하고자 할연구소는 이와타 사토루에게 사장직을 제안했다. 파산 위기를 고스란히 책임져야할 사장 자리는 결코 반가운 제안이 아니었다.</p> <p contents-hash="7b2ef92cad352b3490c16d435df136e4c31bb7e5e58c4f9e778069e278c724dc" dmcf-pid="FGIOTZ2uii" dmcf-ptype="general">그럼에도 이와타는 여러 곳의 이직 제의를 뿌리치고 32세에 할연구소 사장이 됐다. 그는 사장 제안을 또다른 도전으로 생각했고, 사장직을 맡지 않으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다.</p> <p contents-hash="f7d0f673e255345f660c774ce48b5d14aeeb767f505017aafef6e787ad0e5ca7" dmcf-pid="3HCIy5V7eJ" dmcf-ptype="general">그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킬러 콘텐츠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만든 게임을 닌텐도에서 '게임의 신'으로 통하던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가져갔다. 게임을 본 미야모토는 특유의 '밥상 뒤집기'를 했다. 가능성이 있으니 몇 군데 고쳐 새로 게임을 개발하라는 제안이다. 그렇게 만든 게임이 '별의 카비'다. 이 게임이 크게 성공하면서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이와타 사토루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p> <p contents-hash="ceb2a86f49982dba8fcc834258a5bf8a0036b12dc5e926e8d5d15a81197365c5" dmcf-pid="0XhCW1fzLd" dmcf-ptype="general">이어서 이와타 사토루가 주말마다 혼자 틈틈이 만든 '스매시 브라더스'도 대대적으로 성공하자 닌텐도는 이와타에게 영입 제안을 했다. 그는 스매시 브라더스로 할연구소의 부채를 모두 갚고 2000년 닌텐도로 옮겨 경영기획실장을 맡으면서 가정용 게임기 '게임큐브'를 개발했다.</p> <p contents-hash="562ecd99fd9b7381adbc20ca70508312dd31cdc0955a43843c83bce2a0b7b81e" dmcf-pid="pZlhYt4qie" dmcf-ptype="general">그런데 2001년 출시된 게임큐브는 기대와 달리 실패했다. 당시 게임기 시장의 경쟁자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DVD를 저장장치로 택한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 '엑스박스'를 영화까지 즐길 수 있는 가정용 멀티미디어 기기로 내세운 반면, 게임큐브는 독자적인 8㎝ 크기의 광디스크를 저장장치로 고수해 경쟁업체들보다 뒤처졌다. 결국 닌텐도는 전 세계적으로 약 2,200만 대 판매에 그친 게임큐브 생산을 2003년 중단했다. 게임큐브의 실패로 닌텐도는 게임기 시장에서 소니, MS에 뒤처져 3위로 밀려났다.</p> <p contents-hash="c53b86702f2ff74e64742b4b1553bb982050ade79fdef4727249918540f8dc4b" dmcf-pid="U5SlGF8BiR" dmcf-ptype="general">그래서 이와타가 입사 2년 만인 2002년 43세 나이로 닌텐도 사장에 전격 발탁된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파란이었다. 당시 닌텐도에는 모두가 차기 사장으로 꼽은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사위 아라카와 미노루 닌텐도 미국법인장이다. 1946년 명문가에서 태어나 교토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유학한 아라카와는 야마우치가 어렵게 설득해 데려온 인재였다. 그는 미국 시장을 개척하고 패미컴을 전세계에 히트시킨 공신이었다.</p> <p contents-hash="42bfd1cc41e31e66aa7bfdb792da1e7f86fd557921048c00c006bdd9249fbe07" dmcf-pid="u1vSH36bMM" dmcf-ptype="general">그런데도 야마우치 히로시는 젊은 이와타 사토루를 후임 사장으로 택했다. 야마우치는 이와타가 할연구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닌텐도를 다시 일으켜 세울 재능 있는 인재로 봤다. 당시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들은 이와타가 게임 개발자로서 재미의 본질을 잘 알고 있으며 위기에 빠진 할연구소를 구했던 경영수완 때문에 발탁됐다고 보도했다. 이를 야마우치 사장은 "개발 현장과 경영을 동시에 이해하는 드문 인재"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39f301023093f1db32d18e57122858048a18e0374a40465d86f798d2bec43efd" dmcf-pid="7fuUK6AiMx"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2010년 국내 출시된 '닌텐도 DSi'. 기존 닌텐도DS나 닌텐도 DS라이트보다 얇고 가벼워졌으며 액정화면은 더 커졌다. 연합뉴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3554xlzc.jpg" data-org-width="640" dmcf-mid="q08AmSUZe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3554xlzc.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2010년 국내 출시된 '닌텐도 DSi'. 기존 닌텐도DS나 닌텐도 DS라이트보다 얇고 가벼워졌으며 액정화면은 더 커졌다. 연합뉴스 </figcaption> </figure> <hr class="line_divider" contents-hash="0be1454418c92bf8e9f7aecdb986a8339496c5739bf66c0f5e6adbf3d68307d8" dmcf-pid="q8z72QkLeP" dmcf-ptype="line"> <h3 contents-hash="00dcb1f6a4b424747ce3cbd446c2b06eda296f66744eaea7009f29641126c5d3" dmcf-pid="B6qzVxEoM6" dmcf-ptype="h3">실패가 낳은 혁신</h3> <p contents-hash="7f724a0438433623850adea8646146fddaf258dab505ff31a4ba171b85d4bba7" dmcf-pid="bPBqfMDgn8" dmcf-ptype="general">2003년은 닌텐도에게 위기의 해였다. 시장에서 실패한 게임큐브 생산을 중단한 상황에서 닌텐도가 독점했던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소니라는 강자가 뛰어들어 휴대용 게임기 'PSP'를 내놓았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는 신생업체나 다름없는 MS가 엑스박스로 닌텐도를 앞질렀다.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닌텐도가 게임 시장에서 끝났다고 보도했다.</p> <p contents-hash="1edc7dd83e559fdafde8f08a93a9f22a3b6bf469b3f80e790613405ab56b090e" dmcf-pid="KQbB4Rwae4" dmcf-ptype="general">갓 사장이 된 이와타 사토루는 시장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소니, MS와 기술 경쟁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특히 기술에 의존한 화려한 그래픽 대신 다른 승부수를 띄웠다. 그것이 독특한 게임성이라는 재미를 앞세운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다.</p> <p contents-hash="c9ca92f4ac7bbd3ef359dfcc2fec2a629fc90c09be73d416220b2bfddbbc5a6d" dmcf-pid="9xKb8erNef" dmcf-ptype="general">이와타 사장은 기기 모양부터 조작법, 게임까지 완전히 새로워야 한다는 목표 아래 닌텐도 DS를 개발했다. 그 결과 닌텐도 DS는 이전 게임기와 달리 두 개의 화면을 가진 '듀얼 스크린'을 채택했다. 덕분에 한쪽 화면에 게임 진행에 필요한 설명을 띄우고 다른 화면으로 게임을 즐기는게 가능했다. 그만큼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을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미야모토 시게루의 조언을 받아들여 화면을 건드려 게임을 작동할 수 있는 터치 스크린 방식을 게임기에 처음으로 도입했다.</p> <p contents-hash="96d247f59cad8936d4323c9f0c94f4891621f4734887555b75b878c877c092d5" dmcf-pid="2M9K6dmjMV" dmcf-ptype="general">또 인터넷 연결 기능을 집어 넣어 다른 닌텐도 DS 이용자들과 무선 인터넷(와이파이)을 이용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 덕에 '마리오 카트 DS'와 '동물의 숲 DS'는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을 앞세워 크게 성공했다.</p> <p contents-hash="b14fd2fafe543b856bad6695f6e73afb4e1f18a151af168f86aaa9a27cc4b01f" dmcf-pid="VR29PJsAM2" dmcf-ptype="general">뿐만 아니라 이와타 사장은 닌텐도 DS가 성공하려면 게임 인구가 늘어야 한다고 보고 독특한 조직을 만들었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직원들을 뽑아서 만든 이용자 확대 프로젝트팀이다. 이 팀은 게임을 즐기지 않는 노인이나 주부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게임 기획을 위한 시장 조사를 맡았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간단한 문제풀이를 통해 기억력을 높일 수 있는 '매일매일 DS 두뇌 트레이닝' 게임이다.</p> <p contents-hash="0171da2b73848b0cee0e1f2f2ac54465fdc4fa13a5a5006fbd3d33dad14c0e56" dmcf-pid="feV2QiOci9" dmcf-ptype="general">두뇌 훈련 게임에서 알 수 있듯 닌텐도는 게임을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업체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닌텐도 DS의 '듣고 쓰고 친해지는 DS 영어삼매경' 게임을 통해 영어 단어를 공부했고, '마법천자문' 게임으로 한문을 익혔다. 그래서 게임을 싫어하는 부모들도 닌텐도 게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덜 했다. '엄마들이 싫어하는 게임을 만들지 말라'는 닌텐도의 개발 전략이 통한 것이다.</p> <p contents-hash="ce11a3c0e3d8caa0fa10af2143bf55702bae22ce0ea546e0941f39a5ebf993c9" dmcf-pid="4dfVxnIknK" dmcf-ptype="general">덕분에 닌텐도 DS 시리즈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약 1억 5,400만 대가 팔리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휴대용 게임기가 됐다. 이 기록은 지난해 말 약 1억 5,500만 대가 팔린 '닌텐도 스위치'가 경신했다. 가정용 게임기 전체를 놓고 봐도 닌텐도 DS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닌텐도 스위치에 이어 게임기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이 팔린 기기다.</p> <p contents-hash="b9e874e66fd581a50cf11bd33c9392fcd1754df91be62b34de5beaf7f9a4a472" dmcf-pid="8J4fMLCEJb" dmcf-ptype="general">2006년 내놓은 '위'는 이와타 사장의 혁신이 집약된 가정용 게임기다. 그는 '위'에서 동작 인식이라는 예전 기술과 단순한 그래픽을 활용해 그동안 없었던, 온 몸을 사용하는 게임기를 만들어 냈다. '위 스포츠'나 '위 피트' 등의 게임들은 실제로 테니스를 치듯 움직이며 팔을 휘둘러야 하고 화면에 보이는 균형잡기 등 운동 동작들을 온 몸을 써서 따라해야 했다. 덕분에 다른 게임기들과 달리 단순한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땀 흘리게 만드는 게임기'라는 별칭처럼 색다른 재미를 줬다. 그만큼 이와타 사장은 쉽고 단순한 조작법을 통해 이용자들이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p> <p contents-hash="16638935f34441113a443bb5e1246eff6a4954eccdbd4b749702b82b7a4aff17" dmcf-pid="6i84RohDnB" dmcf-ptype="general">전 세계에서 1억 대 이상 팔린 '위'에서 중요한 것은 조종기다. 원격조종기(리모트 컨트롤러)와 동작 인식 기술을 결합한 조종기는 봉처럼 생겼다. 이를 양 손에 잡으면 스키 게임에서 폴대 역할을 하고 한 손에 들면 테니스채와 탁구채로 변신한다. 이를 통해 양 손으로 잡고 손가락을 정신없이 놀려야 하는 기존 게임기의 어렵고 복잡한 틀을 깼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4fe0bc2e7cc7948b800dbb92153c4b408c0344497cfcac50492f8403defd5971" dmcf-pid="Pn68eglweq"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2008년 방한해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위' 게임기의 국내 출시를 발표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4941rlwc.jpg" data-org-width="640" dmcf-mid="BDV2QiOcd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9/hankooki/20260309140244941rlwc.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2008년 방한해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위' 게임기의 국내 출시를 발표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figcaption> </figure> <hr class="line_divider" contents-hash="86af58478d751d628a7aa703c5495a68001b062993c1b49d3c1c82129510466d" dmcf-pid="xCcAmSUZn7" dmcf-ptype="line"> <h3 contents-hash="6c134abf27a9a260c9ac51f98cfc67a72bc30718ae9f77a4ade9a36ca8fe94bf" dmcf-pid="yfuUK6Aidu" dmcf-ptype="h3">"나는 영원한 게이머입니다"</h3> <p contents-hash="2d64faffd05734ebf0d8ee3c3708a76ab74d08a72b56e9eeed303afdb37ed76f" dmcf-pid="W47u9PcneU" dmcf-ptype="general">닌텐도 DS와 '위'의 성공으로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전 세계에서 스티브 잡스와 더불어 혁신 기업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를 힘들게 만든 것은 그가 존경했던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이었다.<button data-cmd="hk-paragraph-remove" role="button" title="삭제" type="button"><svg class="fr-svg" focusable="false" viewBox="0 0 24 24" xmlns="http://www.w3.org/2000/svg"><path d="M9.595 1c.957 0 1.736.715 1.976 1.667H16.5v1.25h-1.088l-.787 11.041c0 1.199-.829 2.211-1.921 2.287l-.133.005H5.43c-1.113 0-1.985-.967-2.048-2.106l-.004-.138-.79-11.09H1.5v-1.25h4.928c.23-.907.949-1.599 1.844-1.661L8.405 1h1.19zm4.563 2.917H3.841l.784 11.041c0 .556.334.982.72 1.036L5.43 16h7.142c.393 0 .753-.39.8-.964l.006-.126.781-10.993zM7.958 6v7.083h-1.25V6h1.25zm3.334 0v7.083h-1.25V6h1.25zM9.595 2.25h-1.19c-.252 0-.49.16-.642.417h2.474c-.134-.228-.338-.38-.558-.411l-.084-.006z"></path></svg></button></p> <p contents-hash="5364ba704c1aab97826aca987dfdd473b2a9084666fc9d4494f21c4195c54564" dmcf-pid="G6qzVxEoL0" dmcf-ptype="general"><a href="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817300002694" target="_blank">※ 이 기사는 한국일보의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더 자세한 기사 내용은 한국일보닷컴에서 로그인 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a></p> <p contents-hash="046b302408b4a5d7725291bf7ce53ae01f0b34ef85385061b972394c44c44ff5" dmcf-pid="HPBqfMDgd3" dmcf-ptype="general">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817300002694 </p> <div contents-hash="485f8f659cb3f37efc3651116492599d89032863b701154df1426345ab20297e" dmcf-pid="5M9K6dmjL1" dmcf-ptype="general"> <p> </p> <div> <p><strong>빅테크 스토리</strong></p> </div> <ol> <li> <div> <strong>① 네이버의 성공과 도전</strong> </div> <ol> <li>• 삼성도 “성공 못할 것”이라던 네이버... 큰 기대 안했던 서비스가 회사 살렸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90515150005276)</li> <li>• 삼성전자보다 시가총액 높았던 회사와 합병 발표…그러나 한 달 뒤 취소됐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00119300002431)</li> <li>• “절대 못 이긴다”던 글로벌 기업과의 검색광고 전쟁...네이버는 어떻게 살아남았나<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01617360005992)</li> <li>• 야후 엠파스 라이코스...경쟁자 차례로 쓰러뜨린 네이버의 무기는 지식인과 뉴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01716330003010)</li> <li>• “독도는 한국땅”이라 답변 못하는 인공지능…네이버가 AI주권을 외치는 이유<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0919520000863)</li> </ol> </li> <li> <li> <div> <strong>② TSMC의 히든카드</strong> </div> <ol> <li>• ‘보이지 않는 검은손’ TSMC “경쟁자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전략”<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2613440000662)</li> <li>• 삼성에 한방 맞은 TSMC...24시간 풀가동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로 1위 지켰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1716550003236)</li> <li>• 미국이 비웃은 아이디어, 대만이 세계 1위 만들었다...TSMC 성공 스토리<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11217170003105)</li> <li>• 후계자 선정과 소송 전쟁…TSMC가 지킨 원칙은 “인재 유출을 막아라”<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0409450001360)</li> <li>• “우리와 손잡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제안 거부...TSMC 메모리 사업의 결과는?<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0916340005863)</li> <li>• “우리가 중국 기업이라고?” 세계 1위 TSMC가 일본과 손잡은 속사정<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1817120002174)</li> </ol> </li> <li> <li> <div> <strong>③ 구글의 핀포인트</strong> </div> <ol> <li>• 구글은 오타로 잘못 지은 이름이었다…인터넷 전체 저장하려던 두 천재의 무모함<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2517200004757)</li> <li>• 구글, 폐기 컴퓨터에서 빼낸 부품 활용해 '검색 왕국' 세웠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123116540000563)</li> <li>• 돈 없어 못 꾸몄는데…'텅 빈 홈페이지'가 구글 혁신의 상징 됐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0615120001843)</li> <li>• "사악한 검색광고"라 했던 구글...어떻게 세계 최대 광고 매체 됐을까<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1516430002142)</li> <li>• 구글이 염소 떼에 풀 먹이고,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이유<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217200002386)</li> <li>• 구글에 최초 투자한 사람은 누굴까?...시연 보자마자 10만달러 수표 건넨 전설의 투자자<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3015030005507)</li> <li>• MS·야후를 ‘사악한 기업’이라 공격했던 구글…싸우면서 닮아갔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0515080002905)</li> </ol> </li> <li> <li> <div> <strong>④ 닌텐도의 어벤저스</strong> </div> <ol> <li>• 화투 만들던 닌텐도…버림받은 창업자의 손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1313560004415)</li> <li>• 남녀 애정도 측정하는 '러브테스터' 개발…닌텐도 살린 괴짜 천재<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2015560003249)</li> <li>• 슈퍼 마리오 만든 '게임의 신'...닌텐도에서 12년간 만년 과장이었던 이유는?<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2616550000775)</li> </ol> </li> <li> </ol> <p> </p> </div> <div contents-hash="66a7d9813e63dfa2e2739f0f91f97305a01e0297c490777f26e23ae483905dcd" dmcf-pid="1R29PJsAd5" dmcf-ptype="general"> <div> <strong>연관기사</strong> </div> <div> <div> <div> • "연기 때려치우고 유학 가겠다" 방황하던 박정민을 붙잡은 한 통의 전화 <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601300001170) </div> </div> <div> <div> • 주식투자를 '돈놀이'라 여겼던 진보…그들을 위한 투자 전략은? <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2610120002805) </div> </div> <div> <div> • 전문가 예측·데이터 모두 '헛다리'…프로야구 예상 순위는 왜 항상 맞지 않을까 <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316110002104) </div> </div> <div> <div> • "도그 파이트 끝났다"… 전투기 대신 수송기가 미사일 90발 쏘는 시대 <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309220000650) </div> </div> <div> <div> • 박정희가 추진한 한일국교정상화...'변절자'로 몰렸지만 "필요하다" 소신 밝힌 김대중 <br>(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2516270001318) </div> </div> </div> </div> <p contents-hash="bd5aa7527dff6ea3665097023f28fac3d4608a38f2a9ad161032943dc71c499d" dmcf-pid="37ZX0BJ6iH" dmcf-ptype="general">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우리 회사 망은 정말 괜찮을까?”… 뚫린 줄도 모르는 기업들, 해답은 ‘위협 헌팅’ 03-09 다음 "AI가 먼저 말 건다"…4900만명 쓰는 카톡 앞세운 AI 전략 본격화 03-09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