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마리 소 도축... 금기까지 뒤엎은 연산군의 '소고기 사랑' 작성일 08-31 26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tvN <폭군의 셰프></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9r06P8Iizj"> <p contents-hash="74f94b8cfac7df6a8f32a67cc648807a0b2e37d693ebff73e73d5f11d20d6d2a" dmcf-pid="2mpPQ6CnpN" dmcf-ptype="general">[김종성 기자]</p>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1e42f2d0629c840802ae7bf2f49b5e80959c4b7f195c8d89c5dafe4ea9fbc086" dmcf-pid="VsUQxPhL3a"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31/ohmynews/20250831141510724ugdy.jpg" data-org-width="1266" dmcf-mid="BEJsOmqyz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31/ohmynews/20250831141510724ugdy.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tvN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8350ed8fbd12846e2b1c3eafafaacb48554ca028a37f4cced51bf4a58a874d74" dmcf-pid="fOuxMQlo3g" dmcf-ptype="general"> 퓨전사극 <폭군의 셰프>에는 연산군을 연상시키는 임금이 나온다. 드라마 속의 이 임금은 고기 맛을 유별나게 잘 본다. 절대 미각을 가졌다는 그의 입맛은 조선시대로 타임 슬립한 셰프 연지영(임윤아 분)이 목숨을 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div> <p contents-hash="8a0c724b58bb575b446df7b74f8751d1d1c2a27459d4966a8d1a9c83b1c230a2" dmcf-pid="41xkEc0Cuo" dmcf-ptype="general">프랑스에서 열린 요리 경연에서 우승하고 귀국하던 연지영은 비행기 내에서 타임 슬립을 경험한다. 조선시대로 뚝 떨어진 그는 임금 곁에 둘 여성들을 구하는 채홍사들이 방문한 지방 관청에서 갑자기 음식을 만들게 된다.</p> <p contents-hash="697076f42b4decebd65ae0f70a8a70261a926d1c5f65396fc637e1b88553b848" dmcf-pid="8tMEDkph7L" dmcf-ptype="general">그가 만들어낸 것은 당시 사람들이 처음 구경하는 스테이크 요리다. 그런데 채홍사들은 속으로는 그 맛에 감탄하면서도, 겉으로는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도리어 음식 투정을 하고 시비를 건다. 이 때문에 그는 채홍사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인다.</p> <p contents-hash="88937703181d30cd5f58a4d73f1225429c6018796f459d7da82c984d8751fe1f" dmcf-pid="6FRDwEUl0n" dmcf-ptype="general">바로 그때, 인근에 있던 임금인 연희군(이채민 분)이 갑자기 등장해 스테이크 맛을 보고 제대로 평가해준다. 이 미식가 덕분에 연지영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폭군의 혀는 이 순간만큼은 '성군의 혀'였다.</p> <div contents-hash="f11ec2f8b3b1d540b09605d7196fae99287008f494ea5c0695a7faf2c0f0a736" dmcf-pid="P3ewrDuSUi" dmcf-ptype="general"> <strong><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연산군의 고기 사랑</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7c8d027efa29bac3fb3e856e1a4b05ab1cd6741f08fbedbb54a9337fd55b5240" dmcf-pid="QRCF3tiB7J"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31/ohmynews/20250831141512017zfyp.jpg" data-org-width="1263" dmcf-mid="bhpQxPhLF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31/ohmynews/20250831141512017zfyp.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tvN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98e0dd75748c9d74d641824d816e326b9d76b3a4b765f37fd127a55c0d777ede" dmcf-pid="xeh30FnbUd" dmcf-ptype="general"> 실제의 연산군도 육류를 매우 좋아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음력으로 연산군 11년 4월 20일자(양력 1505.5.23.) <연산군일기>는 소고기 맛에 빠진 이 임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기록 속의 그는 종래의 금기를 뒤엎고 소고기 사용에 관한 새로운 지시를 내린다. </div> <p contents-hash="9f4523bfa00087acb00c02ddedeb1bee6b3fc11e9e8573f69f73398c2d931e28" dmcf-pid="yG4aNg5rue" dmcf-ptype="general">당시 29세인 연산군이 비서실인 승정원에 보낸 지시를 통해 "종래의 연회 때 소고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농사 때문이었다"고 한 뒤 "(앞으로는) 모든 연회에 항상 소고기를 쓰라"고 명령한다. 승지들은 '백성들의 소고기 섭취를 제한하는 것은 그들이 농사를 짓게끔 하기 위한 것이므로 군주에게는 그런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연산군을 거들었다.</p> <p contents-hash="8d0ae0eb464fea9d71c34639177a9bd95ea4b07dd42df2f8314491ea0e59aad1" dmcf-pid="WH8Nja1m3R" dmcf-ptype="general">그 후로 그는 채홍사가 모집해온 기녀인 흥청들에게도 소고기를 제공했다. 위 실록은 "이때부터 흥청들에게 음식을 줄 때는 항상 소고기를 썼다"고 알려준다. 이런 연회에 사용된 소고기의 양은 상당했다. "날마다 10여 두를 도축해 수레에 실어 들였다"고 <연산군일기>는 말한다.</p> <p contents-hash="9308d876dbb8772ff7196208b3d0c2b295eb4c8bdf625ed06901fa2aa90f67c0" dmcf-pid="YX6jANtsFM" dmcf-ptype="general">연산군은 소고기 부위 중에서도 특히 태(胎)를 좋아했다. "왕은 소의 태를 잘 먹었다"고 위 일기는 말한다. 그래서 배가 부른 소는 무조건 잡아들여 도축했다. 그렇게 도축한 소들 중에는 태가 없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왕의 입맛을 맞추느라 무분별하게 도축했던 것이다.</p> <p contents-hash="960a551cd92d3e61c36f9536bf59ef10f1e038a9084c09526e4a2ea994dd441c" dmcf-pid="GZPAcjFOFx" dmcf-ptype="general">그 같은 임금의 식성으로 인한 대중의 피해와 원성은 대단했다. 매일 같이 열 마리 이상이 궁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 수요를 맞추기 위한 궁궐 사람들의 소 약탈도 심각했다. 수레를 끌고 가거나 짐 싣고 가던 소들이 길가에서 관헌들에 의해 강탈되는 일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부르짖으며 통곡했다"고 위 실록은 말한다.</p> <p contents-hash="aab87f1ba34972e7b47700e09295203b9dabf0be75b0292de52ea0b3f6c1be46" dmcf-pid="H5QckA3IpQ" dmcf-ptype="general">임금의 식성은 지방 관청들에게도 부담이 됐다. 도성과 가까운 지역에서는 날고기를 헌납했지만, 먼 곳에서는 육포를 떠서 수송했다. 연산군 한 사람 때문에 그 시대의 인간과 소가 모두 고생했던 것이다.</p> <p contents-hash="0ebcc0060840925396cc51d31d70eb91ed88fcf4b11d162133809383ff0e8253" dmcf-pid="X5QckA3IzP" dmcf-ptype="general">연산군이 불시에 소고기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연산군 12년 3월 14일자(1506.4.7.) <연산군일기>는 연회 도중에도 소고기를 새로 구해야 할 때가 많았다고 알려준다. 이런 경우, 궐내에 소고기가 없으면 관리들이 길거리로 나가 아무 소나 잡아들였다. 권력을 탐해 폭군이 된 측면뿐 아니라 소고기를 탐해 폭군이 된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p> <div contents-hash="54e8517dfdbf54839bd542eb373ccba42c9476bb0957630aa1933df163a6a8bf" dmcf-pid="Z1xkEc0CF6" dmcf-ptype="general"> <strong>"백마 고기는 양기를..." 기록에 남은 지시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aa0762edc738d08a345436d8d769d9625caf113cd1beeb906eea5eb473837c3f" dmcf-pid="5tMEDkph78"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31/ohmynews/20250831141513288ibxd.jpg" data-org-width="1261" dmcf-mid="KPy7zuNf0A"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31/ohmynews/20250831141513288ibxd.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tvN <폭군의 셰프>의 한 장면.</td> </tr> <tr> <td align="left">ⓒ tvN</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c19929a8aed1e6da46a75558ae45142fb7cc1b5aab274f03b50c0c04f4130cf4" dmcf-pid="1FRDwEUl34" dmcf-ptype="general"> 연산군은 말고기도 좋아했다. 위 기록보다 2년 먼저 나온 연산군 9년 2월 8일자(1503.3.5.) <연산군일기>는 27세 된 임금이 말고기에 관한 왕명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실록은 연산군이 "백마를 찾아, 늙었지만 병들지 않은 것을 내수사로 보내라"고 전교(傳敎)했다고 알려준다. 늙은 말이라고 했으니 승마용은 아니었다. 늙었지만 식용이 가능한 백마를 구했던 것이다. </div> <p contents-hash="ed66c6f3921785f6cd2bbd0aa5b33b426d3ccd92284f8255d7149d1b1e406d40" dmcf-pid="t3ewrDuS3f" dmcf-ptype="general">위 기록을 남긴 사관(史官)은 연산군이 왕실 기물을 다루는 관청인 내수사에 흰 말을 충원하도록 한 이유를 별도로 설명한다. 사관은 "백마 고기는 양기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연산군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말한다.</p> <p contents-hash="235a8c42026433eda5969edb89b2e8fd87b2ece1ad32b9929f103ce1f76f0f60" dmcf-pid="F0drmw7v0V" dmcf-ptype="general">연산군이 왕명을 내리면서 양기를 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산군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신하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졌던 것이다. 신하들 앞에서 과도한 욕망을 무절제하게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p> <p contents-hash="371da506b801ddbba994956b15f3dae14fa49104d97d8d8a707f4edfb8a94772" dmcf-pid="3pJmsrzTu2" dmcf-ptype="general">연산군은 곤충도 많이 찾았다. 연산군 12년 5월 23일자(1506.6.14.) <연산군일기>는 그가 중앙관청들의 어린 노비들에게 귀뚜라미·베짱이·잠자리 같은 곤충을 잡아오라는 왕명을 내렸다고 알려준다.</p> <p contents-hash="1e1967e8992ceeb3e5eec678c423047fc8ce112ab535011868e7313447e8dc81" dmcf-pid="0UisOmqyF9" dmcf-ptype="general">같은 해 8월 7일자(1506.8.25.) 일기는 어린 노비들에게 두꺼비를 잡아오라고 명령하는 연산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날의 기록은 광주리를 든 남자 노비들이 거리 곳곳에 퍼졌다고 당시의 풍경을 묘사한다. 동물원이나 곤충 박물관을 만들려고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므로, 곤충이나 두꺼비 등이 식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p> <p contents-hash="b47d9af5d10a4445e7824a8c30a723f30d8031a5f969c1f926b8d339adad69e0" dmcf-pid="punOIsBW7K" dmcf-ptype="general">쫓겨난 폭군이라 더 잘 부각된 측면도 있지만, 연산군은 욕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식욕도 무절제하게 표출했다. 궁궐에 먹을 게 넘쳐나는데도, 대궐 밖의 소와 말까지 탐냈다. 그로 인해 대중에게 피해를 주고 세상의 원성을 자초했다.</p> <p contents-hash="d9c520f3172792cc1bacfa00b63a9e74b8ab948fe9bb7e2dfcdef7108ebf5940" dmcf-pid="U7LICObY0b" dmcf-ptype="general">소년 노비들에게 두꺼비를 잡아올 것을 지시한 다음달인 1506년 9월 17일(음력 9.1), 그는 중종반정으로 불리게 될 쿠데타를 당하고 다음날 폐위됐다. 욕망을 충족하는 데 집중하느라 신하들의 쿠데타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아이브 레이 리즈, 커플즈 입담 美쳤네 ‘노포기’ 접수한 예능감 08-31 다음 ‘10월 재혼’ 은지원, 아직 프로포즈도 안했다 “두 달 뒤 가족인데?” (살림남) 08-3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