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암살 '1순위' 체 게바라, '저항의 상징'이 된 이유 작성일 02-03 24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FpKp1v3Gdh"> <p contents-hash="ac403aed2c72aac5fe32a271a9e43c867ed7403d73afe43b190d4942498d61a6" dmcf-pid="3U9UtT0HdC" dmcf-ptype="general">[이준목 기자]</p> <p contents-hash="2089485ff37ee84d61d43402849e083548ae899834f1d4e3c3ba7669bf0094f9" dmcf-pid="0u2uFypXLI" dmcf-ptype="general">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1950년대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주역으로 미국 패권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인물들이다. 이들이 '혁명가인가, 독재자'인가를 두고 시각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며, 지금까지도 세계사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p> <div contents-hash="1f91878e9d109810304a7cdce6c5a85d62976025224311509c343fd3062641a6" dmcf-pid="p7V73WUZdO" dmcf-ptype="general"> 2월 2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미국의 암살 1순위,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편이 그려졌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3676b204b04c02dc7d036b848ec5af6fa72b6d58e75f7ffb99d3d655369becb7" dmcf-pid="U7V73WUZds"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2/03/ohmynews/20260203162725775xmpf.jpg" data-org-width="1280" dmcf-mid="HP8BUHztL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3/ohmynews/20260203162725775xmpf.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벌거벗은세계사</strong> 체게바라 카스트로</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d00d0b8a9191505d0542245a7db8f0d9846e75b7979626a13e346c33ac1b08c6" dmcf-pid="uzfz0Yu5em" dmcf-ptype="general">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의외로 둘다 유복한 환경에서 고등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금수저' 출신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체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출생했고, 한때는 명문대 의대에 진학하며 의학도를 꿈꿨던 모범생이었다. 카스트로는 1926년 8월 13일 쿠바에서 대규모 설탕농장을 운영하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법대를 거쳐 변호사가 될만큼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div> <p contents-hash="c737485436a0ad0ea436e828e67932fd26dedd1330687506ddf2b887b313fdb7" dmcf-pid="7q4qpG71Mr" dmcf-ptype="general">충분히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살수 있었던 두 엘리트는 왜 돌연 혁명가의 길을 선택했을까. 당시 라틴아메리카는 300여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하나둘씩 독립에 성공했다. 미국은 1823년 '먼로 독트린'이라는 외교정책을 발표하여 유럽 열강들의 아메리카 개입과 식민지 확장을 금지한다.</p> <p contents-hash="cb2f0c9667257e00ded6c13315675c834da1cdf70db2cc9c871d1efff33ba0b3" dmcf-pid="zB8BUHztiw" dmcf-ptype="general">경쟁자들을 차단한 미국은, 자원이 풍부한 라틴아메리카의 핵심 인프라를 장악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에 개입하여 반미 성향의 정권을 쿠데타와 공작으로 제거하고 친미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사실상 미국 기업이 남미 경제를 지배하는 구도가 되면서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했다. 남미의 많은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속에서 착취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했다.</p> <p contents-hash="97d7bf360cdf6e2bec6ca0887990481c368125ef5c7d55e4abd98dcbf615348d" dmcf-pid="qb6buXqFRD" dmcf-ptype="general">1951년 체 게바라는 9개월에 걸쳐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도는 대장정을 기획한다. 20대 청년이었던 체 게바라에게 이 여행을 통해 조국과 라틴아메리카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고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체 게바라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p> <p contents-hash="c5fefc41276d3fef06ed3fcd2ed9d4faa26e44598da90c47d64c67c070a491ac" dmcf-pid="BKPK7ZB3nE" dmcf-ptype="general">카스트로는 변호사가 되어 주로 노동자를 변호하는 사건을 맡았지만, 줄줄이 패소를 면하지 못했다. 당시 쿠바는 친미정권인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미국 자본과 마피아의 침투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환락과 부패, 범죄가 만연하는 사회로 전락했다. 카스트로는 권력을 쥔 자들이 법을 통제하는 쿠바의 부패한 현실에 실망하여,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정치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p> <p contents-hash="4d73e5603d18466c1201138938f78834100cba2e25da851d34953992c3ee7f8b" dmcf-pid="b9Q9z5b0Rk" dmcf-ptype="general">1955년 카스트로는 무장봉기를 기획했다가 실패한 후 망명한 멕시코에서 체 게바라를 처음으로 만나 의기투합한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함께 혁명군을 조직하여 1956년 다시 쿠바로 잠입했다.</p> <p contents-hash="f575cad2d0d4eeb4dfdf92b198f0d24942dc008ba55d26e7d748292178db5429" dmcf-pid="K2x2q1Kpnc" dmcf-ptype="general">1959년 1월 '쿠바 혁명'이 성공하며 카스트로의 혁명군이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 바티스타는 도미니카로 망명했다.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서 혁명군을 환영했다.</p> <p contents-hash="2031abdf59625091c92e5dd176d2014fd2999ef49f77b4072892d2f8aad0d26d" dmcf-pid="9VMVBt9UnA" dmcf-ptype="general">미국은 초기에는 쿠바 혁명을 민주 혁명으로 인정하고 카스트로 정권을 쿠바의 정당한 새 정부로 승인하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게 된다.</p> <p contents-hash="51ab4bb57253b8ea85a15fe5bcd11d30b51bec60699d0a88048d40aa91527602" dmcf-pid="2fRfbF2uej" dmcf-ptype="general">카스트로 정권은 집권 후 공개적인 혁명재판을 열고 바티스타 정권에 관여한 관계자 수백명을 적법한 절차나 증거 없이 사형 선고 이후 즉각 처형하는 정치보복을 단행했다. 또한 카스트로 정권은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국유화된 쿠바의 미국 소유 부동산을 압수하고 자산을 몰수했다. 혁명정권 출범 1년 만에 쿠바 땅의 미국 자산들은 모두 소멸했고, 3년간 25만명에 이르는 쿠바의 엘리트와 중산계층이 미국으로 망명한다.</p> <div contents-hash="4b46baa874829393408f23a2ad31c74f4f51e3847610aa3297391b18e8a90ca5" dmcf-pid="V4e4K3V7eN" dmcf-ptype="general"> 또한 카스트로 정권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소련과 동맹을 맺었다. 2차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패권경쟁을 펼치고 있던 냉전 시대였다. 소련에게도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패권을 흔들고, 미국의 바로 앞마당에서 위협을 가할수 있는 쿠바의 존재는 안성맞춤이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카스트로와 체 게베라는 통제 불가능한 숙적"으로 지칭하며 위험인물로 규정하게 된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1ad292dd1fec933f08397d091d048e237d9287f6e785a273beb56148724382c0" dmcf-pid="f8d890fzna"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2/03/ohmynews/20260203162727152osks.jpg" data-org-width="1280" dmcf-mid="tdgR6qx2d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03/ohmynews/20260203162727152osks.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벌거벗은세계사</strong> 체 게바라</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4ffe757a76791e0f1e4df81efadccd9ed294f6fc9080af6326ae667312b36b99" dmcf-pid="4B8BUHztMg" dmcf-ptype="general"> CIA는 비밀 프로젝트로 '카스트로 암살작전'을 기획했다. 기록에 따르면 CIA의 카스트로는 암살계획은 638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카스트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암살시도를 받은 인물'로 기네스북까지 오르게 되지만 단 한건도 성공하지 못했다. </div> <p contents-hash="2641ae176932e3c07223b402acb60ac8d47485b401d16fdd580b7c14a98772e7" dmcf-pid="8b6buXqFLo" dmcf-ptype="general">1961년 4월 16일 카스트로는 '사회주의 선언'으로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 국가에서 사회주의를 공식 선언한 최초의 사건이었다.</p> <p contents-hash="8cc4c6c85cb8ed8efefedec03127d64fd1361aba35653b4e9c2599de1a8b76fc" dmcf-pid="6KPK7ZB3eL" dmcf-ptype="general">경악한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하여 4월 17일 '피그스만 침공'을 기획한다. 하지만 쿠바군의 진압으로 상륙작전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실패로 끝났다. 쿠바와 소련은 미국의 재침공을 막기 위하여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초강수를 둔다. 앞마당에 핵미사일 기지를 두게 된 미국은 강력한 해상봉쇄를 단행하며 핵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된다.</p> <p contents-hash="cf66588362e5c41809b692e7a7a4ecec0db40de3a77ca4751feed00482d72603" dmcf-pid="P9Q9z5b0en" dmcf-ptype="general">강경파인 카스트로와 체 게베라는 유사시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며 소련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련은 정말로 미국과 핵전쟁까지 갈 의사는 없었기에 쿠바 몰래 미국과 협상을 진행했다. 합의 결과 소련은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핵미사일을 철수한다. 체 게바라는 또다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이용당했다며 실망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p> <p contents-hash="5021e09601f2c459401819cc1859c8294c4034a032184fed9f9be7e154f1fcf8" dmcf-pid="Q2x2q1Kpei" dmcf-ptype="general">1964년 12월 11일 체 게바라는 쿠바 대표로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 미국으로부터 위험인물로 규정되어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체 게베라는 미국의 한복판에서 미국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유엔 연설을 펼쳤다. 그는 "미국은 자유의 수호자가 아닌, 세계사의 가해자"로 라고 독설을 날렸다.</p> <p contents-hash="a94c09079e6d8b94a4ddcd625441aae9fd45040f86eccb32ff2d23f07399bd01" dmcf-pid="xVMVBt9UiJ" dmcf-ptype="general">이후 체 게바라는 쿠바를 떠나 미국 각지를 돌며 무장투쟁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불꽃을 퍼트리는데 앞장섰다. CIA는 체 게바라를 1급 수배 대상으로 규정하고 추격했다.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펼치다가 정부군과 CIA에게 체포되어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p> <p contents-hash="953808c29265f0b8aa3d46fcea105f4994945f3d01e07b056661cc8bb2bffe36" dmcf-pid="yIWIwosAJd" dmcf-ptype="general">당시 언론에서 체 게베라는 교전중에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75년 CIA 1급 기밀 보고서가 세상에 공개되며 체 게바라 죽음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다. 체 게바라는 생포되었으나 총살당했고 CIA는 고의로 여러 발의 총상을 남겨 교전중 사망한 것으로 조작했다.</p> <p contents-hash="daf80577cfa6aeaee64ee1f1eb715b692dfc4a36ebb37d4995dca8af3b3ec461" dmcf-pid="WCYCrgOcRe" dmcf-ptype="general">CIA의 만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체 게바라의 시신은 볼리비아에서 공개되며 관람객들이 들락거리는 가운데 구경거리로 전시됐다. 또한 CIA는 체 게바라의 신원 확인을 위하여 양손을 자르고 지문감식을 진행하는 시신 훼손까지 저질렀다.</p> <p contents-hash="185bf30319169e25b3d8ebc4e67fd1e0478883e42c4ebc8342b2b5ae83a6c1fb" dmcf-pid="YhGhmaIkMR" dmcf-ptype="general">하지만 미국의 잔혹한 조치는 역설적으로 체 게바라를 '저항의 상징'으로 부활시키는 뜻밖의 결과를 초래했다. 체 게바라의 시신을 닦았던 간호사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순교한 예수 그리스도가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쿠바에서는 전국적으로 체 게바라에 대한 추모 열기가 확산됐다.</p> <p contents-hash="406e9f7b3624189ed863e5c7f010a3edc26f60b46fa4a8318ce276dcb3460a4e" dmcf-pid="GlHlsNCEdM" dmcf-ptype="general">또한 유럽에서 벌어진 '68혁명'의 바람을 타고 세계 각지에서 학생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이 확산되며, 미국 패권주의에 맞섰던 체 게바라가 저항의 아이콘으로 재조명되기에 이른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시위 현장과, 대중문화, 굿즈 등을 통하여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이용되고 있으며 그 시장가치는 30조원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살아서는 자본주의에 그토록 저항했던 체 게바라가, 죽어서는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얼굴'이 된 것이다.</p> <p contents-hash="f31a707644dbe3ae6c3dea3dc9a8d8ebe92cc69875b3ef8ae6dab33d8b1824be" dmcf-pid="HSXSOjhDex" dmcf-ptype="general">체 게바라 사후에도 한때 승승장구하던 카스트로와 쿠바는, 1990년대 들어 냉전의 붕괴에 이어 든든한 배후이던 소련의 해체로 인하여 급격한 몰락을 겪게 된다. 극심한 경제 위기에 몰린 쿠바는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기근에 시달리며 주민들이 굶어주는 비참한 상황에 몰린다.</p> <p contents-hash="6a347920bc03606ab0c7515d51c2687177df1f20fe16c004b058cd1ca9da00e2" dmcf-pid="XvZvIAlwRQ" dmcf-ptype="general">한때 혁명의 영웅이었던 카스트로는 49년간 장기집권하며 쿠바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잔인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카스트로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2016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p> <p contents-hash="b541b41cbcaf0075b3fbc4223b6a8ab8805261835e8365c4bbc2f151d9923ecc" dmcf-pid="ZT5TCcSrLP" dmcf-ptype="general">쿠바는 2005년 미국과 54년만에 다시 수교를 체결하며 잠시 변화의 바람이 부는 듯 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집권 이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되었고 극심한 경제봉쇄를 당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쿠바 혁명 이후 반세기가 넘게 흘렀지만, 쿠바의 국민들은 여전히 빈곤과 고립에 허덕이고 있다. 과연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꿈꾼 혁명은 진정한 해방일까, 아니면 또다른 억압의 시작이었을까.</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정은지, "2000년대 감성 소환" '궁' OST 리메이크 곡 발매 02-03 다음 [단독]유재석도 감탄한 미녀와 결혼..남창희 "같이 있으면 편해, 내가 더 잘할 차례" [인터뷰] 02-03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