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보육원 가기 싫었던 열세 살 소녀의 선택 작성일 08-11 4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씨네만세 1133] <수연의 선율></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tsKcZiUl3N"> <p contents-hash="dcdaf73d1fed750bceb9805238685d704078d9c823f9585e0b133ea38056b747" dmcf-pid="FO9k5nuS3a" dmcf-ptype="general">김성호 평론가</p> <p contents-hash="7bab63419d1c72209a5d629db8d0e727a8fdf869dde63261b867f6536113b2d6" dmcf-pid="3I2E1L7vFg" dmcf-ptype="general">선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 또한 달라진다.</p> <p contents-hash="d071db043931d0308cb828828a14a262dd179ca175a4d0f53b759074ca18ece8" dmcf-pid="0CVDtozT0o" dmcf-ptype="general">스스로를 완전히 다른 곳에 놓아둔 경험 있는 이만이 이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테다. 학생일 땐 보이지 않던 것이 교사가 되면 보이고, 또 교사는 보지 못하는 것을 학생들은 본다. 장교와 부사관, 사병 또한 마찬가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대도, 이들에겐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가 분명히 자리한다. 사장님과 직원,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알바생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노인과 청년, 또 남자와 여자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p> <p contents-hash="be737501cbe0d42a32ec927efe0113251d7a5f15eefa11f5be0b0dfd8df95d16" dmcf-pid="phfwFgqyuL" dmcf-ptype="general">사람들은 흔히 앉은 자리에서 다른 자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머리로 한 이해는 감각을 포괄하지 못하고, 감각을 배제한 지식은 온전한 앎에 닿지 못한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실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단 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고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니, 이것이 인간과 사회가 저도 모른 채 어리석고 편협해 지는 방식이다.</p> <p contents-hash="1df2f54194bdbf81babe576076ff710dd427bd3b0143a96258fd039c56780ef1" dmcf-pid="UZJTKmP33n" dmcf-ptype="general">선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 또한 달라진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달리 쓸 수도 있겠다. 선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지 않는 것이 생긴다. 또 선 자리가 달라지면 새로 보이는 것도 생긴다. 가끔은 선 자리에 따라 같은 것이 다른 모양이 되기도 한다. 가까이 다가선 이에겐 그저 두꺼운 기둥인 것이, 다른 이에겐 코끼리 다리가 되듯이.</p> <div contents-hash="ae115d11397f02a9352b569b1a60606c693b51c7bd7ceacc35640b128d96af49" dmcf-pid="u5iy9sQ07i" dmcf-ptype="general"> <strong>부모 없는 아이, 할머니까지 돌아가셨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4d4e9e609cf75af51ce38f058ed0b53fea14f8c5e6f8643c20a913677f32f7c2" dmcf-pid="71nW2Oxp0J"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1/ohmynews/20250811094502057unkt.jpg" data-org-width="1280" dmcf-mid="He0iS6XD3E"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1/ohmynews/20250811094502057unkt.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수연의 선율</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싸이더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7353a6d4e0a13c09d3c2415bb0c23a970942a976b737a7d131852d09b88ec779" dmcf-pid="ztLYVIMUUd" dmcf-ptype="general"> 어떤 아이가 있다. 열세 살 수연(김보민 분), 얼마 전 하나 뿐인 가족을 잃었다. 홀로 수연을 키워온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벌써 몇 년 째 행방불명인데, 등본상으론 아직 사망처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자면 수연은 천애의 고아가 됐다. 하늘 아래 돌봐줄 누구도 없는. </div> <p contents-hash="08405c610a73756bd71c36ed4688d53ae842fd159429c3ac25f2cdd127267be5" dmcf-pid="qFoGfCRuUe" dmcf-ptype="general">최종룡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수연의 선율>은 할머니 장례식장을 지키는 수연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한다. 장례식이 끝나면 할머니는 완전히 떠난다. 아직 중학교도 가지 못한 수연은 혼자가 된다. 수연을 태우고 운구차를 따라 차를 몰아가는 어른은 수연이 곧 보육원에서 지내게 될 거라고 말한다. 행방불명인 수연의 할아버지가 사망한 걸로 처리되면 보호자가 없는 수연이 보육원에서 지낼 자격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돌볼 이 사라진 아이에게 사회가 해주는 건 딱 이정도 친절.</p> <p contents-hash="d600161d7766ecea9b8d816ab8c5edb9cca42a3cf3ba14c9f2b431a77186af2b" dmcf-pid="B3gH4he7uR" dmcf-ptype="general">영화는 장례가 끝나고 돌아온 수연의 행보를 따른다. 수연은 저를 잘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결정대로 가만히 보육원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할머니집에서 지금껏 살아온 그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뿐. 보호자를 만드는 것이다.</p> <div contents-hash="f75c5c0ea6f9ae82872e968dafd5a86700f2cca7deaf1e906ed30788102c0d96" dmcf-pid="b0aX8ldz0M" dmcf-ptype="general"> <strong>보육원은 싫어... 보호자 찾아 나선 열세살 아이</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2f0d02d2a9c3a757881979a3e14bc70933c7f871209043e89ca9e87c7ac9d8e1" dmcf-pid="KpNZ6SJqzx"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1/ohmynews/20250811094503374ypoh.jpg" data-org-width="1280" dmcf-mid="ZXuoyx1m3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1/ohmynews/20250811094503374ypoh.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수연의 선율</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싸이더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323964bc75cebcf19c82b556c07ebb16471370cd98e5422bb754af5916ebf0d7" dmcf-pid="9sKcZiUl0Q" dmcf-ptype="general"> 처음 찾는 건 어릴 적 가까이 지낸 친구네 가족이다. 수연과 동갑내기인 탓으로, 할머니와 친구네 엄마가 도움을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무작정 친구네를 찾아 벨을 누른 수연에게 아줌마는 저녁밥도 내주지 않는다. 지금은 따로 내어줄 음식이 없다며, '저녁은 먹고 왔지'하고 물을 뿐이다. 그런 질문 앞에서 아직 먹지 않았으니 차려 달라 답할 배포 좋고 능청스런 아이를 나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기댈 구석 하나 없는 천애고아임에야. </div> <p contents-hash="18389d2042ec8cb31f5035712f6efaa169582d6ca9e5f3c81b85938366b7928c" dmcf-pid="2O9k5nuSUP" dmcf-ptype="general">하루 묵고 가도 되느냐, 그 말 한 마디가 수연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줌마는 온 몸으로 반기지 않는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오늘 하루는 자고 가라고 말한다. 예전, 그러니까 할머니가 살아있을 적엔 자주 자고 가지 않았느냐며. 그리고는 영 탐탁찮아 하는 제 딸을 불러 같이 자라고 하는 것이다.</p> <p contents-hash="4c1102bff3c8798ef77a9d34e2dc49a65715c789e90cbf58dbbda53e33f9d61a" dmcf-pid="VI2E1L7v76" dmcf-ptype="general">첫 시도는 그대로 꽝이다. 수연은 이집 딸과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못된다. 같은 학교 동급생이면 죄다 친구로 보는 건 어른들의 간편한 해석일 뿐, 아이들에겐 나름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이집 딸은 못난 왕따이고 수연 또한 그리 착한 아이는 되지 못한다. 둘은 전혀 가깝지 않고, 그리하여 수연의 첫 계획은 어긋나게 된다. 눈치 빠삭한 이집 딸은 수연과 가족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수연은 단 하룻밤, 하루아침 만에 이집에 제 자리가 없단 걸 알게 된다. 영화는 투박하게 배치한 명백한 차별의 장치로써 그 사실을 관객에게도 알도록 한다.</p> <p contents-hash="7d0b5273bed987a169077caedee01a1e26185be379f8ed860fbfccd376368653" dmcf-pid="fCVDtozTU8" dmcf-ptype="general">다음은 교회다. 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교회는 우리네 종교가 흔히 그러하듯, 나름대로 공동체적 성격을 얼마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목사 부부는 수연을 불러 앞으로 교회 어른들이 수연을 챙기겠다 말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어떻게 챙기겠다는 말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엄격하기만 한 목사에게도 수연은 영 마음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수연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목사의 아들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나이도 어린 데다 기댈 곳 없는 여자아이인 수연에겐 그의 관심이 그대로 두려움이 된다.</p> <div contents-hash="60841b255f80c5718ec2e5cb89f67cec137cfce57196ed696196b2443c04e23c" dmcf-pid="4hfwFgqyp4" dmcf-ptype="general"> <strong>가정을 넘어 사회로, 돌봄은 확장되어야 한다</strong>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b196a80350760b707bfd9e87234a36a7fc03b0a529d096a6d9ed4b4fa2b5672a" dmcf-pid="8l4r3aBW3f"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1/ohmynews/20250811094504624vtzp.jpg" data-org-width="1280" dmcf-mid="1UaX8ldzUj"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1/ohmynews/20250811094504624vtzp.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수연의 선율</strong> 스틸컷</td> </tr> <tr> <td align="left">ⓒ 싸이더스</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ad4c574dadf44bbadd4f744b51c82b7c6f2224923122cb28aa432fee37ec28fb" dmcf-pid="6S8m0NbYzV" dmcf-ptype="general"> <수연의 선율>은 수연이 고른 선택지를 비춘다. 수연이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부부로, 입양한 일곱 살 딸 선율을 키우고 있는 가정이다. 표현성 언어장애가 있는 선율을 입양해 기르면서 아이를 하나 더 입양할 계획이라고. 제법 단란해 보이는 이 가족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수연은 선율 곁에 있는 제 모습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저 꿈만 꾸는 건 아니다. 가까운 동네니만큼 유튜브 영상 속 선율과 그 부모가 오가는 장소들이 수연의 눈에 익어 있는 덕분이다. 수연은 선율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찾아 자연스레 접근한다. </div> <p contents-hash="c95877123e6d77ad7e816e931450d706790ea9e3b3dca81ce63a448f71751546" dmcf-pid="Pv6spjKGF2" dmcf-ptype="general">영화는 수연이 선율을 통해 부부와 연을 맺고, 자연스레 그들에게 녹아드는 과정을 다룬다. 물론 이야기는 수연의 기대처럼만 흐르지 않는다. 선율의 부모는 수연의 기대처럼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그들이 가진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과정이 무심한 듯 수연을 관찰하는 카메라 안에 그대로 담긴다. 그저 관찰하는 카메라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기댈 곳 없는 수연의 위태로운 상황을, 마치 우물을 향해 다가서는 아이를 지켜보는 이의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어른들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수연의 순진한 계획이 그 너머 결코 믿을 수 없는 이들의 어른스런 계획과 부딪쳐 내는 소리는 와장창 유리컵이 깨져나가는 것만큼 새되다.</p> <p contents-hash="bd9513da03b87426288affaf966985e242a7a8ed21eef310fca85dfa718e208a" dmcf-pid="QGRlqD41p9" dmcf-ptype="general">영화가 다분히 극화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수연에게 닥친 위태로움의 감각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다. 기댈 곳 없는 아이에게 세상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친절이란 그것이 간절한 이에게만 한없이 귀하다. 세상의 흔한 친절한 이의 시선에는 수연과 그 세계가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영화 속 수연의 집 문을 두드리는 어른들의 모습처럼. 마찬가지로 수연은 제가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알지 못한다. 키 작은 아이에게 어른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p> <p contents-hash="e49679106fafe98830bdaccf54497cc83c3eaced6f94ba807fde852fbc8f1064" dmcf-pid="xHeSBw8t0K" dmcf-ptype="general">영화는 유튜버 부부에게 입양된 수연과 선율의 상황을, 또 이들에게 결코 쉽게 허락되지 않는 구원을 비춘다. 우리가 평범하다 여기는 안전한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이들의 상황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 것임을 알린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과연 수연과 선율 같은 이가 얼마나 많은가를 상기하도록 한다. 평범은 결코 당연치 않다. 돌봄은 마땅히 더 확장돼야 한다.</p> <p contents-hash="f6d44fe0b5438ef65cbacdf4dc5a2907d6a266ac1db201df3a67e1bf86050ce7" dmcf-pid="ydG6wBloub" dmcf-ptype="general"><strong>의미는 알겠지만, 완성도는 글쎄...</strong></p> <p contents-hash="b0ce602136ad544ef5451b641c99980afcde208184732ceb062fc22b4d98cc19" dmcf-pid="WJHPrbSg7B" dmcf-ptype="general"><수연의 선율>이 가진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좋은 작품이라 말하긴 여러모로 무리가 따른다. 영화적 선택이 대체로 효과적이지 못하고 상당부분 헤매고 있는 탓이다. 우선 '수연'의 '선율'이란 제목부터가 일종의 반전적 효과를 발휘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위함인지 알기 어렵다. </p> <p contents-hash="9729f95fa22fb22be2a64265fde108ef7d40c1eeb73ec1f9bf7b4d8083483fc0" dmcf-pid="YiXQmKvaUq" dmcf-ptype="general">사람의 이름 대신 멜로디(melody)를 뜻하는 단어로 생각하기 쉬운 선율을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활용하게 제목에다 붙임으로써 영화는 실제 선율이 등장할 때 관객에게 약간의 충격을 던진다. 그러나 그 효과는 끝끝내 모호하다. 영화 내내 멜로디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심지어 상징적이라 할지라도 드러나지 않는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나연'이나 '수진'이 아닌 '선율'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또 '수연과 선율'이 아닌 '수연의 선율'이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p> <p contents-hash="5d5d705645df9025059b0c6144a7ee009c319591cd2b35e296e78ce8bc2b0cf5" dmcf-pid="GnZxs9TNFz" dmcf-ptype="general">유튜브를 활용하는 방식도 기록할 만하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탓으로 여러 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유튜브는, 그러나 여전히 주의할 만한 소재다. 영화는 선율이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부부에게 입양되기 위하여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 열세 살 아이가 제 세상 바깥의 사람과 만나는 접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정보가 많은 유튜브를 통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이지만 유튜브라는 매체를 영화 안에 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없어 유튜버와 유튜브에 대한 관객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반영하게 하고 만다. 유튜브는 둘 사이의 징검다리일 뿐, 이들이 만드는 콘텐츠며 그를 대하는 자세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p> <p contents-hash="842d942cfe3709d18f8dc1528c2c7de8edf514149a532a9157b9e155bf0bd036" dmcf-pid="HL5MO2yjF7" dmcf-ptype="general">영화의 시선도 아쉽다. 영화는 주인공인 열세 살 수연의 시선이 아닌, 관찰하는 객관자의 시선에 가까이 서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린애의 시선을 넘어 등장하는 어른들을 총체적으로 비추고 관찰할 수 있는데, 그 효과가 미비하다. 수연을 둘러싼 어른들 가운데 입체적으로 묘사되는 이는 없다 해도 좋다. 처음 교회 오빠가 일종의 위협처럼 등장하는 장면 바로 뒤, 그 아버지인 목사가 더욱 위압적으로 나오는 장면을 붙일 때는 어떠한가. 하나하나 인물의 캐릭터를 형성할 만큼 강렬한 등장과 묘사임에도 영화는 이후 이들을 전혀 비추지 않는다. 일회적 소모로써 구태여 형성한 캐릭터를 상실케 한다. 만약 수연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았다면 훨씬 위협적이었겠으나, 카메라는 관찰자와 수연 사이 모호한 지점에 서서 주변인을 강렬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실제 모습은 얼마 조명하지 않는 것이다.</p> <p contents-hash="1e922214b72532418fa02252321d33a0c05d53e5515dd072ae9bb07615368090" dmcf-pid="Xo1RIVWApu" dmcf-ptype="general">유튜버인 양부모 또한 마찬가지, 그 개성이 뚜렷한 이들이 아이들을 입양하고 다시 방치하기까지에 깔린 사유를 영화는 충실히 살피지 않는다. 수연에게 정보를 주는 사회복지사 등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로 일관한다. 정보를 이처럼 단면적으로 제공하려면 차라리 영화를 철저히 고립된 아동의 시선에서 더욱 가까이 다가가 연출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상황 가운데, 그것도 아동의 입장으로 겪어내야 하는 수연의 제한적 시선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객관자의 입장에서라면 주변 캐릭터를 그저 강렬하게만 묘사하는 것보다 보다 현실적이며 있음직한 개인으로 보여주는 편이 이해를 깊게 했을 테다. 영화가 둘 중 어느 한 쪽을 확실히 택하지 못한 탓으로, <수연의 선율>은 단면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다.</p> <p contents-hash="d792ef71a11b8c6c52a809df9dffab76517d2ce33d3c89b38ae0cb4135db15e6" dmcf-pid="ZgteCfYc3U"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약사 출신' 주현미, 무대 전 특별 식단 공개…이연복도 감탄 ('알토란') 08-11 다음 류수영, 캐나다 대표 모닝쇼 출연…한식 매력 전파 08-1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