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 깨끗한 물 선물하고 떠난 韓과학자 작성일 12-22 38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故김경웅 GIST 교수 유고집 '환경, 그리고…' 출간</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ubsObhsASj">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19fbd9a49d875d6260b170046a6583c2c6f77b74f2e163c2db5e5df4b926707c" dmcf-pid="7KOIKlOcSN"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2/mk/20251222172111152nuwt.jpg" data-org-width="300" dmcf-mid="Um2Vm82uvA"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2/mk/20251222172111152nuwt.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278aad53983a1a40c604e9a19764c40fb8678003c4f0205e2e7838afa68d6d6a" dmcf-pid="z9IC9SIkya" dmcf-ptype="general">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 그곳의 부족장은 맨손으로 짜낸 열매즙을 먼저 마신 후 한국인 손님에게 건넸다. 많이 마시면 간독성까지 이를 수 있는 음료임에도 손님은 한 번에 들이켰다. 함께 간 동료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주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냐"며 웃었다.</p> <p contents-hash="6c766ff40462aa9a16f769d3ca1b54715ef4d8aee17dbc8a9fb087ba0aa5edbe" dmcf-pid="qQWYQXWISg" dmcf-ptype="general">김경웅 GIST 환경공학과 교수는 2017년 당시 그렇게 부족장의 신임을 얻고 가지고 간 자그마한 기기를 전달했다. 전기 없이도 박테리아를 99.99% 이상 제거하는 정수장치였다. 키리바시는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크게 받는 나라다. 농업은 불가능해졌고, 식수조차 얻기가 쉽지 않다. 기기를 전한다고 해서 그가 얻는 수익은 전혀 없었다. 그저 '깨끗한 식수를 먹길 바라는 마음'이었다.</p> <p contents-hash="8d3501218dd437c0f239f78e463669f8a620e10a6f79d3cd85191fdc8df4d344" dmcf-pid="BxYGxZYCyo" dmcf-ptype="general">그는 일평생 키리바시를 포함해 피지, 라오스, 캄보디아 등 오지를 돌아다니며 세계 20여 개국에 자신이 개발한 정수장치를 보급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외 원조에 힘썼을까. 아쉽게도 그 이유를 직접 들을 수는 없다. 김 교수는 지난 8월 침샘암으로 만 6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p> <p contents-hash="f74f258fa284ddd89a8fea0d7eb834cc1253d14929572b192866fe3a5d779a1f" dmcf-pid="bMGHM5GhvL" dmcf-ptype="general">주변 사람들은 그를 '젠틀맨'으로 기억한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끝없이 베풀었다. 그의 연구실에는 언제나 동남아 출신의 외국인 학생들이 많았다. 김 교수에게 배운 기술을 모국에 구축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문화 배경이 다른 만큼 국내 대학원생들과 갈등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김 교수는 "마음을 너무 닫아놓지 말고 해줄 수 있는 걸 해줘라. 그들도 얼마나 힘들겠냐"고 타일렀다.</p> <p contents-hash="fcac6099e06d789e8d81e6c716e07cc2880483b357a39056fbe7325c23409d2c" dmcf-pid="KRHXR1Hlhn" dmcf-ptype="general">그들은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모국으로 돌아가 고위 관료가 되거나 저명한 교수가 됐다. 한국 사람들이 국제 협력을 위해 동남아를 방문할 때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우군이 돼준다. 김 교수를 '코리안 파더'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보이는 그들은 김 교수의 장례식에도 먼 길을 달려와 울었다.</p> <p contents-hash="dab524ec8eaea01f8676509bc256de4d0cc9adf2a4da926553ed1a76e62b4b72" dmcf-pid="9eXZetXSyi" dmcf-ptype="general">2022년 갑작스럽게 침샘암 말기를 판정받은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오지를 다니며 중금속 오염물질 시료를 채취했다. 평생을 들이마신 오염물질이 그의 병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p> <p contents-hash="8af3c3ab79f0f7ecd3297b86b76c9d5b85630fe24cd6d2ea631e9ba611682a52" dmcf-pid="2dZ5dFZvvJ" dmcf-ptype="general">그의 유고작인 '환경, 그리고 가능성의 미래-어느 환경공학자의 마지막 담론'이 지난 20일 출간됐다. 김 교수와 그의 동료인 조재원 UNIST 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가 함께 썼다. 김 교수는 책에서 기후위기, 인구 감소 등 미래를 우려하면서 이렇게 말한다.</p> <p contents-hash="5f6667ce22de4972acffe962e5b526645060330afe0eb5a8628e754c08d634a3" dmcf-pid="VJ51J35TWd" dmcf-ptype="general">"아래위로 나누어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대신 옆으로 서서 같은 눈높이를 갖고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생태다." </p> <p contents-hash="d3181b40761df2abd2cada67f1ad0a753a99deb4b90089fd003126d75187af85" dmcf-pid="fi1ti01yye" dmcf-ptype="general">[최원석 기자]</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박경림 子, 벌써 고1이었다 “부부싸움 하면 판정해 줘”(4인용식탁) 12-22 다음 허성호 인투씨엔에스 대표 "AI로 반려동물 진료 절차 대폭 단축…실시간 건강상태 탐지" 12-2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