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선수 뒤에서 공 줍는 사람들, 볼피플의 노동은 당연한가? 작성일 08-20 15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베이스라인 밖에서] '명예로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불평등</strong><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8/20/0002485096_001_20250820143411857.jpg" alt="" /></span></td></tr><tr><td><b>▲ </b> 테니스 볼피플들의 자원봉사가 당연시되고 있다.</td></tr><tr><td>ⓒ arnok on Unsplash</td></tr></tbody></table><br>선수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볼피플(Ball People)'.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을까?<br><br>2026년 호주오픈을 위한 한국 대표 선발 과정을 보자. 만 12~15세만 지원할 수 있고, 1차로 TOEIC Bridge 영어 시험(응시료 3만 6000원)을 치른다. 상위 200명만이 2차 실기 테스트에 오르고, 코트 위 민첩성과 규정 이해도를 시험받받는다. 그리고 오리엔테이션까지 통과하는 최종 20명만이 호주행 티켓을 얻는다. 웬만한 기업 채용 공고 못지않다.<br><br>하지만 이렇게 치열한 관문을 통과하고 돌아오는 건 화려한 유니폼과 인증서뿐이다. 금전적 보상은 없다. '특별한 경험'이라는 명목 아래 이들의 자원봉사가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호주오픈은 역대 최대 규모인 428명을 운영했고, 윔블던은 1600명 지원자 중 276명, US오픈 역시 약 1600여 명 중 80명(기존 인력 제외), 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은 6000명 지원자 중 300명을 선발했다. 이 숫자들만 봐도 이 노동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구성되고 경쟁적인지 알 수 있다.<br><br>이쯤에서 질문이 생긴다. 볼피플은 정말 특별한 경험을 얻는 행운아인가, 아니면 스포츠 산업의 화려한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게 소모되는 존재인가?<br><br><strong>볼피플의 탄생</strong><br><br>테니스 초창기에는 별도의 볼피플이 존재하지 않았다. 선수 스스로 공을 주워 오거나, 경기장 주변의 하인·잡역부들이 대신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테니스가 귀족적 사교를 넘어 정식 스포츠로 자리 잡으면서, 경기를 끊김 없이 운영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때부터 볼피플은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라 경기 리듬을 유지하는 조력자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br><br>20세기 들어 볼피플의 성격은 또 한 번 달라졌다. 이 일을 맡은 주체가 하인에서 청소년으로 바뀐 것이다. 특히 테니스 유망주들에게 볼보이·볼걸 경험은 '선수로 가는 길목'으로 여겨졌고, 윔블던이나 호주오픈이 지금까지도 청소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전통은 이 맥락에서 비롯됐다. 규율 있는 훈련과 엄격한 동작 통제는 경기 운영을 돕는 동시에, 대회의 권위와 전통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했다.<br><br>냉전기 이후 테니스 투어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볼피플은 경기 진행의 필수 인프라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TV 중계가 보편화되면서 그들의 역할은 더욱 상징화됐다. 단순히 공을 줍는 존재가 아니라 화면 속에 함께 존재하는 '연출 요소'가 된 것이다. 공을 건네는 방식, 라인 옆에서 대기하는 자세, 심지어 표정까지 통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br><br>시간이 지나며 볼피플의 사회적 범위는 점차 넓어졌다. 더 이상 선수 지망생 청소년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테니스를 직접 지망하지 않는 학생이나 성인도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가령 US오픈은 'Ball Crew'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연령·성별 제한 없는 공개 트라이아웃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볼피플을 더 이상 선수 후보군이 아니라 공식 스태프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었다. 최근에는 성별과 나이를 배제한 Ball People(또는 Ball Person)이라는 표현이 점차 확산되며, 이들을 단순한 '아이들'이 아닌 독립된 노동 주체로 바라보는 흐름이 보이고 있다.<br><br><strong>같은 노동, 다른 대우</strong><br><br>볼피플은 코트의 리듬을 유지하는 핵심 인력이지만, 대회마다 그 대우는 크게 다르다.<br><br>US오픈은 그랜드슬램 가운데 가장 '노동'에 가까운 방식을 택한다. 우선 합격자에게는 시급 16~17달러(약 2만 원)가 지급된다. 여기에 식사, 유니폼, 주차 바우처까지 제공되지만 숙소와 교통비는 본인 부담이다. 지원자 연령도 14세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br><br>윔블던은 여전히 'Ball Boys/Girls'라는 전통적 명칭을 쓰며, 특정 학교의 추천을 통해 뽑힌 14~16세 청소년만 선발한다. 이들은 군대식 훈련을 거쳐 30분 단위로 교대 근무를 하며, 대회가 끝나면 약 £200(약 34만 원)의 수당을 받는다. 공식적으로 최저임금 체계에 속하지는 않지만, '전통과 명예'라는 브랜드에 여전히 수많은 학생들이 지원한다.<br><br>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은 논란이 더 크다. 호주오픈은 2008년 이후 볼키즈를 '자원봉사자(volunteers)'로 전환하면서, 무급 구조가 자리 잡았다. 호주 노동단체는 "세계적 흥행 대회가 무급 노동에 기대고 있다"라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br><br>프랑스오픈(롤랑가로스)도 12~16세 청소년 중심으로 '볼키즈(Ballkids)'를 운영한다. 대부분 프랑스 테니스연맹(FFT) 산하 클럽 소속으로, 서류-실기-합숙 훈련까지 거쳐 선발된다. 교통·숙소·식사는 제공되지만 금전적 보상은 없다.<br><br>결국 같은 공을 주워도 어떤 대회에서는 시급을 받으며 '크루'라 불리고, 또 다른 대회에서는 '명예로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무급으로 일한다. 그 간극이 바로 볼피플이 처한 현실이다.<br><br><strong>보이지 않지만, 잘 보이는 노동</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8/20/0002485096_002_20250820143411967.jpg" alt="" /></span></td></tr><tr><td><b>▲ </b> 볼피플는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존중은 보장되지 않는다.</td></tr><tr><td>ⓒ rhamely on Unsplash</td></tr></tbody></table><br>볼피플은 공만 다루지 않는다. 이들은 선수의 수건을 전달하고, 우산을 들고, 햇빛을 가리며, 때로는 음료까지 건넨다. 선수와 카메라, 규정 사이에서 경기의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 이다.<br><br>그런데 왜 이런 일까지 이들이 맡아야 할까? ATP 관계자가 2024년 7월 <로이터> 기사에서 "볼피플이 수건을 전달해 주면 이동 시간을 줄여 경기 템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찬성 측은 이를 경기 운영의 필수 노동으로 보는 듯하다. 선수들이 불필요하게 코트 곳곳을 오가지 않아도 되니 리듬이 유지되고, 관객 입장에서도 템포가 끊기지 않는다는 논리다.<br><br>그러나 이들의 존재는 언제나 모순적이다. 일부 대회는 "눈을 맞추지 말 것,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말 것, 화면에 보이지 말 것" 같은 규율을 만들어, 카메라 속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그랜드슬램 경기는 볼키즈에게 랄프 로렌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혀,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활용한다. 복장 규정이 간단한 것도 아니다. 모자 각도, 양말 길이, 로고 노출 위치까지 규정돼 있다.'보이지 않지만, 잘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br><br><strong>존중과 무시 사이</strong><br><br>이처럼 볼피플는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존중은 보장되지 않는다.<br><br>2018년, 스페인 선수 페르난도 베르다스코는 수건을 늦게 가져온 볼보이를 향해 공개적으로 고성을 질렀다. 단순한 불만 표출이었을지라도,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향한 고압적 태도는 큰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동료 선수 로저 페더러가 직접 나서 "볼키즈를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br><br>2024년 인디언웰스에서는 다른 양상이 연출됐다. 야닉 시너가 알카라스와 맞붙던 경기에서, 볼걸이 무거운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너가 직접 우산을 들어주었다. 관중과 언론은 이를 두고 "매너 있는 선수"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선수가 자기 우산을 직접 드는 행위가 미담으로 소비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그만큼 볼피플의 '노동'이 얼마나 당연시되고 은폐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br><br>가장 최근인 2025년까지도 이러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올해 인디언웰스 대회에서는 세계 1위 이가 시비옹테크의 라켓에서 날아간 분노 섞인 타구가 볼보이 근처로 향해 논란이 됐다. 그녀는 "의도하지 않았다"며 사과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공이 맞았는지 여부가 아니다. 선수의 감정적 행위가 볼보이에게 물리적 위협으로 다가가는 순간, 경기장 안의 권력 불균형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br><br>결국 문제는 개별 선수의 태도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볼피플을 '존중받으면 특별한 일'로 위치 짓는 문화가 더 큰 문제다. 존중은 선택적 미담이 아니라, 제도적 보장이어야 한다.<br><br><strong>최소한의 상상력</strong><br><br>볼피플 처우 문제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수천억 원대의 티켓, 중계, 스폰서 수익이 오가는 구조 속에서 이들의 몫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은 구조적으로 불균형하다.<br><br>대회 수익의 일정 비율을 '볼키즈 기금'으로 적립해 장학금이나 해외 연수 같은 형태로 돌려주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물론 기존 선수 상금 분배나 대회 운영비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즉각 실현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볼키즈도 투어 운영의 필수 인력"이라는 인식 전환은 시작되어야 한다.<br><br>볼피플의 또 다른 문제는 안전이다. 시속 200km의 타구, 미끄러운 코트, 반복되는 고강도 업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테니스 공을 자동으로 수거하는 로봇 기술이 개발·소개되고 있지만 아직은 비용과 전통적 운영 방식 등의 장벽으로 공식 대회에선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br><br>따라서 지금 당장은 전면적 대체가 아니라, 인간-기계 병행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로봇이 담당하고, 볼키즈는 센터코트 운영이나 선수·관객과의 소통 같은 인간적인 역할에 집중하는 식이다. 비록 실현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스포츠가 기술 혁신을 끌어안는 미래적 장면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논의다.<br><br><strong>어떻게 대우할 것인가</strong><br><br>다른 스포츠에도 볼보이·배트보이 같은 보조 인력이 있지만 대부분은 주변적이거나 체험 성격에 머문다. 반면 테니스에서 볼피플은 경기의 속도와 리듬을 유지하는 필수 노동으로 자리 잡았고, 수천 명 단위의 조직적 선발과 훈련, 브랜드·전통과 결합된 상징적 존재로 발전했다. 이 지점에서 테니스만의 독특한 문화와 그에 따른 책임이 생겨난다.<br><br>경기를 매끄럽게 유지하는 순간의 노동이 당연시될 때, 존중은 가장 먼저 사라진다. 테니스가 진정한 권위를 유지하려면 선수뿐 아니라 경기를 지탱하는 이들에 대한 대우에부터 답해야 한다.<br> 관련자료 이전 2026년 제주 전국체전 '도민 서포터즈' 4천470명 모집 08-20 다음 남자 배드민턴 간판 김원호, 유소년 육성 기부금 전달 08-20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