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머리부터 안전지킴이”… 레슬링 전설 박장순의 변신 작성일 03-05 4 목록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6/03/05/0000737258_001_20260305090213029.jpg" alt="" /></span> </td></tr><tr><td> ‘레슬링 전설’ 박장순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이 매트를 넘어 스포츠 현장의 안전을 책임진다. 박 이사장이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실에서 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용학 기자 </td></tr></tbody></table> <br> “항상 ‘안전모’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지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잖아요.”<br> <br> 근육질 몸매, 짧은 머리카락이 흠뻑 젖을 정도로 흘리는 굵은 땀방울. 올림픽 레슬링 무대를 누비며 3개의 메달을 거머쥔 청년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50대 중반 나이가 됐다. 건장한 체격의 패기 넘치는 파이팅은 여전하다.<br> <br> 달라진 것이 있다면 헤어 스타일이다. 일명 ‘바가지 머리’로 불리는 안전모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며 스포츠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바로 한국 레슬링의 전설 박장순(58)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이다.<br> <br> 박장순 삼성생명 레슬링단 자유형 감독은 현재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으로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해 5월 제6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선수와 지도자로 평생 레슬링 매트를 지켜온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고,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6/03/05/0000737258_002_20260305090213103.jpg" alt="" /></span> </td></tr><tr><td> 박장순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 사진=스포츠안전재단 제공 </td></tr></tbody></table> <br> 박 이사장은 1988 서울 올림픽과 1996 애틀랜타 대회 은메달, 1992 바르셀로나 대회 금메달을 따낸 한국 레슬링의 전설이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레슬링연맹(UWW)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br> <br> 은퇴 이후에도 대한체육회 이사와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맡으며 체육 현장을 지켜왔다. 그가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에 오르며 유승민 대한체육회장(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하형주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1984 LA 올림픽 유도),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2000 시드니 패럴림픽 사격)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한국 체육단체를 이끌어가는 현장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br> <br>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공익 재단법인인 스포츠안전재단은 교육, 공제, 안전점검 등을 통해 국민과 체육인이 보다 안전하게 스포츠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6/03/05/0000737258_003_20260305090213170.jpg" alt="" /></span> </td></tr><tr><td>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박장순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이 지난 2016년 8월1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리오카 아레나2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급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뒤 국가대표선수 김현우와 포옹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td></tr></tbody></table> <br> <strong>◆“레슬링이 뭐죠?” 시골 어린이, 올림픽에 서다</strong><br> 산골 소년이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굽이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야 했다. 충남 보령에서 나고 자란 박 이사장의 첫 운동은 씨름이었다. 장사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따라 자연스럽게 씨름판에 발을 들였다. 유년기를 떠올린 박 이사장은 “그때 시골 아이들은 레슬링이라는 종목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라며 “사실 나도 그랬다”고 껄껄 웃었다.<br> <br> 그러던 어느 날, ‘팍’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브라운관에 비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의 모습 때문이었다. 양정모는 당시 레슬링 자유형 62㎏급을 제패하며 8·15 광복 이후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 장면이 소년 박장순의 마음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레슬링이라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br> <br> 진학한 중학교에는 레슬링부가 없었다. 어떻게든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대전체고를 찾아 훈련 참여 허락을 받았고, 자투리 시간을 쏟아부었다. 칠갑산을 넘어 대전 유성구까지 가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일상의 연속이었다.<br> <br> 겨울이면 배낭을 메고 칼바람 부는 벌판을 가로질렀다. “뼈에 사무치도록 걸었던 길”이라는 설명이다. 박 이사장은 “그 시절이 내게 초심을 새겨준 시간이었다”며 “덕분에 포기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 않게 됐다”고 강조했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6/03/05/0000737258_004_20260305090213238.jpg" alt="" /></span> </td></tr><tr><td> ‘레슬링 전설’ 박장순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이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용학 기자 </td></tr></tbody></table> <br> 레슬링 입문 3년 만인 1983년, 소년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에는 좀처럼 성과가 따르지 않았다. 결승 문턱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는 “온 가족이 참 우울했던 시기였다”고 돌아봤다.<br> <br>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대학 진학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지원했던 한국체대에서 대기번호를 받은 것. 가까스로 입학 취소자가 생겨 턱걸이를 했을 정도다.<br> <br> 비로소 꽃을 피웠다. 국가대표로 발탁돼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AG), 올림픽을 누비며 남다른 기량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br> <br> 당시 헝가리에 전지훈련 거점을 마련, 국가대표 선수들이 장기간 해외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소련 선수들과 겨루는 등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박 이사장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때 해외 전지훈련은 정말 의미가 컸다”며 “수준 높은 세계 레슬링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br> <br> 올림픽 메달만 3개다. 굵직한 궤적을 남긴 박 이사장을 향해 ‘괴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타고난 재능 덕분이라는 평가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인생도, 운동도 결국 타이밍”이라고 운을 뗀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계속 준비하고 버티다 보면 결국 자기만의 순간이 온다”고 했다.<br> <br> 그러면서도 “물론 노력 없이 기다리는 건 의미가 없다. 피나는 시간을 견디고 나서야 기회도 생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6/03/05/0000737258_005_20260305090213308.jpg" alt="" /></span> </td></tr><tr><td> 박장순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왼쪽)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td></tr></tbody></table> <br> <strong>◆매트 위 전설의 새 도전… 스포츠 ‘안전’을 외친다</strong><br> 이젠 또 다른 방향으로도 고개를 돌린다. 지난해 스포츠안전재단 수장에 오르며 ‘스포츠 안전’이라는 새로운 영역과 마주하게 됐다. 선수와 지도자로 현장을 오래 경험해 왔지만, 스포츠를 ‘안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확실히 달랐다.<br> <br> 박 이사장은 “이전까진 부상 예방이나 컨디션 관리 등 개인의 안전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훨씬 넓은 범위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생활체육을 즐기는 국민, 학교체육 현장의 학생들, 경기장을 찾는 관람객까지 현장에서 함께하는 모든 이의 안전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깊다”고 덧붙였다.<br> <br> 현역 생활 동안 직접 겪었던 부상은 지금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 그는 “선수 시절 뇌진탕을 겪었고 잦은 부상 때문에 은퇴를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며 “부상으로 운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조금 더 체계적인 관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돌아봤다.<br> <br> 스포츠안전재단은 바로 이 지점을 보완하는 기관이다. 박 이사장은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교육과 점검 등 사전 준비를 통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재단이 하는 일은 현장에서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6/03/05/0000737258_006_20260305090213393.jpg" alt="" /></span> </td></tr><tr><td> ‘레슬링 전설’ 박장순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이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실 앞 재단 로고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용학 기자 </td></tr></tbody></table> <br> 과제도 분명하다. 스포츠안전재단이 수행하는 다양한 안전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br> <br> 그는 “재단이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법 개정을 통해 재단의 법적 지위를 보다 명확히 하고 서비스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설명했다.<br> <br> 또 다른 목표는 스포츠 안전 분야에서 한국이 국제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스포츠 안전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나 협력 체계가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축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표준을 제시하는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br> <br> 스포츠 현장을 향한 당부도 전했다. 박 이사장은 “사고는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방심하는 순간에 발생하기도 한다”며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안전에 대한 작은 관심이 더 나은 스포츠 환경을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6/03/05/0000737258_007_20260305090213499.jpg" alt="" /></span> </td></tr><tr><td> ‘레슬링 전설’ 박장순 스포츠안전재단 이사장이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 도중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김용학 기자 </td></tr></tbody></table> <br> <strong>◆“스스로를 의심하지 말라” 후배들 향한 메시지</strong><br> 박 이사장은 부활을 향해 날갯짓하고 있는 한국 레슬링 후배들을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한때 ‘효자종목’으로 불리던 레슬링은 부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2021년 개최)에서는 단 한 개의 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올림픽 ‘노메달’은 1972년 뮌헨 대회 이후 49년 만이었다. 2024 파리 올림픽 역시 메달 없이 대회를 마쳤다.<br> <br> 박 이사장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왔던 한국 레슬링이 최근 주요 국제대회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br> <br> 이어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메달 도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선수들과 지도자들 모두 큰 부담 속에서 경쟁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br> <br> 물론 희망의 신호도 있다. 그는 “그레코로만형 63㎏급 정한재 선수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을 따는 등 긍정적인 장면도 있었다”면서도 “여전히 경쟁 강국들과의 격차를 체감하는 순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현장 지도자로서도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br> <br> 오는 9월 2026 아이치·나고야 AG를 앞둔 후배 선수들에게도 조언을 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준비 과정에서의 안전 관리와 자기 관리일 터. 박 이사장은 “경기력 향상 못지않게 부상 예방과 체력 관리가 전체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훈련 중 작은 부상이라도 가볍게 넘기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몸 상태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br> <br> 마지막으로 그는 “경기에서는 지금까지 쌓아온 훈련과 준비를 믿고 스스로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긴장과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믿고 매번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후배들을 응원했다.<br> 관련자료 이전 비행편 구한 국가대표 신산희, 대만 통해 중동 탈출 03-05 다음 '제2의 차준환' 서민규, 주니어 세계선수권 쇼트 2위...3연속 메달 눈앞 03-0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