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하의 밀라노리포트]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밀라노 작성일 02-20 30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최후의 만찬’에서 올림픽까지, 한 도시가 반복해 온 질문</strong><table class="nbd_table"><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1/2026/02/20/0002772101_002_20260220120518949.jpg" alt="" /></span></td></tr><tr><td></td></tr></table><br><br>올림픽 도시 밀라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다. 다빈치는 떠도는 인간이었고 피렌체에서 태어났지만 한 도시에 뿌리내리지 않았고, 스스로를 화가라기보다 모든 호기심의 탐구자요 가능성의 설계자로 여겼다. 그런 그가 가장 오래, 가장 집중적으로 머문 도시는 밀라노였다.<br><br>1482년 다빈치는 밀라노 군주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자신을 화가로 소개하지 않는다. 군사 기술자, 토목 설계자, 도시 문제 해결사로 자신을 설명하고, 그리고 그림도 그린다라고 맨 마지막에 덧붙인다. 이 편지 한 장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밀라노는 다빈치에게 ‘예술의 도시’라기보다 ‘탐구와 실험의 도시’였다.<br><br>밀라노는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도시였다. 이곳에서 다빈치는 호기심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상상을 그릴 수 있었고, 설계할 수 있었으며, 실패할 수도 있었다. 밀라노는 예술가에게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새로 창조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 질문의 한가운데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다.<br><br>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에 그려진 이 그림은 종교화이지만, 실은 감정의 해부도에 가깝다. 이상화된 성인도, 신비화된 구원도 없다. 대신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 말이 떨어진 직후, 인간이 보이는 반응들이 있다. 동요, 부정, 분노, 수치, 침묵, 갈라지는 시선. 다빈치는 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진실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을 분석한다. 이것은 피렌체적 낭만이 아니라, 진실을 탐구하려는 밀라노적 사고다.<br><br><table class="nbd_table"><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1/2026/02/20/0002772101_003_20260220120518975.jpg" alt="" /></span></td></tr><tr><td></td></tr></table><br><br>기술적으로도 이 작품은 무모한 실험이었다. 다빈치는 프레스코를 포기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마른 벽 위에 물감과 템페라를 섞는 방식을 택했다. 순간적으로 말라버리는 프레스코는 스케치하고 칠하고 수정하고 또 그리는 그의 완벽 추구에 맞지 않았다. 완성도는 높았지만, 보존성은 치명적으로 약했다. 그럼에도 이 선택이 가능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밀라노는 탐구를 허용하는 도시였기 때문이다.<br><br>이 도시에서 그는 화가이자 공학자였고, 예술가이자 관리자였으며, 사색가이자 실무자였다. 도시 종합프로젝트의 설계자였다. 밀라노는 천재가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br><br>이 도시의 태도는 5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밀라노가 2026년 동계올림픽을 대하는 방식 역시 그렇다. 이 올림픽은 메달이나 이벤트의 문제가 아니다. 밀라노는 올림픽을 또 하나의 도시 프로젝트로 이해한다.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고, 도시의 일상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는 분산 구조를 택했다. 과시보다 실용과 지속성을 선택한 것이다.<br><br>‘최후의 만찬’과 올림픽은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대상이다. 하나는 종교화이고, 다른 하나는 스포츠 이벤트다. 그러나 그 내면의 질문은 같다. 개인의 재능은 어떤 환경에서 최고가 되는가. 순간의 열광은 어떻게 일상으로 환원되는가. 결과는 어떻게 유산이 되는가.<br><br>‘최후의 만찬’이 오늘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그 작품의 위대성뿐 아니라, 그것이 위험한 실험이었고, 불완전했으며, 그럼에도 도시가 그것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밀라노 올림픽 역시 완벽한 쇼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태도를 제안한다. 도시는 이벤트를 일회성으로 소비하지 않고, 사유처럼 축적해야 한다.<br><br>르네상스의 밀라노가 다빈치에게 그랬듯, 오늘의 밀라노 올림픽은 세계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b>“한 번의 올림픽 이벤트를, 어떻게 시간의 강을 건너 오랫동안 살아남는 도시의 자산이자 레거시로 만들 것인가.”</b><br><br> 관련자료 이전 102년 역사 노르디복합, 올림픽 종목서 퇴출되나… “메달 독식·낮은 시청률이 원인” 02-20 다음 박정민·박해준→신세경, '휴민트' 임팩트 GV 참석 확정 02-2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