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영화인데... 왜 한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나 작성일 12-22 9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씨네만세 1232] 2025년 '씨네만세' 선정 최고의 영화 < 콘티넨탈 '25 ></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ZdLXLRPK7I"> <p contents-hash="dcdaf73d1fed750bceb9805238685d704078d9c823f9585e0b133ea38056b747" dmcf-pid="5JoZoeQ9FO" dmcf-ptype="general">김성호 평론가</p> <p contents-hash="5430cb84b3facc5db7c2bf0915bc288882714f1cd3ee0dd526e1ccd3b48fd780" dmcf-pid="1ig5gdx2zs" dmcf-ptype="general">올 한 해 한국에 소개된 수많은 영화 가운데 단 한 편을 꼽자면 나는 < 콘티넨탈 '25 >라 답하겠다. 지난달 개봉해 아직도 관객수 2000명을 넘지 못할 만큼 부진한 이 영화지만 재미는 물론, 지적으로 탁월하고 형식적으로 실험적이며 주제의식은 도전적인 이 영화가 어째서 한국에서 회자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그 이유가 경쟁에서 패퇴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급과 마케팅의 한계 때문이라고, 그래서 마땅히 닿아야 할 관객에 닿지 못한 때문임을 알기에 서글프기까지 하다.</p> <p contents-hash="c3d1347175d2f9a05670effc087ae01211549789af46da3bdfd1f4b05cd037a6" dmcf-pid="tna1aJMV0m" dmcf-ptype="general">어떤 영화인가. 제목인 '콘티넨탈 Kontinental'과 '25', 즉 대륙과 올해를 가리키는 숫자가 그 성격을 말한다. 영화는 이 시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면을 알리고자 한다. 결코 작지 않은 당찬 포부가 아닌가.</p> <p contents-hash="a691c6a86a509a3acf60e8f54916025b78476281d98d51ea9814947799fd6822" dmcf-pid="FOlVlmEour" dmcf-ptype="general">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서 각본상을 받았고,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들여왔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영화다. 감독인 라두 주데는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로, 2022년 작 <배드 럭 뱅잉>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p> <p contents-hash="9effb70cde73625731fe938af38e694bfc7f244fa6acc9474b60a4b5a29f09e9" dmcf-pid="3ISfSsDg0w" dmcf-ptype="general">< 콘티넨탈 '25 >는 라두 주데의 작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영화다. 영화는 한 노숙자의 일상과 죽음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클루지 주에서 살아가는 노숙자의 일상이란 특별할 것 없다. 누추한 행색에 정신도 온전치 않은 듯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도시 이곳저곳을 오가며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모습을 비춘다.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이따금 누구에게 실제로 말을 걸지만 답을 듣진 못하는 그의 일상은 세상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한 노숙자며 부랑자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영화 초반부 스스로 죽음을 택하며 영화의 서막이 열린다.</p> <div contents-hash="1ec71a172109631adba517dc0ea31f7c3362b4a1f7b68e783eabaffb55bea163" dmcf-pid="0Cv4vOwa0D" dmcf-ptype="general"> <strong>세계적 거장 된 라두 주데, 그 대표작이 될 작품</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15de56d5d55bb858171ae186fb6568132db6340c677e0b0fd23bfe7dda56fb04" dmcf-pid="phT8TIrN3E"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3317ecco.jpg" data-org-width="1280" dmcf-mid="yH8Fjne4UT"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3317ecco.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콘티넨탈 '25</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M&M 인터내셔널</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2e43f84cfc4c61ac7b2dba62766aab1cfc5331ed03aa334eccff5d326620595f" dmcf-pid="Uly6yCmjFk" dmcf-ptype="general"> 그가 왜 죽음을 맞았는가. 그건 주인공인 오르숄라(에즈더 톰파 분)가 헌병들을 대동하고 찾아와 그가 살던 어느 건물 지하실에서 퇴거요청을 한 직후 벌어진 일이다. 적잖이 다정다감한 성품을 가진 듯 보이는 법원 집행관 오르숄라는 이전에도 수차례 퇴거요청을 서면으로 전달하고 설득하는 등 나름대로 마음을 써온 모양이지만 어찌됐든 남의 건물에 숨어 사는 그를 법에 따라 퇴거시켜야 할 상황에 다다른 것. 외로 담담하게 대응하는 듯 보이는 노숙자에게 짐을 정리할 시간을 준 것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으니 오르숄라는 몹시 심란해진다. </div> <p contents-hash="dad9a1017008ed6aa132ca30dd5eaf8760dc12ff830e5c05d1cdf76647dc0c32" dmcf-pid="uSWPWhsApc" dmcf-ptype="general">영화는 구성상으로 특이하다. 노숙자의 일상과 죽음을 다룬 오프닝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서사적 전개보다는 인물들 간의 대화를 연달아 붙이는 병렬적 형식으로 진행된단 점에서 그렇다. 오르숄라는 집행과정에서 마주한 죽음으로 정서적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제 탓이라는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예정됐던 그리스 가족여행에 홀로 가지 못하게 된다. 마음을 추스르겠다는 명목으로 그녀는 사람들을 만난다. 직장상사와 남편, 단짝 친구를 시작으로, 엄마와 교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 정교회 신부까지를 차례로 마주한다. 영화는 오르숄라가 그들과 나누는 대화를 차례로 보여주며 그녀의 심리는 물론, 주변인의 인식, 나아가 루마니아 사회에 자리한 온갖 위선과 부조리를 하나둘씩 까발린다.</p> <p contents-hash="9407498cd47f8c069e80456a576cf528f6811ace46d370c070c1c34f90d6a0a3" dmcf-pid="7vYQYlOcpA" dmcf-ptype="general">말하자면 극중 오르숄라가 처한 위기라거나 극복, 특별한 선택 따위는 자리하지 않는다. 집행과정에서의 죽음과 마지막 묘지에 꽃을 두고 휴가에 합류하기로 하는 결정 사이까지, 오르숄라가 마주한 일련의 만남들이 영화의 중추를 이룬다. 서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아닌, 대화 그 자체로부터 얻어지는 재미가 영화를 추동하는 힘이 된다.</p> <p contents-hash="9a44041edd71e4f1d34eb0f8cabbfe295cb9bda06e5eb94f133aa2868b0592d7" dmcf-pid="zTGxGSIk7j" dmcf-ptype="general">또 하나 특이점은 결말부다. 감독은 오르숄라의 입장이 명확해진 뒤 영화를 곧장 끝마치지 않는다. 인물이 없는 공간,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루마니아의 거리사진을 하나씩 몇 초간 띄우는 것이다. 같은 도시, 서로 다른 공간들이 하나씩 진득하게 자리를 채우는 동안 관객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오프닝 시퀀스의 인물은 죽었고,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 인물의 결정은 끝났을 때, 루마니아의 현실 세계가 영화 속에 차곡차곡 담긴다.</p> <div contents-hash="480cde3441af5139397e5b8a0fd9222448a5780549712a99255fa3c10bc12edc" dmcf-pid="qyHMHvCE3N" dmcf-ptype="general"> <strong>대화와 대화를 이어 세상을 말한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0f664fe69759c7bd8af7e79eac69102ee151655b28ac2840a00e96b160051501" dmcf-pid="B3uNutXS7a"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4580mvdn.jpg" data-org-width="1280" dmcf-mid="WIlgp5Gh7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4580mvdn.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콘티넨탈 '25</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M&M 인터내셔널</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2e623243f8fca2f6a15efc1f72cc8792724de3b0d0d6f3f504cec199dffd34f9" dmcf-pid="b07j7FZvpg" dmcf-ptype="general"> 이 세 가지 특이점은 < 콘티넨탈 '25 >가 다분히 의도적이며 체계적으로 구성된 작품임을 확인케 한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중반부의 이야기를 전체로 확대해보자면, 영화는 오르숄라가 심리적 타격을 극복하는 내용이 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세 가지 특이점 중 하나일 뿐이다. 자, 다시 세 특이점을 세 편의 서로 다른 단편으로 바라보자. 그렇다면 오프닝으로 도출되는 질문은 '그 남자는 왜 죽었을까'가 된다. 오르숄라의 심리는 중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모두가 해소된 결말부의 주제는 '루마니아 곳곳의 풍경은 이 영화 전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가 될 것이다. </div> <p contents-hash="13f80515076784967df5c54ef7047707d0bbd953f8e11a61449e9e3b03749c7e" dmcf-pid="KpzAz35T7o" dmcf-ptype="general">영화는 오르숄라가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비춤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한다. 첫 번째 질문인 그 남자가 죽은 이유, 그리고 마지막의 병치된 사진의 의미가 자연스레 풀리는 순간, 영화 < 콘티넨탈 '25 >의 진짜 목소리가 드러난다. 라두 주데의 영화는 무척이나 지적인 방식으로, 즉 직접적으로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도 보여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자연히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한다. 영화 중간 등장하는 수많은 장치와 상징들은 그 목소리에 무리 없이 수긍토록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 영화가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이라 여긴다.</p> <p contents-hash="d1097564f8bd6effd630efe7b332c539da1447076a9cd8eb60e68ce0620065c6" dmcf-pid="9Uqcq01yUL" dmcf-ptype="general">그렇다면 어떤 상징들인가. 영화엔 다채로운 장치와 상징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를 보는 맛을 생각하여 모두가 아닌 일부만을 다루기로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오르숄라의 마음을 달래주려 직장상사는 노숙자가 전과자라고 했다. 어떤 전과이냐 하니 그 내용이 가관이다. 추운 겨울 몸을 덥히려 묘지에서 십자가를 훼손해 태웠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예수가 못박혀 죽었다는 희생과 구원의 상징이 아닌가.</p> <p contents-hash="4ba2ca4134dbb1608dad8c9d0d51a9e4c994291950b0987a98f4ba8506aa1175" dmcf-pid="2uBkBptWFn" dmcf-ptype="general">영화는 이후 기독교 이야기를 다시금 풀어낸다. 이번에는 오르숄라가 정교회 신부를 찾았을 때다. 이때 소위 달란트 비유,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는 구절이 인상 깊게 등장한다. 중국 스타일의 아파트가 부쩍 늘어나고 전관을 고용한 개발사업자들이 쉽게 승인을 따내 고층건물을 올리는 상황에서 법대로 퇴거명령을 집행하는 것이 어딘지 한쪽 편에 선 것이 아닌가 가책을 느끼는 오르숄라다. 그녀가 <성경> 속 이 문장이 아프게 다가온다 말하자, 신부는 예의 '달란트 비유'일 뿐이라며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부자와 빈자의 이야기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답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장면인가.</p> <div contents-hash="4cb329d7efb3ad3879c7b52a61e19c421523f7f5d9c0cf76313afc817f246761" dmcf-pid="V7bEbUFYFi" dmcf-ptype="general"> <strong>그 노숙자는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나</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61a2c34d2866700df3ce379869c0e9952ea515a4da6e978ffcd20c29d5625b2f" dmcf-pid="fzKDKu3GFJ"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5902uzwm.jpg" data-org-width="1280" dmcf-mid="YeYkBptWu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5902uzwm.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콘티넨탈 '25</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M&M 인터내셔널</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7910a658eb812fe5df7c9450bd49a05b1e8e8675e3ebfd021668839b355480d2" dmcf-pid="4q9w970Hzd" dmcf-ptype="general"> 이는 또 다시 전에 다른 이와 나눈 다른 대화와 맞닿는다. 오르숄라의 제자였던 프레드(아도니스 탄타 분)와 만난 어느 날, 그가 그녀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가 날린 드론에 피격된 뒤 수류탄을 터뜨린 러시아 병사의 모습이다. 프레드는 드론에게 당하게 되면 고통스럽게 죽거나 장애를 얻게 되는 탓으로, 병사들이 드론에게 발각되면 아예 수류탄을 머리 가까이 준비하곤 한다고 전한다. 실제로 그가 보여준 영상엔 드론의 공격을 받고 몇 초 뒤 수류탄이 터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녀가 끔찍하다 말하자 프레드는 학살자인 러시아 병사인데 뭐가 어떠냐고 응수한다. </div> <p contents-hash="2fb2aaf214220ba335b528f9fd191f9604ac60fba4a08e13efdad0a7b1e57c87" dmcf-pid="8ly6yCmj7e" dmcf-ptype="general">병사는 어찌할 수 없는 공격과 마주해, 아마도 저를 극도의 고통으로 내몰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다. 수류탄을 제 머리 앞에서 터뜨려버리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노숙자의 죽음을 떠올린다.</p> <p contents-hash="3a00ed229f83bf1d86582ec14a5b2a472d421447b992aece6603deca73d041d3" dmcf-pid="6SWPWhsAuR" dmcf-ptype="general">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아니, 그것이 저와 완전히 단절된 저 멀리 TV나 영상 속 무엇일 때만 관심을 보인다. 그 관심의 대가가 충분히 선택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일 테다. 영화 속 노숙자에게 지폐를 건네는 이들은 제 삶 가운데로 그를 끌어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노숙자가 저를 고용해달라고 청하지만 그저 지폐를 건네고 빨리 보내기를 선택할 뿐이다.</p> <p contents-hash="521a030cdb31cf6597811b4451c9e1b95d236ff839467365332ceb90dd33e654" dmcf-pid="PvYQYlOcuM" dmcf-ptype="general">뿐인가. 오르숄라와 만난 친구는 고통을 토로하는 그녀에게 제 집 앞 주차장에 자리 잡고 사는 노숙자에 대해 말한다. 그가 그곳에 수시로 똥을 싸서 그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라고. 그가 안 되었기는 하지만 그 냄새를 감당할 수 없어 차라리 죽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고. 그러나 그 겨울을 노숙자는 어찌어찌 견뎌냈다고 했다. 난방비를 아끼려 17도에 맞춰놓은 제 집도 추운 데, 영하 17도인 바깥에서 어찌 그를 견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말이다. 그를 쫓아내고픈 마음과 그런 제 마음에 가책을 느끼는 마음이 어수선하게 섞인 채로 그녀는 지난 겨울 그를 경찰에 거듭 신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라졌던 그가 며칠 전 돌아왔다고. 다시 그 똥냄새가 시작됐다는 것이다.</p> <p contents-hash="65622bf3dd20aeaaf097772a260c3c313990d3fac52667e2a7a80ed7e5c5e972" dmcf-pid="QTGxGSIk7x" dmcf-ptype="general"><strong>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사람들, 그리고 나</strong></p> <p contents-hash="4de965ebda50cb86a90fca3df80c9f9775180be1f28f086592c6fc46bd99f068" dmcf-pid="xyHMHvCE0Q" dmcf-ptype="general">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제가 후원하고 있는 빈민단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다분히 블랙코미디적이다. 루마니아의 가난을 구제하는 단체에 매달 꾸준히 돈을 보내는 그녀가 오르숄라에게도 후원을 권한다. 극심한 빈곤에 놓인 아이들이 이 나라에 여전히 있다며. 오르숄라와 그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두 대화를 오가는 동안, 프레임 밖에서 그 대화를 보고 있는 관객은 자연히 죽은 노숙자와 쫓겨난 노숙자, 그리고 그들의 후원을 받는 스마트폰 화면 속 가난한 이들의 차이를 따져보게 된다.</p> <p contents-hash="a4a512a92eaf5420f75bea328b0e3146099864ec367e2aa346854eaa682422e7" dmcf-pid="yxdWdPfz0P" dmcf-ptype="general">< 콘티넨탈 '25 >는 인간의 위선을 다분히 노골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오르숄라가 친구에 이어 만난 엄마는 오르숄라와 마찬가지로 헝가리 출신이다. 그녀는 루마니아가 트란실바니아를 망치고 있다며 분개하는데, 오르숄라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을 지지하는 헝가리의 독재자를 맹렬히 비판하며 맞선다. 엄마는 오르숄라에게 '루마니아는 제가 가꿀 수도 없는 것을 가져간다'고 비난하는데, 막상 그들이 대화하는 탁자와 뒤 선반엔 아프리카 유물 모형들과 잠비아 국기와 국명이 인쇄된 시계가 올려져 있는 것이다.</p> <p contents-hash="b3464eaee17c1c5e23162e549045bc6530e7feedbbf48e8f2c0fb0d12b3f796e" dmcf-pid="WMJYJQ4q36" dmcf-ptype="general">앞서 정교회 신부는 오르숄라와 대화하는 동안 저를 자꾸만 따라오는, 아마도 아이가 조종하고 있을 장난감 자동차에 심하게 짜증을 낸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행인과 시비까지 붙고 마는데, 좀처럼 물러서려 들지 않는다. 사랑과 용서를 말한 예수를 섬기는 이로서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민망한 일인데도, 그는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p> <p contents-hash="33a95d8ff5bb7384346c0639ff5f3741b2bf40d9dedfd7ee5a6efbcf1f50ab3f" dmcf-pid="YRiGix8BU8" dmcf-ptype="general">어디 개인만이 위선자일까. 국가며 사회 또한 사실을 왜곡하고 합리화하곤 한다. 앞선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국가적 위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루마니아 사람인 그녀는 헝가리계인 오르숄라를 볼 때마다 가책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들이 사는 트란실바니아가 본래 루마니아의 땅이었다고 말하지만, 이곳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죄다 헝가리 전통양식으로 지어지지 않았느냐는 것. 심지어는 거리에 선 동상조차 헝가리 인물들이 태반인데도 루마니아는 이곳이 본래 루마니아, 즉 과거 로마의 것이었다고 말한다.</p> <div contents-hash="66536291fcd26cff361bbdeb1e5efbad589b6869cdc6be9e1bba8e0063c4eeda" dmcf-pid="GenHnM6bu4" dmcf-ptype="general"> <strong>위선을 겨냥하는 치열한 시선</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6dd0235b9e52c63a10fd5126f3176e56a2c9cdda127d01f003847d3779b18682" dmcf-pid="HLNtNiRf7f"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7171pofh.jpg" data-org-width="910" dmcf-mid="XLy6yCmjz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22/ohmynews/20251222103757171pofh.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라두 주데</strong> 베를린영화제서 각본상 격인 은곰상을 수상했다.</td> </tr> <tr> <td align="left">ⓒ 베를린국제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b42d75922d4f59cab745f58e835b38407acb5442ee44f756feb4ddced18f79dc" dmcf-pid="XojFjne4FV" dmcf-ptype="general"> < 콘티넨탈 '25 > 가운데 가장 강렬한 장면은 역시 오르숄라의 일탈이다. 그는 제자인 프레드를 불러내 잔뜩 취한 뒤 공원에서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 앞서 여행을 가기 전에는 괴롭다며 저를 더듬는 남편을 거부했던 그녀가 아닌가. 그러고는 젊은 제자와 공원에서 정사를 나누고, 뒤탈이 나지 않도록 다잡는 과정이 황당하기까지 하다. 가정에 충실하겠다며 귀찮게 하지는 말라는 그녀가 세상 흔한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그렇게 나쁜 여자는 아니란 사실을 이미 관객은 수없이 보고 느꼈기에 더욱 놀랄 밖에 없다. 이쯤되면 감독이 인간의 위선, 그 약함과 비겁함을 얼마나 집요하게 겨냥하고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div> <p contents-hash="bcdcd4d3fbebc019d2f59ee8206973af30de6b57b76a0718287be40a12747aeb" dmcf-pid="ZgA3ALd872" dmcf-ptype="general">오르숄라는 노숙자가 묻힌 무연고자 묘지를 찾을 것이다. 그의 무덤 앞에 꽃을 둘 것이고, 가족을 뒤따라 여행을 따라갈 것이다. 그리스에서 기다렸던 유람선을 타고 다이빙도 할 테다.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또 얼마 보지 않은 상태라면, 우리는 그녀를 좋은 사람, 적어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여길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본 뒤엔 어떤가. 그녀가 무덤에 놓는 꽃은 제 마음의 불편을 더는 수단일 뿐이다. 무연고자들은 그 묻힌 곳에서마저 저들을 죽도록 한 자, 적어도 제 어려움을 외면한 자의 위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오르숄라는 위선자, 수많은 노숙자가 추운 겨울 바깥에서 덜덜 떨게끔 하는 부조리와 불의의 동참자다. 법이, 제도가 자본에 점령돼 없는 자를 더 없게 하고 있는 자의 배를 불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구태여 싸우려 들지 않는 이다. 저는 퇴거를 늦추어주었다며 선한 척을 하는 이다.</p> <p contents-hash="68283aa40cb86a5b0d442d324108d0ef47d4c8692fae87eb11b8916c646b36ec" dmcf-pid="5ac0coJ6p9" dmcf-ptype="general">스탈린이 그에 대항하지 않은 무고한 사람들을 처형했단 소식을 접한 브레히트가 잠깐의 침묵 뒤 '그렇다면 잘 되었다'고 답했다는 일화를 오르숄라의 입을 통해 뱉도록 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연출이다. 불의의 시대에 맞서 싸우지 않는 자는 불의 앞에 희생돼 마땅하다는 것, 라두 주데가 오늘의 루마니아, 나아가 세계에 고하는 외침이 이러하다.</p> <p contents-hash="7c47ecb20496c861ad6472810c0703505929d4828619114170525cd1b2257595" dmcf-pid="1NkpkgiPUK" dmcf-ptype="general">< 콘티넨탈 '25 >는 아직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나는 한국 영화팬들이 이 영화 만큼은 이대로 보내선 안 된다고 믿는다.</p> <p contents-hash="4792755a96c50cf5e9c746016c50b2ccdb8a15fe08b6b982a1d1ced1059322cf" dmcf-pid="tjEUEanQUb"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라미란·김선영·이일화, ‘응답하라 1988’ 들개들 결성…‘걱정말아요 그대’ 떼창 예고 12-22 다음 ‘환승연애4’ 성백현·박현지, 애틋 서사 12-2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