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지미, 7일 저혈압 쇼크로 별세…미국서 장례 [종합] 작성일 12-10 24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9cOE8hrNOI">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bcb0d8aeb55e385bbf793debfcd46452939a6acb7bc64c5344d6b4157e89ef1e" dmcf-pid="2kID6lmjsO"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사진=일간스포츠DB"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2/10/ilgansports/20251210183227844xxnc.jpg" data-org-width="800" dmcf-mid="K0q0sKu5r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0/ilgansports/20251210183227844xxnc.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사진=일간스포츠DB </figcaption> </figure> <div contents-hash="c17fe37723278a3f8327ecf7f5bf037f4a1062811146f3b3e5a8262fe9348ec6" dmcf-pid="VECwPSsADs" dmcf-ptype="general"> 원로 배우 고(故)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div> <p contents-hash="7873e902dd9e7ecd4baf42fa0a24b7ad927b8a0cb864d62dc4657dd4032c5b62" dmcf-pid="fDhrQvOcsm" dmcf-ptype="general">10일 한국영화인총연합회에 따르면 김지미는 7일(한국시간) 오전 4시 3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로 전해졌다.</p> <p contents-hash="989787243dfd7191baa6b47608d2f475cd5a62684a493994285ab9dfb3cee194" dmcf-pid="4wlmxTIkEr" dmcf-ptype="general">당초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영화인장을 고려했으나 이미 미국 현지에서 화장이 끝났고 오는 12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만큼 영화인장은 치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추모 공간을 마련해 고인을 기린다는 계획이다.</p> <p contents-hash="5081d782c692e67634225c776f5e3fcca847cbdf16bfb043c87159be935a90d9" dmcf-pid="8rSsMyCEDw" dmcf-ptype="general">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고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 ‘비구니’ ‘길소뜸’ ‘티켓’ ‘너의 이름은 여자’ ‘아낌없이 주련다’ 등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고인은 연기력은 물론, 빼어난 미모와 독보적인 분위기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사랑받았다.</p> <p contents-hash="7342c4891b3ea780be08cf9e52dec473ab5fe373897b1556a3d78ed165361f23" dmcf-pid="6Ask4CwaDD" dmcf-ptype="general">생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하는 등 한국 영화계 발전에도 힘썼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2016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p> <p contents-hash="1d19a22906b2e6f3a27516f342b5d132eb70eeac351cfd54a322c85ed92d4913" dmcf-pid="PcOE8hrNmE" dmcf-ptype="general">1958년 영화감독 홍성기와 결혼했으나 1962년 이혼했고, 이듬해 배우 최무룡과 재혼했지만 1969년 갈라섰다. 1976년에는 가수 나훈아와 동거로 세간을 들썩였다. 두 사람은 1982년까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나 결국 이별을 맞았다. 1991년에는 의사와 네 번째 결혼을 했고 11년 뒤 이혼했다.</p> <p contents-hash="2644f321266588a5361b6a39e25545e9c745577983bbdec525224b45426034eb" dmcf-pid="QkID6lmjsk" dmcf-ptype="general">배우로서 마지막 작품은 1992년작 ‘명자 아끼꼬 쏘냐’이며, 현업에서 물러난 뒤에는 미국 LA에 거주해 왔다.</p> <p contents-hash="ca5c63007712068c578cfcadb9080c66202f18adcce52879bf22aeb70be8b50c" dmcf-pid="xECwPSsADc" dmcf-ptype="general">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오타니 쇼헤이, 믿었던 절친의 배신…'통역가 횡령 스캔들' 드라마로 제작된다 [할리웃통신] 12-10 다음 이하늬, 우아함 그 자체… 오늘자 레전드 갱신(서울국제영화대상) [뉴스엔TV] 12-1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