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긴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 작성일 03-02 42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H1MVJnyOIr">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ea1ccac7197f6d76e1b43a69ba43ff964210421ff0845ea3f1db8737f02b4471" dmcf-pid="XtRfiLWIsw"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Artificial intelligence with human brain circuit electric background. Digital futuristic big data and machine learning. vector banner art illustration."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3/02/hani/20260302070633813oazb.jpg" data-org-width="754" dmcf-mid="YEXDTWfzD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2/hani/20260302070633813oazb.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Artificial intelligence with human brain circuit electric background. Digital futuristic big data and machine learning. vector banner art illustration.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700dacf33e591e4a98ca06219569498d4fb0682776d868848199e6fc6630ceea" dmcf-pid="ZFe4noYCrD" dmcf-ptype="general"> 한 도서관 강의. 시민 한 분이 손을 들었다. “학생들이 왜 긴 글을 읽어야 하는지 잘 이해를 못해요. 선생님께서는 왜 긴 글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장문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쇼츠와 릴스, 틱톡이 청소년들의 일상 곳곳에 파고든 지금,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p> <p contents-hash="88cb7416c909a6c504c2e8e70a0abccd24be77e99f57c49086b9fbf9984b43d4" dmcf-pid="53d8LgGhIE" dmcf-ptype="general">“학생들이 정말 글을 읽기 어려워하죠. 성인도 마찬가지예요. 몇해 전 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기승전결’이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를 견뎌내지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느려서요. 그래서 원하는 구조가 바로 ‘절정-절정-절정-결말’이라고 하셨는데, 웃었지만 슬펐습니다. 저라고 학생들을 단번에 설득할 수 있는 비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긴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삶, 더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지 궁금해하니까요. 그저 알면 좋은 정보를 넘어 생존을 위한 정보가 필요한 거죠. 그 상황에서 긴 글을 읽지 않는 이는 누군가의 ‘세 줄 요약’을 원하게 되죠. 이렇게 되면 요약하는 사람 혹은 인공지능이 그의 생각을 점령하게 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을 다른 존재에게 전적으로 맡겨버리게 되는 거예요.” </p> <p contents-hash="fba1e3c3c8086e30531e395a4c3103b3b71e5f2c35e7bcbfb8af586f8c41231c" dmcf-pid="10J6oaHlDk" dmcf-ptype="general">세상사는 간단하지 않다. 가령 인공지능의 부상에 따른 저자성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각에서는 인공지능을 글을 쓰는 주체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인공지능의 부상 속 사실상 인간만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이유를 댄다. 드러나는 현상만 본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 저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문법에 맞게 단어를 늘어놓는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글을 써낸다. 나아가 책의 내용에 대해 윤리적·사회적·법적 책임을 진다. 출판물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p> <p contents-hash="67d923f060bbb364d27cbe59ff419051b2d59b407bbd8baffc36c2f22cdf4d42" dmcf-pid="tpiPgNXSrc" dmcf-ptype="general">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자기 자신의 경험을 갖는가? 논쟁이 있지만, 현재 인공지능의 정보처리는 인간의 경험과 비교할 수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인공지능이 책임을 질 수 있는가이다. 단연코 그럴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인공지능 챗봇은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두 챗봇은 “클로드는 인공지능이며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응답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와 “챗지피티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는 재차 확인하세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다. 인공지능이 오류를 범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은 챗봇 자체나 챗봇을 제작한 회사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음을 고지하는 것이다. 참고로 인공지능의 환각은 수리 통계학적으로 완벽히 제거되기 힘든 특성이다. </p> <p contents-hash="f4cf2427def862c860de0fd05ae29251faef172121f2af4afd5957a15ccbe990" dmcf-pid="FUnQajZvmA" dmcf-ptype="general">이렇듯 인공지능의 저자성을 둘러싼 논의는 복잡다단하며 깔끔하게 정리되기 힘들다. 쇼츠나 2~3분짜리 동영상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최소한 수십 쪽의 글 혹은 제법 긴 다큐멘터리 정도는 되어야 이 주제를 조망하는 관점을 형성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세상사가 대부분 이렇다. </p> <p contents-hash="8077914c8b5f09d4bff3e59f7b6c16de1489a1cbaae35156674828e8db6fe5c6" dmcf-pid="3uLxNA5Trj" dmcf-ptype="general">복잡한 세계에 대해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이해를 구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요약된 견해를 좇는 이들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 있으니 바로 ‘편들기’와 ‘이익이 되느냐’이다. ‘누구의 편에 서는 게 유리한가?’와 ‘이게 나에게 돈과 인기, 명예를 가져다주는가?’라는 두 질문이 사유를 대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될 때가 있다. </p> <p contents-hash="342509656d9850037f3f349a43942f2231448d5059004b06bf037754d3567f2d" dmcf-pid="07oMjc1yON" dmcf-ptype="general">기억해야 한다. 삶과 사회에 대한 이해는 인간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힘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요구한다는 것을. 세상사는 언제까지나 변화무쌍할 것이며,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계의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으며 오래 배우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전히 긴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p> <p contents-hash="eaf895fe487202e791117d3c996c48bf00cec4966a754152a50d6abc04ca9118" dmcf-pid="pzgRAktWwa" dmcf-ptype="general">응용언어학자</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e00355b44487262540df03ef911d9ac5b825ff63a47f5878961d10ad46d6be0c" dmcf-pid="UG8BxRhDIg"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3/02/hani/20260302070635053hcwp.jpg" data-org-width="970" dmcf-mid="GpyOHZQ9sm"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2/hani/20260302070635053hcwp.jpg" width="658"></p> </figure>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p> 관련자료 이전 "폰 바꿔볼까?"…이통3사 S26 사전판매 공통지원금은 최고 25만원 03-02 다음 “감정·관계 조정하는 역할은 AI가 대체 못해” 03-0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