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악의 범죄자 딸... 30년 동안 그녀에게 찍힌 낙인 작성일 08-28 7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넘버링 무비 496]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가 그의 딸이다></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VwQXK7j4um"> <p contents-hash="e8515dd2cefca45f06cb13ffbe13ffcb43c981696a197decba0e62670826100a" dmcf-pid="frxZ9zA8zr" dmcf-ptype="general">[조영준 기자]</p>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65293096028aee01dc93e8414ec5d483cfd34301135aef66fb6f5c353d57bde" dmcf-pid="4mM52qc6Fw"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28/ohmynews/20250828113002649ckmg.jpg" data-org-width="1200" dmcf-mid="KuBpPVme0I"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8/ohmynews/20250828113002649ckmg.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가 그의 딸이다>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EBS국제다큐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76959bc35ea3863a2f57421ccc7f4f0bf2380df0834ce8208b06fafe67731838" dmcf-pid="8sR1VBkPpD" dmcf-ptype="general">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iv> <p contents-hash="3d99d936b88535e29cab5677a170b3513d31c2f4240ea1db1a2e904045c12282" dmcf-pid="6OetfbEQ7E" dmcf-ptype="general">01.<br>"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너무나 큰 사건이라서.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지만 사과를 드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p> <p contents-hash="244b470b1f7c90bb6cb2a82c0da5e06419cef59b9c4c659207e45276288d6aca" dmcf-pid="PIdF4KDx0k" dmcf-ptype="general">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는 일본 사회를 뒤흔든 비극이었다. 이 사건은 수많은 희생자와 부상자를 남겼고, 종교 집단이 일으킨 집단 범죄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충격을 안겼다. 시간이 흐르며 일본 사회는 이 사건을 반복해서 회고했고, 피해자의 고통은 사회적 기억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p> <p contents-hash="5dad213bb9eafebf95845860d53247f952d5e2a6334d84c8273a1a9a0a7a5e96" dmcf-pid="QwQXK7j4Fc" dmcf-ptype="general">그러나 사건의 다른 한 축, 가해자의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삶은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 영화 <내가 그의 딸이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셋째 딸 리카를 중심에 세우면서다. 그는 12살의 나이에 사건을 맞닥뜨렸고, 그 이후 삶은 끊임없는 낙인과 고립 속에서 이어졌다. 나가쓰카 요 감독은 이 인물의 여정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장기간에 걸친 밀착 기록을 통해 사회적 폭력과 개인적 정체성의 충돌을 드러낸다.</p> <p contents-hash="c7e0ade9dbdce14b00e73763dded39d0a1994ab492a7bb8202c71c4761958586" dmcf-pid="xrxZ9zA8zA" dmcf-ptype="general">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다. 테러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본 사회에서 옴진리교의 이름은 여전히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리카라는 존재는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그 공포와 불안이 투사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바로 이 문제를 마주한다. '사건 이후에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그날을 살아가야 했다'라는 전제를 중심에 두고, 리카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기억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지를 추적한다.</p> <p contents-hash="e3e5a066beeb70425f0091ed8a0ca25ffce72d9dfdd8c3f4944c2499a83c08ff" dmcf-pid="ybyisEUl7j" dmcf-ptype="general">시작부터 이 영화는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에 초점을 맞추며, 관객을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재의 증언 속으로 이끈다. 또한 작품은 사건 과정에서 반복되는 뉴스 화면과 당시 경찰의 공적 발표를 삽입해, 그가 처한 환경이 단순히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선과 언론의 프레임에 의해 구조화된 것임을 환기한다.</p> <p contents-hash="24c543d526eaacbf63786f57c1a85e322c01531087dfc9a3916d9efb036b9012" dmcf-pid="WKWnODuSzN" dmcf-ptype="general">02.<br>리카의 삶은 아버지의 이름에 가려진 채 이어졌다. 그 이름은 언제나 폭력의 상징이었고, 그에게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꼬리표였다. 학교에서는 또래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교사의 시선조차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론은 가끔 그의 존재를 언급하며 '교주의 딸'이라는 수식어로만 소비했다. 다큐멘터리는 이 과정을 에피소드 나열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사회적 경험으로서의 차별을 기록한다. 리카의 이름은 그렇게 사회 속에서 삭제되고, 오직 아버지의 이름과 당시 그가 불리던 '아차리'라는 교명만으로 규정되는 순간들이 끝없이 이어진다.</p> <div contents-hash="b8203fc487207e9b3c0ede702a15c0f23d017ddabbf5b40e11ec124c5f85252d" dmcf-pid="Y9YLIw7vza" dmcf-ptype="general"> 이러한 낙인은 단순히 타인의 시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리카 자신의 내면에 깊이 스며든다. 스스로가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자살을 떠올리던 때도 있었다. 자신이 '교주의 딸'이 아니라 '리카'임을 말하는 행위조차 무의미해 보이는 상황에서, 정체성마저 철저히 붕괴되었던 탓이다. 물론 영화가 이 절망을 관객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차분히, 때로는 침묵을 통해 이 고통을 드러낸다. 카메라는 그의 말을 기다리고, 때로는 눈빛만을 따라가며 그 낙인의 무게를 체감하게 만든다. 리카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사람들이 내 존재 자체를 잘못처럼 대했다'라고 회상한다. 낙인이 단순한 사회적 편견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관계와 일상의 모든 층위에서 작동했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cf9ffcab6d6c195cb74319ac2347dfa148920388e49dad8c3dc08b642f3328f" dmcf-pid="G2GoCrzT7g"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28/ohmynews/20250828113003967pmfm.jpg" data-org-width="1200" dmcf-mid="97q062rR3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8/ohmynews/20250828113003967pmfm.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가 그의 딸이다>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EBS국제다큐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5c1f44f42b6f34b3acc6902362a240c798073b3d9a0edb88a9a53ff822f2beb4" dmcf-pid="HVHghmqyuo" dmcf-ptype="general"> 03. <br>"일상생활을 하는 게 솔직히 정말 힘들어서...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할까요?" </div> <p contents-hash="1b89a7fadd5d8aa2db84648d882896f068ab7d36313e91c920a69bdd9e265f4e" dmcf-pid="XfXalsBWzL" dmcf-ptype="general">리카의 고립은 단순히 사회적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한 가족의 붕괴 역시 중요한 맥락을 이룬다. 아버지 아사하라 쇼코는 사형수로서 국가의 처벌을 받았고(2018년 7월 6일 사형이 집행됐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사실상 뿔뿔이 흩어졌다. 가정이라는 최소한의 공동체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리카는 완전히 홀로 남겨졌다. 사회가 그를 배제하는 동시에, 가족조차도 하나의 울타리가 되지 못한 셈이다. 다큐멘터리는 이 단절을 특정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풍경 속에 스며들어 있는 상실의 흔적으로 표현한다.</p> <p contents-hash="0a7d7a7950ed81a2523f6cdd8a4db78f58fe7b7fb64f9a291d294331c4d87bcd" dmcf-pid="Z0OPAoZw0n" dmcf-ptype="general">사회 역시 그에게 어떤 보호도 제공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죄가 없는 그를 제도적으로 보호할 장치는 부재했고, 사람들은 오히려 경계와 혐오를 선택했다. 그 결과 리카는 '아버지의 죄'를 반복해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영화가 기록하는 시간 동안, 그가 직면하는 사회적 벽은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제도적 공백이기도 하다. 정의의 실현이 곧 개인의 새로운 고립을 낳는 역설적인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집단 범죄 이후 제도가 어떤 식으로 '가해자 가족'을 위치 지을지에 대한 고민이 전무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집단 범죄 이후 사회가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을 어떻게 구분하고 다루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p> <p contents-hash="9370a6b4cdf5192c8bc126a03dac67f58267382bde20f1613fabc57d7ec21c31" dmcf-pid="5pIQcg5r3i" dmcf-ptype="general">04.<br>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카는 '그의 딸'이라는 호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2년 전, <멈춘 시계>라는 이름의 수기를 발표한 것도, 지금 이름과 얼굴을 공개한 채로 공적 발언의 자리에 서기도 하고,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며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모두 그래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자기 고백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회가 그를 다시 '리카'로 불러줄 수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자, 존재를 인정받는 일과 같다.</p> <p contents-hash="3c8c3cf05a49a14aad3201722a682bd35c0eabae4fe35de1f691999cc72162b2" dmcf-pid="1UCxka1muJ" dmcf-ptype="general">물론 이 과정은 순탄치 않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를 교주의 딸로만 본다. 때마다 무차별적인 비난과 폭력, 배척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작품은 그 자리에서 작은 변화를 포착한다. 리카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순간이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는다. '나는 그의 딸이 아니다. 나는 리카다'라는 선언은 단순한 개인의 외침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을 거부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p> <p contents-hash="278b12c8cc9834b2872ea49f24af368f5e68f63ce0670e5bdcd2d6f356c9da80" dmcf-pid="tuhMENtszd" dmcf-ptype="general">05.<br>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또한 그 구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사건 이후에도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으며, 그것은 사회적 기억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해자의 가족 역시 죄 없는 존재임에도 사회적 배제의 굴레 속에 갇힐 때, 그들 또한 새로운 형태의 희생자가 된다. 리카의 삶은 바로 이 모순의 교차점에 자리한다. 다큐멘터리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가해자 가족의 고통이 부차적으로나마 증언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이것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사회의 일부로 발화할 자격을 갖는가?'라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는 행위다.</p> <p contents-hash="bba4e458045266d0ec77d503a07783f92cbe449696b13d92f80abbcd5cbb5509" dmcf-pid="F7lRDjFOze" dmcf-ptype="general">이 지점은 다큐멘터리 윤리의 핵심을 건드린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존중이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우리는 다시금 침묵을 강요받는 이들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가해자 가족의 고통을 드러내려는 시도가 피해자의 고통을 상대화할 위험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가쓰카 요 감독의 연출은 이 두 가지 위험을 은폐하지 않고 관객 앞에 노출시킨다. 그는 선택적으로 어느 한쪽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쪽의 목소리를 병치하며, 그 불편한 공존 자체를 영화의 힘으로 만든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누구를 사회의 기억 속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끝내 배제할 것인가?'라는 것.</p> <div contents-hash="cfe794b62c840a91e9cd0b7d79f0cd42d55e3460fe2b6235c2226eb96efa5907" dmcf-pid="3zSewA3IuR" dmcf-ptype="general"> 작품의 이야기를 뒤따르는 관객 모두는 누구도 이 질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피해자의 자리에서도, 가해자 가족의 자리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채,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의 사회적 관계망, 기억의 정치학, 그리고 발화의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응시하게 만든다. 나가쓰카 요 감독은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기보다, 진실을 둘러싼 목소리들의 긴장을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다큐멘터리가 윤리적 사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6b173273ae1ba94fa842fc5003572bbd1479273377a4be9853e17841c3b43784" dmcf-pid="0qvdrc0C3M"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28/ohmynews/20250828113005233echp.jpg" data-org-width="1200" dmcf-mid="2zkghmqy7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28/ohmynews/20250828113005233echp.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strong> EBS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내가 그의 딸이다>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EBS국제다큐영화제</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19e28adb9a65e50f850ea6b246b7593bbeff4c0e92d641d9df3687d34d3de783" dmcf-pid="pBTJmkphFx" dmcf-ptype="general"> 06. <br>"아픔을 겪으신 분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div> <p contents-hash="099ef50c0bfcd9cf2c5561b51bb36376e5776f3989a2c9bde115429b0f0c7e76" dmcf-pid="U9YLIw7vzQ" dmcf-ptype="general">다큐멘터리의 윤리적 태도를 살펴본 흐름에서 더 나아가자면, '누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집단 범죄의 증언은 피해자의 몫으로 여겨지지만, 이 영화가 가해자 가족을 증언자로 세우고 있어서다. 이때 발생하는 불편함은 필연적이다. 피해자의 고통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와, 침묵을 강요당한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권리 사이의 충돌 때문이다. 하지만 리카가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여는 순간, 그 발화는 단순한 자기변호가 아니라 낙인의 재현에 대한 증언으로 읽힌다.</p> <p contents-hash="28578fb67194e286b95c4696f1dbc024927f6c7f8b40e14bf5cff3d103f33031" dmcf-pid="u2GoCrzT7P" dmcf-ptype="general">여기서 중요한 것은 증언이 하나의 영역에 독점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가해자 가족의 침묵을 강요하는 순간 또 다른 억압을 낳는다. 나가쓰카 요 감독은 이 모순을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관객 앞에 그대로 드러낸다. 결국 증언의 윤리란 특정 집단의 독점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의 병치 속에서 진실을 다층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다층성을 보여준다.</p> <p contents-hash="cb0ba5e80a1ae619324c51ff3ec188c8179173df3e1a964bb87d3bf556f0ef6c" dmcf-pid="7VHghmqy36" dmcf-ptype="general">07.<br>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개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 사회가 집단적 폭력 이후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선택하는지를 묻는다. 사회는 피해자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가해자를 철저히 배제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 가족은 공적 기억 속에서 삭제되거나 왜곡된다. 영화는 바로 그 삭제의 순간들을 복원한다. 관객은 그렇게 리카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다시 마주한다. 폭력의 가해자가 남긴 상처는 단순히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집단적 폭력을 경험한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어떻게 책임을 나눌 것인지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 머무르도록 만든다.</p> <p contents-hash="e84acc2734338f59275ce38cf7559d64a43b54117843a029dd1b7f5ee8e6c8bc" dmcf-pid="zfXalsBW08" dmcf-ptype="general">그렇게 보자면, <내가 그의 딸이다>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선 사회적 증언에 가깝다. 그리고 집단 범죄 이후 남겨진 자들의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극 중에 등장하는 하라다 마사하루씨의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을 같은 시선으로 봐야 한다'라는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이는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 고통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다큐멘터리의 역할을 다시 묻게 한다. 나가쓰카 요 감독은 선정적 재현 대신 침묵과 기다림을 택함으로써, 다큐멘터리가 가질 수 있는 윤리적 힘을 증명한다.</p> <p contents-hash="6c75afe0701b1b5537963557010955e869880a7987cfa32ffc8f0c6e0a557469" dmcf-pid="q4ZNSObY34" dmcf-ptype="general">결국 이 작품은 사회 전체가 품어야 할 책임의 초상이자, 무엇보다 '리카라는 이름'을 되찾는 기록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교주의 그림자가 아니라, 한 개인이 자기 이름을 되찾고 그것을 사회 속에서 발화하려는 용기다. 관객은 그 목소리를 통해 다시금 묻게 된다. 우리는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리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삭제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 남는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조항조·주현미, ‘무명전설’ 전설 합류…남진과 함께 국보급 라인업 완성 08-28 다음 '슈팅스타2' 최용수 "재밌고 리얼한 축구, 열정 가지고 임해" [N현장] 08-28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