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김울프의 'K-지오그래피' 이야기…서핑, 파도와 인간의 대화-①

작성일 08-05

<div style="margin:10px 0;padding:10px;background:#f7f7f7;font-size:0.9em;">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div>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8/05/AKR20250805151000371_01_i_P4_20250805185915550.jpg" alt="" />서퍼 카노아 사진 제공 : Mel vin 서핑은 특별하다. 두 다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달리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핑은 일상과 동떨어진 몸짓과 태도를 요구한다. 바다와 파도 앞에 서면 우리의 익숙한 감각, 도시에서 길이 든 신체적, 심리적 자동화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자세와 미세한 균형, 전혀 써 본 적 없는 근육, 그리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견디는 인내가 필수적이다. 파도는 전혀 친절하지 않다. 밀려오는 순간마다 전혀 다른 표정과 속도로 다가온다. 그 난해한 변수들 속에서, 서퍼는 '파도를 읽는' 능력을 조금씩 획득한다. 하지만 그조차 일순간이며, 익힌 요령도 파도가 바뀌거나 해변의 형태 혹은 계절의 수온이 달라지면 다시 원점에 선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파도는 어디에나 있지 않고, 연습의 기회는 제한적이며, 매번 바다는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잠깐의 미끄러짐 한 번을 위해 서퍼들은 자신의 시간을, 노력을, 심지어 평생의 열정까지도 아낌없이 교환한다. 어쩌면 그 어렵고 더딘 과정이 있었기에, 서핑은 소수의 인내와 열정의 경험으로 남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파도의 과학: 너울과 브레이크 모든 파도는, 아주 먼 바다 위 대기와 바다의 마찰에서 시작된다. 바람이 수면을 스치며 생기는 미세한 마찰력은 부채꼴로 퍼지면서 너울(swell)이라는 거대한 수평 파동을 만든다. 에너지를 품은 너울이 해안 가까이 이르면, 수심이 낮아지는 지형을 만나 수평의 운동이 일거에 수직으로 변한다. 그렇게 수면 위에 일어선 벽, '파도'가 형성된다. 물리학적으로 파도의 주기(period)가 길수록 그 힘과 질이 좋아진다. 넓고 깊은 바다에서 올라온 파동이 긴 시간 에너지를 보존해 올수록, 해변에 도달했을 때의 파도는 크고 단단하다. 좋은 파도가 생기는 지점, 즉 '포인트'는 해변의 형태와 수심, 해저지형이 모두 맞물려 정해진다. 깔때기 모양의 해안선, 갑자기 깊어지거나 얕아지는 바닥, 강이 바다와 만나는 '강 마우스', 인공구조물인 방파제 등은 각기 다른 방향과 세기의 파동을 모은다. 그 안에서 가장 강력한 흐름과 맞물려 파도가 부서지는 순간, 서핑의 무대가 열린다. 그 공간은 끊임없이 변주하며, 같은 파도는 단 한 번도 오지 않는다. 브레이크는 다시 바닥의 물질과 해안의 형태에 의해 분류된다. '포인트 브레이크'는 곶처럼 돌출된 바위 지형에서 일정하게 부서져, 예측할 수 있고 안정적인 서핑 공간을 만든다. 제주 중문 해수욕장 '듀크' 포인트가 대표적이다. '리프 브레이크'의 경우, 해저가 산호나 암반이라 파도의 방향과 질이 일정하고, 에너지 손실이 적으며, 상대적으로 강하고 빠른 파도가 지속해 발생한다. 반면, 대다수의 초보 서퍼들이 경험을 시작하는 곳은 모래사장 위에서 파도가 들쑥날쑥하게 부서지는 '비치 브레이크'다. 이곳은 예측이 어렵지만, 비교적 안전하며 동시에 많은 인원이 파도를 나눠탈 수 있어 서핑의 시작을 열기에 알맞다. 파도 앞에서의 자세, '라인업'과 '드랍인' 서핑은 먼저 파도의 힘을 거슬러 '라인업'까지 나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바닷가의 얕은 부분에서 무수히 밀려오는 잔파도를 맞으며, 팔로 물을 젓는 '패들링'을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짧은 보드는 덕다이브(팔로 보드를 가라앉혀 몸을 파도 아래로 통과시키는 동작)를, 롱보드는 터틀롤(보드를 뒤집어 몸이 파도 아래로 피하는 동작)을 사용한다. 이 간단한 동작마저 물려오는 파도에 맞서며, 다른 서퍼들과 엉켜가며, 여러 번 실패와 되풀이를 거친 끝에 바다의 한가운데, 파도가 일어서기 직전의 공간에 겨우 도달하게 된다. 바로 그 자리가 '라인업', 서핑이 '시작될' 수 있는 곳이다. 라인업에서는 멀리 지나가는 너울을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어디에서 가장 힘찬 파도가 일어설지, 파도와 파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해야 한다. 너무 멀면 파도가 생기지 않고, 너무 가까우면 이미 부서진 물살만 남는다. 라인업은 끊임없는 관찰과, 기다림, 그리고 순간의 직감이 필요하다. 평온하게 물 위에 앉아 있지만, 그 마음속엔 긴장과 기대가 교차한다. <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5/08/05/AKR20250805151000371_02_i_P4_20250805185915569.jpg" alt="" />서퍼 카노아 사진 제공 : Mel vin 마침내, 파도가 높게 세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 일렁임 앞에 놓이면, 곧 서핑의 핵심인 '드랍인' 동작이 시작된다. 파도가 아직 부서지기 전, 가파른 경사의 파도면 위에서 강렬한 패들링으로 보드에 관성을 저장한다.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찰나다. 힘이 부족하면 파도에 놓이고, 타이밍이 어긋나면 파도가 부서져 타기를 놓친다. 패들링과 속도의 균형, 그리고 모든 관성은 파도의 진행 방향과 일치해야 한다. 속도가 충분히 붙었다면, 무게중심을 낮게 잡고, 중력에 따라 보드는 파도면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이때 서프보드는 아직 불완전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파도의 기울기와 중력, 서퍼의 자세가 완벽히 맞물리면, 비로소 서프보드는 파도 위에 미끄러지는, 그 유명한 '라이딩'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이 순간부터 서핑의 모든 테크닉, 그리고 인간과 파도, 자연과 신체가 벌이는 고도의 협업이 시작된다. 파도의 옆면을 타다: 서핑의 본질 서프보드는 길이와 형태, 재질에 따라 전혀 다른 성능을 발휘한다. 초보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롱보드는 패들링에 유리하여 파도를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실전의 움직임에서는 무거움과 느린 반응이 한계를 만든다. 숏보드는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패들링이 어렵고, 더 높은 숙련도가 필요하다. 결국 파도와 서퍼, 그리고 보드의 '궁합'은 언제나 새롭게 조율돼야 한다. 본격적인 서핑은 '파도의 면을 따라 옆으로 이동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파도를 타고 단순히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파도의 옆면을 타고, 방향을 바꾸며, 다시 속도를 얻고, 반복적으로 추진력을 올리는 과정이 바로 서핑의 묘미다. 이 움직임의 중심에는 물리학이 자리한다. 보드가 파도의 경사면과 만날 때 발생하는 미세한 리프트(양력), 보드의 레일이 파도의 물살을 붙잡는 그립, 물의 흐름을 바꾸면서 생기는 추진력(Thrust) 등, 모든 미세한 힘이 탑승자의 신체 감각과 맞물려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lt;정리 : 이세영 기자&gt;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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