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의 미학: 유니폼을 꿰뚫다> 선후배의 자기장, 프로의 나침반을 흔들다 작성일 09-08 14 목록 "삐빅, 삐빅." <br><br>마룻바닥에 농구화가 부딪히는 소리는 언제나 경쾌하게 들린다. 넘어갈 듯 가쁜 숨소리로 도배된 코트, 이리저리 움직이라는 포인트가드의 목청 좋은 외침이 꽤 가깝다.<br> <br>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한 20년 전에는 취재진의 자리가 코트와 가깝게 배치된 농구 경기장이 많았다. 생생한 소리가 제대로 전해졌다. <br> <br>여자농구 경기였다. 시대를 호령하던 베테랑 선수가 상대의 거친 수비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이 XXX이"라고 거칠게 내뱉었다. 처음엔 호기롭게 파울을 했던 상대 선수는 농구 대선배의 그 한마디에 바로 얼어버렸다. 이후 수비의 강도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br> <br>지난 7일 후지쯔의 우승으로 끝난 올해 박신자컵에서 '언니 농구'가 화제였다. 남자농구 현장에서 지도자로 활약하다 올해 여자농구에 첫발을 내디딘 이상범 부천 하나은행 감독이 "(여자농구에) '언니 농구'가 있다"고 화두를 던졌다. '코트 안의 선후배'가 존재한다는 것. 이 감독은 "후배가 (거칠게 플레이한 것에 대해) 선배를 찾아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며 남자농구에서 보지 못했던 문화에 대해 성토했다. <br><br>그런 '언니 농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른 팀 감독도 있고, 예전에는 있었다는 다른 팀 감독도 있지만 이는 남자농구와 여자농구를 모두 경험한 현장 관계자의 간과할 수 없는 분석이다. 이관희가 같은 대학 출신의 1년 선배 이정현과 프로 무대 코트 위에서 격하게 감정싸움을 한 남자농구와는 크게 대조된다. <br><br>많이 희석됐다고는 하지만 운동 세계에서 선후배 관계는 여파가 제법 크다. 예전에 프로선수들이 참가한 야구대표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특급 투수'가 대표팀 훈련 중 후배의 타격폼을 조롱하듯 지적하자 이후 해당 선수가 주눅 들어 제대로 배트를 돌리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다. 동기생들 간에서는 전국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늘 자신감을 유지했던 선수라도 대선배의 말 한마디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게 운동의 세계다. <br> <br>이런 문화가 프로 무대에서 악용되기도 한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입김이 센 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비시즌 훈련을 반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젊은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도전적인 분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같은 포지션을 두고 다퉈야 하는 경쟁 관계인 상황에서 충분한 재력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훈련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는 분명한 결과로 나타나는 법이다. <br><br>한국프로야구 한화의 류현진이 본격적인 팀 훈련에 앞서 후배들을 데리고 따뜻한 해외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는 소식은 그 반대여서 더 의미가 있다. 류현진 역시 신인 때 구대성, 송진우로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가능하게 했던 '평생의 무기' 체인지업을 배웠다. <br><br>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교회의 권위라는 '자석'에 막혀 이를 관철하지 못했다. 과도하면 축구대표팀 '탁구 사건' 같은 일도 일어나긴 하지만 권위에 사로잡힌 '언니 농구'가 프로 무대에서 프로의 궤도를 비튼 건 분명해 보인다. 배 안의 철물 구조물 때문에 발생하는 나침반의 오차 '자기 편차'가 생기면 고민해 봐야 한다. 북쪽을 가리켜야 할 나침반이 옆에서 들이댄 다른 자석에 끌려 방향을 잃게 된다면, 승부가 만들어내어야 할 긴장이 희미해진다면, 프로 무대의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관련자료 이전 탁구 허예림, WTT 유스 스코피예 대회 2관왕…이승수도 우승 09-08 다음 노스페이스 심재덕 태백 트레일 우승…함께 달린 건 ‘신발’이었다 09-08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