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청원이 61만인데, 김보름이 60만"...역대급 '마녀사냥' 당했던 빙상 인생 마침표 "말로 담기 어려운 시간들 지나왔다" 작성일 01-01 32 목록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77/2026/01/01/0000586867_001_20260101180019605.jpg" alt="" /></span></div><br><br>[스포티비뉴스=신인섭 기자] 김보름이 긴 빙판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을 대표해온 그녀는 올해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며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br><br>김보름은 지난달 30일 개인 SNS를 통해 은퇴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국가대표로 얼음 위에 서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며 "선수 생활은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스케이트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br><br>이어 "그 여정이 늘 쉽지만은 않았다. 기쁨의 순간도 있었지만,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시간들 또한 지나왔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버거웠던 날들도 있었고, 다시 일어서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스케이트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77/2026/01/01/0000586867_002_20260101180019645.jpg" alt="" /></span></div><br><br>쇼트트랙으로 빙상에 입문한 김보름은 고교 시절이던 2010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전향했다. 선택은 빠르게 결실로 이어졌다. 장거리와 매스스타트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며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후 10년 넘게 한국 여자 중장거리의 중심을 지켰다. 올림픽 무대에는 2014 소치, 2018 평창, 2022 베이징까지 세 차례 연속 출전했다.<br><br>국제대회 성과도 뚜렷하다.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3000m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50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매스스타트 금·은메달을 따내며 이 종목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했다. <br><br>그러나 김보름의 커리어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팀추월 경기에서 발생한 노선영과의 사건은 단순한 경기 결과 이상의 파장을 낳았다.<br><br>당시 한국은 팀추월 준결승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기록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들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br><br>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이 불거지며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경기 장면 일부와 해설이 겹치며 책임론이 개인에게 쏠렸고, 김보름은 대회 기간 내내 극심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br><br>레이스 운영과 팀 전술을 둘러싼 책임 소재가 언론과 여론 속에서 급격히 단순화되며, 김보름 개인에게 비난이 집중됐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77/2026/01/01/0000586867_003_20260101180019684.jpg" alt="" /></span></div><br><br>대회 기간 도중 국민 청원을 통한 퇴출 운동까지 일어났다. 당시 국민 관심이 컸던 만큼 인터넷에는 한 누리꾼이 "솔직히 김보름 청원 추천인 수 60만 명이 말이 되는가?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이 61만 명"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br><br>팀 종목의 구조적 문제, 준비 과정과 전략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한 선수의 태도'로 사건이 환원됐다. 이후 진상 규명 과정과 법적 판단을 거치며 일부 왜곡된 인식이 바로잡혔지만, 한 번 형성된 여론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br><br>대회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는 고의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이미 남은 상처는 깊었다. 김보름은 이후 동료 선수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고, 2023년 일부 승소 판결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했고, "빙판 위보다 빙판 밖이 더 무서웠다"는 말로 당시의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br><br>그럼에도 김보름은 스케이트를 놓지 않았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다시 서며 세 번째 올림픽 레이스를 완주했고, 이후에도 국가대표로 경쟁을 이어갔다. 논란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선수로 남겠다는 선택이었다.<br><br>14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 김보름은 "조금 천천히 걸어보려 한다"며 선수 이후의 삶을 준비하겠다며, 빙판 위에서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은 끝났지만, "새로운 곳에서도 흔들림 없이 제 길을 나아가겠다"고 밝혔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77/2026/01/01/0000586867_004_20260101180019721.jpg" alt="" /><em class="img_desc">▲ ⓒ연합뉴스</em></span></div><br><br><strong>#이하 김보름 은퇴 선언 전문</strong><br><br>11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해<br>2010년부터 2024년까지<br>국가대표로 얼음 위에 서며 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br>그리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정했습니다.<br><br>어린 시절 얼음 위에 처음 발을 디뎠던 날부터<br>스케이트는 제 삶의 전부였습니다.<br>어설프게 균형을 잡던 아이는 꿈을 품었고,<br>그 꿈을 따라 멈추지 않고 달려왔습니다.<br>그 길 위에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이라는<br>값진 무대와 소중한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br><br>그 여정이 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br>기쁨의 순간도 있었지만,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시간들 또한 지나왔습니다.<br>결과보다 과정이 더 버거웠던 날들도 있었고,<br>다시 일어서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br>그럼에도 끝까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br>스케이트를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br><br>선수 생활은 여기서 마무리하지만,<br>스케이트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br>많은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도<br>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br><br>이제는 조금 천천히 걸어보려 합니다.<br>운동을 통해 배운 마음가짐과 자세로<br>새로운 곳에서도 흔들림 없이 제 길을 나아가겠습니다.<br><br>마지막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br>묵묵히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br><br>김보름 드림<br><br> 관련자료 이전 원희, 아이유의 ‘좋은 날’ 완벽 소화…아일릿, 韓·日 연말 가요제 장악 01-01 다음 이서진, 마이크 잡고 열창 포착..'비서진' 최초 노래 수발 01-0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