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하던 무라카미 하루키, 왜 테러 피해자들을 만났을까 작성일 09-01 35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넘버링 무비 499]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YjOgl8IiFm"> <p contents-hash="e8515dd2cefca45f06cb13ffbe13ffcb43c981696a197decba0e62670826100a" dmcf-pid="GAIaS6Cnzr" dmcf-ptype="general">[조영준 기자]</p>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7c120268406f733ec9818c31b5217969ea0b13f41b256541319ec91c16fe55fb" dmcf-pid="HcCNvPhLpw"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01/ohmynews/20250901135701529cezv.jpg" data-org-width="1200" dmcf-mid="4vcSUA3IF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ohmynews/20250901135701529cezv.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EBS국제다큐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76959bc35ea3863a2f57421ccc7f4f0bf2380df0834ce8208b06fafe67731838" dmcf-pid="XkhjTQlo0D" dmcf-ptype="general">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iv> <p contents-hash="9390532afc6bc7a6fdec047957760aa41369d782079b7b9882bec2526c47a9f7" dmcf-pid="ZElAyxSgFE" dmcf-ptype="general">01.<br>"소설가로서 한 국가의 어두운 면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보여줍니다."</p> <p contents-hash="0399ca5f31162fe66e1fcee06a83eb97d4351a2833634c685dd8bcd969b859db" dmcf-pid="5DScWMvauk" dmcf-ptype="general">1995년 3월 20일 오전, 도쿄도에서 일어난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는 일본 사회 전체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이 무차별적 폭력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사회 구조와 신흥 종교, 국가 시스템의 균열을 드러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1997년 '언더그라운드'를 출간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냈다. 그 기록은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생존자의 육성을 경청하는 다큐멘터리적 태도에 가까웠다. 클레르 라보레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는 저서의 르포르타주적 성격을 영상으로 재조명하며, 사건과 기억을 다시 사회적 의제로 소환한다.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지 않고, 증언을 이어 붙이는 방식을 통해서다.</p> <p contents-hash="19d195a1cdc0ed36c9622ca2112b3c784cd1049643d549017711fcd49226104d" dmcf-pid="1wvkYRTNzc" dmcf-ptype="general">영화가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을 통해 실제 사건에 반보의 거리만큼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당시 출근길에 오른 일반 사람들 틈 속으로 밀어 넣는다. 물론 그 과정은 표상적이다. 감독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 체험은 앞으로 다큐멘터리가 이어갈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이 사건에 주목하며 책을 쓰기에 이르렀는지, 또 감독은 왜 그 이야기에 나름의 관찰과 분석을 더해 작품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일본 사회의 어떤 모습이 이런 비극을 마주하도록 이끌었는지 등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p> <p contents-hash="2d14fbc3600acbd332c3bd5076a99e4f19e8c6706081eb829a7aa8e3cb07e1a2" dmcf-pid="tkhjTQloFA" dmcf-ptype="general">02.<br>작품 자체가 무라카미 하루키(이하 하루키)의 저서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축으로 안고 있기에 해당 책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책은 하루키의 다른 소설과는 전혀 다른 문체적 태도로 쓰여졌다. 감각적인 은유나 환상적 이미지 대신 철저히 인터뷰 된 것을 옮겨오는, 증언의 리듬 속에서 작성된 것이다. 실제로 그가 집필하는 데 앞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목격자 및 당사자 수십 명을 직접 만나 편견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을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수집한 개인의 서사를 하나씩 쌓는 방식을 채택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p> <p contents-hash="1a04cc89e02a18b67225a0fa41fa2751d1f854b62abdb7b8c1df37d829f4c455" dmcf-pid="FElAyxSgpj" dmcf-ptype="general">다큐멘터리는 이 문학적 기록을 영상 언어로 전환한다. 그 과정에서 인터뷰 내용은 일부만이 선택되고 그마저도 압축되지만, 책에는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 바깥의 또 다른 서사를 포함하고, 저서가 다루지 못한 사건의 거대한 덩어리를 관객이 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하루키의 문학이 진실에 다가가는 일에만 집중했다면, 클레르 라보레 감독의 영상은 책이 갖는 의미와 가치, 사건 자체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둘 사이의 매체적 차이는 사건을 바라보는 다층적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p> <div contents-hash="06f3cb168686312567806749d378d6467c57c9aa6e83ba004020c6520a534ff6" dmcf-pid="3DScWMvauN" dmcf-ptype="general"> 다큐멘터리를 통해 관객은 컷/신의 배열과 리듬 속에서 책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해석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때마다 등장하는 소설가 후루카와 히데오 씨와 오가와 요코 씨, 모리 다쓰야 감독 등의 증언 및 해석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하루키의 글과 작업물은 단순히 영상으로 옮겨온 것이 아니다. 문학과 다큐멘터리의 경계 위에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증언이 매개되는 방식을 시도하고 성찰하는 또 하나의 실험적 작업에 가깝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234b60873ffc2d0682d05659148c89b10816b6afb4e42ca1cd8c19685dc917e" dmcf-pid="0wvkYRTNua"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01/ohmynews/20250901135702879zwyx.jpg" data-org-width="1200" dmcf-mid="yD3vuc0CF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ohmynews/20250901135702879zwyx.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EBS국제다큐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ba85c5a4d046025c5e6f1317a2ed37d2dd1e8c6590de127799707ea35c862b0d" dmcf-pid="prTEGeyj7g" dmcf-ptype="general"> 03. <br>"나는 이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 </div> <p contents-hash="d9da9847664722fcb73f32236fb18f70b4f8efc3ead98ff51802b34582fd198f" dmcf-pid="UmyDHdWA7o" dmcf-ptype="general">이 작품에서는 사린가스 테러 사건 자체와 책 '언더그라운드'만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에 대해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평소 소극적인 태도로 타인과의 만남을 피하고, 공식적인 인터뷰마저 거절하던 그가 어떤 이유로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고, 이를 작업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다. 실제로 그는 당시, 몇 편의 소설 작업을 끝낸 뒤에 정서적 망명으로 일본을 떠나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도 미국에서였다.</p> <p contents-hash="a43e9ed5e7524a94b45ba41a5528b258a1efff412e131cddc6ad7d0e0c085f3e" dmcf-pid="usWwXJYcFL" dmcf-ptype="general">그는 피해자 대부분이 체제에 순응하고 과로하는 일반인이었기에 사건 자체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은둔 생활을 이어오던 작가에게는 처음으로 사회와 마주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는 사건 발생 2개월 전, 고향인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연이은 피해로 일본 사회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하루키는 어떤 의무감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지켜오고자 했던 단결과 동질성이라는 가치관을 무너뜨린 범죄였으니 말이다.</p> <p contents-hash="e30132322161d07a3e9986406bf8ca5a69f74881dde3451783e48a7e4070fd8d" dmcf-pid="7OYrZiGkFn" dmcf-ptype="general">언론이 사건을 다루던 방식에 존재했던 문제들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정작 언론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의 선정적인 내용만을 연일 보도하기 바빴다. 몇 달이 지나도록 사건에 대한 통찰이나 분석 없이 범죄자들의 삶을 소비하는 행태도 보였다. 하루키가 바라보고자 했던 지점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p> <p contents-hash="b78417fca4d054078012a3a55f4618d6f2ca29bd08d42bd6a307b7047b2e685c" dmcf-pid="z1qX9sBWpi" dmcf-ptype="general">04.<br>책 '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가 직접 피해자, 가족, 그리고 옴 진리교 신도들을 만나 인터뷰한 기록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여러 증언을 담아내면서도 그 배경을 사회 구조와 사상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일본 사회가 가진 지도자에 대한 갈망, 집단 소속에 대한 욕망, 그리고 1980년대 버블 시대의 일본 경제 성장 속에서 일어난 뉴에이지 사상과 같은 것들이 옴진리교 사건의 배경이라는 것이다.</p> <p contents-hash="11ae5514ecf82c77f6a3dd7c0e1521e100c26f61e3cc82853dc9285a84d7f6d0" dmcf-pid="qtBZ2ObY7J" dmcf-ptype="general">2차 세계 대전 이후 천황의 자리가 사라지면서 일본 사회는 항상 지도자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 자리를 수많은 사이비 종교가 파고들며 생겨났고, 옴진리교 역시 그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말 잘 듣는 강아지, 더 나아가 양이 되길 강요하는 교육과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 역시 함께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옴진리교는 세를 확장하고 교인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1995년의 비극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에서 교단 내부의 장면을 직접 재현하지는 않지만, 그 잔혹한 행위가 남긴 흔적을 통해 종교가 사회적 폭력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도중에 모리 다쓰야 감독이 연출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A 시리즈를 통해 일면이 드러나긴 한다.)</p> <p contents-hash="905ef891f6e50b8a627726693785c938435c478297b8e223a94e87892cffc4c7" dmcf-pid="BFb5VIKGud" dmcf-ptype="general">05.<br>"그들은 우리의 거울상이다.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그림자 부분. 그게 언더그라운드가 아닐까."</p> <p contents-hash="ccfcf70457fc45c0dd0bb21afc2b19417efcfb5c72963cd30d33ea4546c046c7" dmcf-pid="b3K1fC9H0e" dmcf-ptype="general">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의 두 번째 책에서 (그의 저서 '언더그라운드'는 총 두 권으로 저술되었다.) 가해자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옴진리교 신도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의 입장이 모두 서술되고, 심지어는 사이비 신도들의 슬픔마저 그려진 것이다. 마치 두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서로 마주 보는 거울처럼 말이다. 그는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p> <div contents-hash="d945f7aea4137690f7afc7bfb01e0577f4243970e1503f22b1e1d331d40423ad" dmcf-pid="K09t4h2X0R" dmcf-ptype="general"> 이처럼, 영화 역시 '왜'라는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목소리와 가해자의 망상이 교차할 때, 일본 사회가 직면한 균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균열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광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종교적 망상은 고립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안정 속에서 증폭된 산물이었다. 따라서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일본 사회를 성찰하는 일과 직결된다. 피해자들의 얼굴은 단순한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외면한 틈새의 표식과도 같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cfeb04ac87695d0a61f7bffbf16f774d3fec61398cfcaa66099aef1c06911336" dmcf-pid="9p2F8lVZ0M"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01/ohmynews/20250901135704212fhyl.jpg" data-org-width="1200" dmcf-mid="WtjxEzA8z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ohmynews/20250901135704212fhyl.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EBS국제다큐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fc0b7171f352cdd528f10fb4348fda151c7367431a31ceacd1f626b5944ec89d" dmcf-pid="2UV36Sf50x" dmcf-ptype="general"> 06. <br>국내에 소개되며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라고 명명되었지만, 이 작품의 원제는 < Haruki Murakami: FromUnderground à 1Q84 >로, 그의 소설인 '1Q84'에까지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소설 속 종교 집단인 '리틀 피플'은 옴진리교의 그림자를 투영한 듯한 설정으로 자주 해석되어 온 바 있다. 다큐멘터리는 이를 단순한 참고 자료로 제시하지 않고, 문학과 현실이 서로 마주하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소설이 현실을 은유하고, 현실이 소설 안에서 재해석되는 것이다. 이 연결은 작중 이중 세계에 대한 설정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르포르타주적 저서 '언더그라운드'가 현실의 어두운 면을 정확히 기록하는 작업이었다면, '1Q84'는 그 어둠에 서사를 입혀 환상 속에서 다시 꺼내는 일이 된다. </div> <p contents-hash="46d2de5c688430d394dfb4073f451b05d334eecead20e0366bb33a0cf74cdc7a" dmcf-pid="Vuf0Pv41UQ" dmcf-ptype="general">다큐멘터리는 이 두 가지 궤적을 병치하며,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단순히 소설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과 긴밀히 맞닿은 작업으로 재조명한다. 이는 하루키가 종종 비현실적이라고 평가받아 온 작가라는 통념을 흔든다. 오히려 그는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응시하며, 폭력과 망상, 그리고 그사이의 인간적 연약함을 끊임없이 탐문해 온 작가라고 말이다. 어쩌면, 1995년의 사건으로 인해 그가 일본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세상으로 향할 수 있게 된 것은 작가 본인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p> <p contents-hash="56529c179a6c9253f4b1ad89476a3caa57ea05c584de8d93fbdf5dbff1d159d7" dmcf-pid="fHUWqDuSuP" dmcf-ptype="general">07.<br>문학과 다큐멘터리는 서로 다른 매체지만, 저서 <언더그라운드>와 <무라카미 하루키 : 언더그라운드>는 같은 윤리를 공유한다. 그것은 곧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잊히지 않게 기록하는 일이다. 하루키는 글을 통해 사회의 틈새에서 소리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서사를 드러냈고,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과 의미를 다시 해석하며 그 생생한 진실을 불러낸다. 이 두 층위는 서로를 대체하지 않고 보완하며, 사건을 단일한 내러티브로 환원하지 않는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 여백을 남겨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그 여백을 이미지로 채우며 또 다른 진실을 구축한다. 결국 관객과 독자는 두 매체를 통해 사건을 다각도로 마주하게 된다.</p> <p contents-hash="26b8941f9bc38d605d6111b8b1dd27759410daccc5e8090236cf75cfbd2485ed" dmcf-pid="4XuYBw7v06" dmcf-ptype="general">그러나 이 기록은 과거를 애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가 던지는 질문은 곧 오늘을 향한다. 집단과 지도자를 향한 갈망, 버블기의 뉴에이지적 공허, 그리고 개인을 삼켜버린 사회적 불안정은 여전히 현재형의 문제로 남아 있다. 책과 다큐멘터리가 서로 공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특정 시대의 비극을 붙드는 동시에, 우리 시대의 균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한 사회적 윤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과거를 말하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을지 모르는 균열과 틈을 경고한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이선희, ‘법카 사적 유용’ 벌금형 후 첫 근황…여전한 동안 09-01 다음 국가 AI 예산 절반 운용하는 과기부 "GPU 확보하고 피지컬AI 개발" 09-0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