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물든 체육계] “이거··· 익명으로 나가는 거 맞죠?” 작성일 08-22 17 목록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5/08/22/0000718978_001_20250822080012299.jpg" alt="" /></span> </td></tr><tr><td> 사진=뉴시스 </td></tr></tbody></table> 은퇴한지 2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만 떠올리면 여전히 두려움이 밀려온다. 눈물로 지새우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버텼던 고통의 시간.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개인 종목 선수 출신 A씨는 인터뷰 요청에 고사했다. 그러나 용기를 냈다. 한국 체육계 만연한 폭력과 인권침해. 이제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어렵게 목소리를 냈다.<br> <br> 폭력의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남들보다 늦게 배운 운동, 성적은 하위권이었다. ‘못한다’는 이유로 지도자의 폭행이 이어졌다. 그는 “그냥 맞았다. 엉덩이도, 배도, 뺨도, 머리도… 그냥 보이는 데는 다 맞았다”고 몸서리를 쳤다. 이어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그랬으니 당시엔 당연한 문화라고 생각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회상했다. <br> <br> 무분별한 폭력을 견뎌야 했다. 그는 “경기장을 옮겨 다닐 때면 지도자는 야구 배트까지 빌려 우리를 때렸다. 경기 중에도 틈만 나면 폭행이 이어졌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것밖에 안 되냐’는 욕설이 따라왔다. 선배 한 명은 맞다가 기절해 산소호흡기까지 써야 했다”고 부연했다.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5/08/22/0000718978_002_20250822080012369.jpg" alt="" /></span> </td></tr><tr><td> 사진=뉴시스 </td></tr></tbody></table> 고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기들끼리 모여 “우린 기계가 아닌데, 못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토로했지만, 이내 또다시 지도자 앞에 무릎 꿇은 자신들을 발견하곤 했다. ‘이 지도자만 벗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으며 중학교를 버텼다. 그러나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가해자가 바뀌었을 뿐, 폭력이 난무하는 구조는 그대로였다.<br> <br> 대학교에선 선배들의 괴롭힘까지 시작됐다. 가장 무서운 건 ‘내리갈굼’이었다. A씨는 “4학년이 1~3학년을 집합시킨다. 이후 3학년은 1~2학년을, 2학년은 1학년을 불러 머리를 박게 했다. 10시부터 시작된 집합은 새벽 2시가 돼서야 끝나기도 했다. 두피가 벗겨져 하얗게 일어날 정도였다”며 “한 명이 잘못하면 모두가 모였다. 선수가 한두 명도 아니고, 돌아가면서 한 번씩 잘못한다고 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머리를 박거나 맞았다”고 말했다.<br> <br> 열심히 하는 것도 문제가 됐다. A씨는 “기본 훈련을 하다 선배보다 조금 더 앞서나간 적이 있다. 아차 싶었는데, 당시에 선배가 아무 말도 안 해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훈련이 끝난 뒤 나는 내 친구들랑 또 불려 갔다. 그때의 미안한 감정은 아직도 남아있다”고 고개를 떨궜다.<br> <br> 첫 번째 꿈,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텼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신고하면 다시는 이 세계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고발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조용히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지도자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다시 가해자들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도 만만치 않았다. 10년 넘게 외길만 걸어온 선수에게 세상은 또 다른 벽이었다.<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396/2025/08/22/0000718978_003_20250822080012407.jpg" alt="" /></span> </td></tr><tr><td> 사진=뉴시스 </td></tr></tbody></table> 현재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A씨는 “내게서 운동을 지우니까 남는 게 하나도 없더라. 성인이고 20대 중반이지만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지금은 물류센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은퇴 직후엔 길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돈을 조금 더 모으면 자격증을 따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br> <br> 스스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모르게 내리갈굼의 흐름에 서 있었다. A씨는 “변명 없이 그냥 미안한 마음뿐이다”라며 “시대가 달라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그 종목과 관련된 다양한 소식이 들린다. 자신의 간절한 꿈을 위해 그저 버티고 견디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마쳤다. <br> 관련자료 이전 '디펜딩챔피언' 안세영, 배드민턴 세계선수권 2연패 도전[주목! 이 종목] 08-22 다음 [출근길인터뷰] '러닝' 열풍…부상 없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달리려면? 08-22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