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놓쳤나"... 아내 잃은 남편이 되뇌다 깨달은 것 작성일 12-26 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리뷰] 연극 〈서재 결혼 시키기〉</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YNtV482uUX"> <p contents-hash="e0ef93468bf39eb1c97b64f3962af418679d3ee6c32eb68da937cfac837747e2" dmcf-pid="GSfoaNLx0H" dmcf-ptype="general">[이규승 기자]</p> <p contents-hash="fb76ce42f786922e6f109b1c0c54832f31a7317e5ca3fa8b7967a6ba9c34a311" dmcf-pid="Hv4gNjoM7G" dmcf-ptype="general">'자살사별'.</p> <p contents-hash="569ed82d735258448e8b26ac0a3da93228c72184515c46f3a151e226cccb8f5c" dmcf-pid="XT8ajAgRzY" dmcf-ptype="general">< 2025 공연예술창작산실 2차 제작지원 >의 프로그램북에서 이미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안면을 굳게 만들었다. 이것은 향후 벌어질 연극에 대한 설명이면서 일종의 경고로 보인다. 공연을 관람하고 난 이후의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20일,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서재 결혼 시키기〉 (12월 13일~12월 21일)를 보러 갔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낮춘 채 객석을 찾았다.</p> <p contents-hash="137646ed19c2f507db9a8e485c5e8786a0fb19a3ae8dc4b577a967b9c16a54ad" dmcf-pid="Zy6NAcaeUW" dmcf-ptype="general">무대가 열리자마자 먼저 다가온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수북이 책장을 메운 각종 책의 밀도였다. 책장은 장식이 아니다. 배경으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무대를 압도한다. 방을 꾸미는 가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가두는 벽처럼 뒤를 받치고 있다. 정돈된 서가가 주는 안정감이라기보다는 정리된 것들이 도리어 숨을 멎게 한다. 책들은 오와 열을 맞춰 줄지어 있고, 거기엔 각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데, 그 질서가 너무 뚜렷해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p> <p contents-hash="448320d0ef043666e28b1159369433b598805a66ffa1d8d82854285d5f81b76b" dmcf-pid="5WPjckNd7y" dmcf-ptype="general">이 서재에 갇힌 사람은 주인공 '성주'다. 아내 '해원'을 잃은 지 1년이라는 자막이 뜬다. 누구는 1년이면 '이제 좀 괜찮아졌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는 죽었다는 느낌이 없단다. 오히려 아내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 같단다. 나는 그 말이 자꾸 귀에 남는다. 죽음은 사건으로 끝났는데, 실감은 사건처럼 오지 않는다. 실감은 대개 습관과 생활을 타고 느리게 오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게 아니라,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물건을 보고 같은 냄새를 맡다가, 그제서야 '아, 정말' 하고 자리 잡는 방식으로 말이다.</p> <p contents-hash="2fff0ac8c637711fe6c4f98156abd1507a133369264487297a00159c938105a9" dmcf-pid="1YQAkEjJFT" dmcf-ptype="general">성주 곁에는 두 사람이 있다.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수영', 해원의 동생 '예은'. 셋은 같은 사실을 공유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아프지 않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어떤 작품은 비극을 '공동체적 감정'으로 묶어버리는데, 이 연극은 반대다. 같은 죽음일지라도 동일한 마음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한 메시지다. 누구도 "내가 알아"라고 말할 수 없고, 그래서 누구의 위로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가까운 말이 칼이 되는 순간과, 칼같은 말이 오히려 붙잡아 주는 순간이 번갈아 교차한다. 애도는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작품은 그 변덕을 '정상'이라는 단어로 눌러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p> <div contents-hash="3e827515153486fac8cb4a4decc9aa12b3f6992a796944bbdf29a407af4405db" dmcf-pid="tGxcEDAiuv" dmcf-ptype="general"> <strong>'정상적인 애도'라는 말의 무게</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fe4b0206936f990d609ebec6107eb4d0da21c901f29044e3da3f4594d746f927" dmcf-pid="Fkp6Qx8BUS"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0568uiop.jpg" data-org-width="1280" dmcf-mid="QWomOIrNF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0568uiop.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연극 <서재 결혼시키기> 공연 장면</td> </tr> <tr> <td align="left">ⓒ 한국문화예술위원회</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1d8f4611288915b6d47277015135d85408564442bc67b2b379223cf579027f1e" dmcf-pid="3EUPxM6bpl" dmcf-ptype="general"> 초반, 성주와 수영의 대화는 수시로 마찰을 일으킨다. 수영은 친구이자 전문가로서, 그를 어딘가로 데려가고 싶어 한다. 비슷한 사고를 경험한 이들이 모인 자조모임에 나갈 것을 권하고, 숨어있지 말고 다른 이들과 말하면서 감정을 만나 보라고 얘기한다. 말하자면 '회복의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그런데 성주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게 자신을 일종의 갇힌 틀로 분류하려 든다고 느낀다. </div> <p contents-hash="bb1f1b3dabf7ecb31efde06968bf72422745261c10c83f375731b592c5ad4eb8" dmcf-pid="0DuQMRPKFh" dmcf-ptype="general">성주는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그는 "나 같은 상황을 경험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외친다. 이 문장이 거칠어서 아픈 게 아니다. 오히려 사실에 가깝기에 더 아플 뿐이다. '자살사별'이라는 말은 하나로 묶이지만, 실제 사별의 원인과 과정은 저마다 다르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사람의 관계와 생활과 집안의 역사 전체를 끌어들인다. 남겨진 사람은 그 전체를 혼자 감내한다. 그래서 "비슷하다"는 말이 어떤 때는 위로가 아니라, 고립의 테두리로 작동한다. 아마 누군가는 "맞아"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필요는…" 하고 불편할 것이다. 그 갈라짐이 작품의 연출 의도가 아닐까.</p> <p contents-hash="eba775963d68fbf4cb5577c08485d7c7fc91bc1ea9e3937bf83b1bd4bda5a6e1" dmcf-pid="pw7xReQ9pC" dmcf-ptype="general">성주는 수영의 상처를 건드리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관객이 보기엔 잔인한데, 그것이 곧 성주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는 감정을 회피한다기보다 통제하려 한다. 통제는 언젠가 무너진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어떤 말로 무너질지 자신도 모른다는 점이다. 상실의 잔혹함은 '울음'보다, 이런 식의 통제 강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때가 있다.</p> <p contents-hash="f3904778c43edd9ba513914701facedb308af261b7394d4bd6137e4b6e24e0d2" dmcf-pid="UrzMedx2zI" dmcf-ptype="general">이 작품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는 또 다른 지점은 자살의 '이유'를 해답처럼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남겨진 사람들의 끝없는 추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주는 말하다가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한 채 질문을 되돌려 받는다.</p> <p contents-hash="c33d351732afcc1dcfd3313f484f3954b711f723fcb6880872800b1b2aa1cefb" dmcf-pid="umqRdJMVpO" dmcf-ptype="general"><span>"왜 그랬을까?"</span><br><span>"그때 내가 뭘 놓쳤나."</span><br><span>"그날, 그 말, 그 표정..."</span></p> <p contents-hash="b37ca23b8589e5412d02096857b6058763436b411bb5846860de05bd38c2ac95" dmcf-pid="7sBeJiRfps" dmcf-ptype="general">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뒤늦게 온다는 사실이 사별자를 더 괴롭힌다. 지나간 시간은 재생할 수 있는데, 재생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답이 나오지 않는 재생은 고문에 가깝다. 그래서 성주의 하루는 사건을 푸는 탐정의 리듬이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유족의 리듬으로 흐른다.</p> <p contents-hash="f515e27c174ff5fffcb3f90f016bdf07797675701e07467abebefe6eb68deb43" dmcf-pid="zpgClSIkpm" dmcf-ptype="general">서가에서 책을 꺼내고, 접힌 페이지를 발견하고, 그 페이지를 여러 번 읽고, 그래도 모르는 채로 다시 책을 꽂는다. 문학평론가인 친구 수영의 직업은 '읽기'인데,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은 끝내 '읽히지' 않는다. 이 무력감이 이 작품의 서재를 답답하게 만든다. 텍스트가 많을수록 더 답이 나올 것 같은데, 텍스트가 많아도 답은 숨어있다. 그러면 주인공은 어디로 가는가. 다시 서재로 돌아온다. 다시 흔적으로 돌아온다. 다시 문장으로 돌아온다. 실감이 도착하지 않으니, 실감을 만들기 위해 계속 되풀이한다. 이 반복이 애도의 한 얼굴임을 보여준다.</p> <p contents-hash="b6db88b06eb5a2994ac35c5e69302a653b780f3e5260d794d3e255ede7a0d1e8" dmcf-pid="qUahSvCE7r" dmcf-ptype="general">중반 이후 예은이 들어오면서 작품의 온도가 달라진다. 예은은 언니를 잃은 동생이지만, 동시에 성주의 '현재'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이다. 예은의 말 중 오래 남는 것이 있다.</p> <p contents-hash="80e18087dbfa03084cff020b3a0498e98e995ed73f37447657b4b9e77a211288" dmcf-pid="BuNlvThDUw" dmcf-ptype="general"><span>"아침마다 욕실로 달려가 타일의 물기를 보고 안도해. 오늘도 형부가 죽지 않았다."</span></p> <p contents-hash="bad73a5160c9b6ee3105c1c3cb1281eaaf2579d3fe68e40a5b309f93259af559" dmcf-pid="b7jSTylw3D" dmcf-ptype="general">이 한 문장으로 예은의 세계가 드러난다. 언니의 죽음은 과거가 아니다. 언니의 죽음은 오늘의 공포로 번역된다. 예은에게 사별은 추억이 아니라 안전점검이다. 매일 아침 '또 다른 죽음'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p> <p contents-hash="c3c7b9b97c9e9b828b9b0b583cc34bfd429b606a6ca84496475fa50dc7ad397c" dmcf-pid="KzAvyWSrzE" dmcf-ptype="general">예은은 장례식장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전조증상이 없었냐?" 이 말은 악의가 없을 수 있지만, 사별자에게는 대개 "왜 알아채지 못했냐"는 질책처럼 받아들인다. 수영 또한 자신이 들었던 무례한 질문을 꺼낸다. "자살 맞아?" 이런 질문은 나쁜 사람만 던지는 게 아니다. 세상은 대개 무지하고, 무례하고, 악의 없이 상처를 찌른다. 그리고 그 무지는 사별자를 더욱 고립시킨다. 자기 고통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설명이 곧 변명처럼 보이게 되는 자리에서. 작품은 이 사회적 고립을 '분위기'로만 처리하지 않고, 대사로, 순간의 정적과 마찰로, 관객이 직접 체감하게 만든다.</p> <div contents-hash="1fc65f9b6b80e7c9f1ce47b0f0eda237166551216e5d18437c44c252241da99b" dmcf-pid="9qcTWYvmpk" dmcf-ptype="general"> <strong>'서재 결혼식'이 보여주는 것</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37a2c28d625f54f1ca8c9dd77759f2a526f112d2fc01e9c18b928c462dec5134" dmcf-pid="2BkyYGTsUc"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1877tbhe.jpg" data-org-width="1280" dmcf-mid="xYqRdJMVF1"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1877tbhe.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연극 <서재 결혼시키기> 공연 장면</td> </tr> <tr> <td align="left">ⓒ 한국문화예술위원회</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206509c0af00feeb2ad8511de3f03dc5c6e6a7547a43bd163427f5882eda790d" dmcf-pid="VbEWGHyOuA" dmcf-ptype="general"> 이 작품에서 서재는 배경이 아니라 관계의 상징물이다. 성주와 해원은 서재를 합치는 일이 결혼의 화룡점정으로 여긴다. 공간을 합치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서로의 다른 감각을 합치는 일이다. 그래서 서재를 합치기 위해 세운 규칙들이 유난히 구체적으로 들린다. </div> <p contents-hash="99e91b2e20b7f409c8f6df27c8753681c24e3abcbd3345a9b015455307100a4c" dmcf-pid="ftimOIrN0j" dmcf-ptype="general"><span>"책은 어떻게 배열할지, 무엇을 기준으로 정렬할지, 어디까지는 침범하지 말지."</span></p> <p contents-hash="a40740b78b9b1eec114bf9ab50933fc5d99077aaf2c2c0d310c48b2b9d134b4e" dmcf-pid="4FnsICmjzN" dmcf-ptype="general">농담처럼 오가는 말들 속에 생활의 세부 조항이 따라붙는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사람들이 웃다가 금방 씁쓸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결혼은 운영이다. 이런 운영을 위해선 합의가 필요다. 그런데 여기엔 충돌을 포함한다. 이 작품은 그 충돌을 갈등의 양념으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충돌이야말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던 방식이라고 말한다.</p> <p contents-hash="f759c2241b0e64d1e7e25553625518dc8a625948d83a09b12d7abd7fae9eb3d7" dmcf-pid="83LOChsAza" dmcf-ptype="general">특히 해원이 책을 다루는 방식은, 관객의 기준을 건드린다. 페이지를 접고, 형광펜을 긋고, 필요하면 읽을 부분을 떼어낸다. 해원에게 책은 남의 사상을 '보존'하는 물건이 아니라, 자기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성주에게 책은 세계를 설명하는 체계다. 체계의 인간이 기억의 인간을 만나면 자주 싸운다.</p> <p contents-hash="2fc4538609ad0b7f73667788bba3a12acfc56720532111d4f8dae6e9365b6bcd" dmcf-pid="60oIhlOcug" dmcf-ptype="general">싸움은 때로 가까워짐이지만, 싸움이 멈추는 순간 관계가 더 위험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 위험을 "예외"라는 단어로 끌어온다. 분류 체계에 들어가지 않는 책을 예외로 두자는 말은, 결국 분류되지 않는 사람을 예외로 둘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옮겨붙는다. 사랑은 결국 "내 기준으로 너를 바꾸겠다"가 아니라 "네가 나의 기준을 흔들어도 견디겠다"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p> <p contents-hash="cd715d6b7ec8678577faffd58df926cdf142a34a789fc7647ad29ba39324ff6a" dmcf-pid="PpgClSIkpo" dmcf-ptype="general">후반으로 갈수록 작품은 '왜'라는 질문을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왜'를 붙잡는 일이 남겨진 사람을 어떻게 소모시키는지 보여준다. 어떤 밤, 해원이 서재에 다시 나타난다는 설정은 공포 장치가 아니라 사별자의 심리에 대한 은유처럼 작동한다. 죽은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의 방식으로 돌아오고, 질문의 형태로 돌아오고,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대화로 돌아온다. 관객은 그 순간, 자신의 기억도 함께 건드려진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 어떤 계절, 어떤 냄새. 저마다의 서재가 떠오른다.</p> <div contents-hash="0f6831c4aa876faa450febcd7747ac4f0b09d6fa2da351b1c2dfd47b55340cc7" dmcf-pid="QUahSvCE0L" dmcf-ptype="general"> 그리고 작품은 가장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 "나랑 서재를 합친 이유가 뭐였어?" 해원의 대답은 짧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었어." 이 말이 로맨틱한 고백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이해는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이 무너진 뒤에도 남겨진 사람에게 계속 요구되는 노동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마음을 쓰는 일. 그 노동은 때로 사람을 살리지만, 때로 사람을 더 오래 상처 속에 붙들어둔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a7bc847c993d391184eff09bcc3c5cc58f7624ecd30be8213dc1eb284682a09b" dmcf-pid="xuNlvThDUn"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3166plmu.jpg" data-org-width="1280" dmcf-mid="y7mX51Hlp5"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3166plmu.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연극 <서재 결혼시키기>의 무대에는 빼곡하게 책장과 책들로 관객을 맞이한다.</td> </tr> <tr> <td align="left">ⓒ 필립리</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c6ac96a3edc18cf907a973281de5f84e494e95968263c99d28edc11a19ca684a" dmcf-pid="yh2nogiP0i" dmcf-ptype="general"> "이해하고 싶었다"는 말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구원이 아니라 채무처럼 남기도 한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귀한 만큼, 실패했을 때의 죄책감도 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선한 메시지'로 끝내지 않는 점이 좋다. 억지로 희망을 덧칠하지 않고, 이해의 윤리가 귀하다는 사실과 잔혹하다는 사실을 동시에 남긴다. </div> <p contents-hash="5623cb2427601c19ff230f1b84bbd558fe23fb1bbc1d78ae762e5a0b8680cb53" dmcf-pid="WlVLganQ0J" dmcf-ptype="general">연극〈서재 결혼 시키기〉의 성취는 명확하다. 자살을 사건으로 소비하지 않고, 사별을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원인을 캐묻지 않고, 남겨진 사람의 시간을 동행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극장이 지원하는 작가지원 프로젝트인 < 2023 봄 작가, 겨울 무대 >에 선정된 배경 덕분인지 대체적으로 말이 많은 연극이지만, 그 말들이 감정을 대신해 요약하지 않으려 선을 지킨다. 다만 그 조심이 때로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는 대사가 너무 정교해서 감정이 발생하기보다 정리되는 느낌을 지울 순 없다. 그때 관객은 심장이 먼저 뛰기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 작품의 선택이다. 쉽게 울리기보다 쉽게 끝내지 않으려는 방식. 주제의 무게를 감정의 폭발로 설득하는 대신, 체류와 반복으로 견뎌야 한다는 것으로.</p> <p contents-hash="dc4e36c5a1cd7b5e10bef72f47489a097032cd01bde8cf108c17362b410b1dc0" dmcf-pid="YSfoaNLx7d" dmcf-ptype="general">공연장을 나서며 내 마음에 남은 건 '책갈피'가 아니다. 해원이 접어버린 페이지의 모서리다. 접힌 종이는 다시 펴도 흔적이 남는다. 애도도 그렇다. 상실은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그 상실을 담는 마음이 조금씩 커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어보는 일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때로 삶의 기술이 된다. 라벨이 붙은 책은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p> <div contents-hash="0994b992eb65cebed186a4b86641cc204e6076d99a089259c01c4c677ab9015d" dmcf-pid="Gv4gNjoMFe" dmcf-ptype="general"> <span>"분류할 수 없는 것을 분류하려 들지 말아라. 대신 분류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시간을 성급하게 몰아내지 말아라."</span>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a9de337fe3492ebeddf38d0e1c334d06332abf553855d06ddf9212f23ab2c84" dmcf-pid="HT8ajAgRpR"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4477fnxi.jpg" data-org-width="1074" dmcf-mid="WkQAkEjJu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6/ohmynews/20251226103254477fnxi.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연극 <서재 결혼시키기> 공식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한국문화예술위원회</td> </tr> </tbody> </table>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언론은 되고 다큐는 안 된다? 정윤석 감독 2심도 유죄 12-26 다음 ‘나얼 따라하는’ BTS 뷔, 브아솔 공연 찾았다…팬심 과시 12-2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