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투잡, 아들은 막노동… “메달이 천운? 운 부를만큼 버텼다” 작성일 02-10 43 목록 <b>스노보드 은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김상겸의 37년</b><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3/2026/02/10/0003958239_001_20260210005618578.jpg" alt="" /><em class="img_desc">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김상겸. /뉴스1</em></span><br> “왜 그렇게 소리를 많이 질렀냐고요? 결승에 가까워질수록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집중하려고 일부러 그랬습니다.”<br><br>8일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깜짝 은메달’을 따낸 김상겸(37)은 취재진을 만나 승리할 때마다 내지른 포효가 단순한 기쁨의 표현만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면 눈물부터 난다”며 “엄마와 아빠, 아내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고 말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3/2026/02/10/0003958239_002_20260210005618668.jpg" alt="" /><em class="img_desc"> AP 연합뉴스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1호 메달리스트가 된 김상겸이 8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시상식을 마친 뒤 양손에 은메달과 보드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과 아내에게 메달을 얼른 걸어주고 싶다”고 말했다.</em></span><br> 김상겸의 아버지 김영국(61)씨는 이날 강원도 평창군 봉평읍 자택에서 TV 중계를 켜놓고도, 정작 아들이 레이스를 할 때는 제대로 화면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는 “내가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못 보겠더라”며 “상겸이가 다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영국씨는 봉평에서 겨울엔 스키·스노보드 렌털 숍을 운영하고, 봄부터 가을엔 감자와 배추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생계를 꾸리면서 김상겸을 중학생 때부터 20년 가까이 뒷바라지하며 올림픽 스노보더로 키워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3/2026/02/10/0003958239_003_20260210005618746.jpg" alt="" /><em class="img_desc">9일 강원도 평창 스키렌탈샵에서 밀라노 동계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을 획득한 김상겸 선수 아머지 김영국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em></span><br> 김상겸은 우리나라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선수로는 2014년 처음으로 올림픽(러시아 소치) 무대를 밟은 개척자다. 하지만 소치 대회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국가대표 승선에 실패했고, 휴대전화 요금을 걱정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국제 대회 출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막노동에 나섰으며, 훈련 기간에도 아르바이트와 운동을 병행했다. 김상겸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소속팀이 없어 아파트 건설 현장과 가스 공장 등 인력 파견 업체가 보내는 곳이라면 군말 없이 다 갔다”고 했다. 그런 아들을 보는 아버지도 내내 마음이 아팠다. 김영국씨는 “상겸이에게 ‘차라리 다른 운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여러 번 말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가 좀 이해하고, 져 달라. 나는 이 운동을 끝까지 하겠다”고 단호하게 답했다.<br><b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3/2026/02/10/0003958239_004_20260210005618833.jpg" alt="" /><em class="img_desc"> 고운호 기자아들의 꿈 함께 짊어진 아버지 김상겸의 아버지 김영국씨가 9일 자신이 운영하는 강원도 평창의 스키·스노보드 렌털 숍에서 어깨에 스노보드를 얹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em></span><br> 2019년, 서른이 되어서야 김상겸은 실업팀 하이원에 입단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이상호가 평행 대회전 은메달을 따내며 실업팀이 창단된 덕분이었다. 평창 대회에서 16강에 오르며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성적이 꾸준히 오르지는 않았다. 기대를 안고 출전한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24위에 그치며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br><br>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김영국씨는 위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로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지만 아들에게는 한동안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상겸은 “제가 흔들릴까 봐 묵묵히 버텨오신 만큼,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없는 국제 대회에서 기량을 갈고닦은 그는 결국 네 번째 올림픽 무대에서 은빛 메달을 움켜쥐었다.<br><br>김상겸은 은메달을 확정한 뒤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결혼도 운이 좋았다”고 했다. 2017년 친구 소개로 만난 김상겸과 아내 박한솔(31)씨는 연인 사이로 평창 올림픽을 함께했다. 코로나 여파로 떨어져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영상 통화로 결혼을 약속했고, 이듬해 4월 웨딩마치를 울렸다. 박씨는 “오빠가 출전한 유러피언컵 같은 대회는 영상 중계가 없는 경우가 많아 FIS(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 앱에서 기록 숫자가 바뀌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말했다.<br><br>한때 월드컵 출전권을 따기 위해 유러피언컵과 북미컵 등 대륙컵 무대를 쉼 없이 두드렸던 김상겸은 지난 시즌 중국 월드컵 2위, 폴란드 월드컵 3위에 오르며 도약의 발판을 놓았다. 박씨는 “올 시즌 보드를 바꾸고 ‘느낌이 좋다’고 하길래 기대를 했지만 성적이 바로 따라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림픽에서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br><br>김상겸은 준우승 비결로 “운이 따랐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운이 아니라 버틴 시간이 만든 결과”라고 했고, 아내도 “운을 부를 만큼 오래 견뎠다”고 했다. 김상겸을 중학교 때부터 가르친 스승 봉민호(52) 감독은 “상겸이의 은메달은 대기만성의 표본”이라며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br><br> 관련자료 이전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이번이 마지막되나… IOC서 퇴출 논의 02-10 다음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이지혜, 고혹적 아우라[화보] 02-1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