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이 된 프로레슬링의 아이콘 작성일 07-26 10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WWE] 24일 심장마비로 71세의나이에 세상 떠난 헐크 호건</strong>지난 1980년대 말 케이블과 종편, OTT는커녕 지상파 방송국도 KBS와 MBC, EBS 밖에 없던 시절, 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들은 주한 미군들을 위한 채널 AFKN을 열심히 시청했다. 당시 AFKN을 통해 미 프로레슬링 WWF(현 WWE)를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혈기 왕성한 남자 아이들에게 미국의 근육질 레슬러들이 거구의 몸을 던지며 경기를 펼치는 WWF는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였다.<br><br>1980년대 말 초등학교를 다닌 나 역시 WWF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매주 토요일 학교가 끝나면 12시30분~1시 사이에 방송되던 AFKN의 WWF 방송을 보기 위해 집으로 열심히 달려갔고 신문 TV편성표에서 새벽 시간에 'WWF'라는 문구를 발견하면 부모님에게 혼이 날 걸 각오하고 밤을 새기도 했다(그러다 편성이 바뀌고 WWF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이 방송됐을 때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br><br>WWF를 좋아했던 또래 친구들이 그렇듯 나 역시 가장 좋아했던 레슬러는 단연 헐크 호건이었다. 일찌감치 탈모가 찾아온 듯 머리숱은 다소 빈약했지만 호건은 화려한 쇼맨십과 강력한 파워를 앞세워 1990년대 초반까지 WWF 최고의 선역 레슬러로 활약했다. 그렇게 수 많은 명승부와 명장면을 만들며 국내외 프로 레슬링 팬들을 열광 시켰던 호건이 24일 향년 7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br><br><strong>WWF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리얼 아메리칸'</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7/26/0002482382_001_20250726105507625.jpg" alt="" /></span></td></tr><tr><td><b>▲ </b> 헐크 호건이 2005년 4월 3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레슬매니아21에서 관중을 열광시키고 있다.</td></tr><tr><td>ⓒ AP/연합뉴스</td></tr></tbody></table><br>본명이 테리 진 볼리아인 헐크 호건은 1953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나 1979년 WWF 데뷔전을 치렀지만 1년 간 짧게 활약한 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높았던 일본에서 활약했다. 일본의 전설적인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를 꺾고 일본 단체에서 챔피언에 오른 호건은 1983년 빈스 맥맨 회장에게 발탁되며 WWF에 복귀했다. 당시 호건은 미국의 영웅이란 의미의 '리얼 아메리칸'이라는 컨셉으로 활동했다.<br><br>당시 WWF는 세계 각국의 거인들이 등장하면 미국의 수호자가 물리친다는 국수적인 스토리 라인을 전개했는데 강력한 파워와 관중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겸비한 호건은 이 역할에 딱 어울리는 레슬러였다. 그렇게 호건은 WWF의 최고 스타이자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WWE가 주최하는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링 이벤트 '레슬매니아' 역시 레슬링과 호건의 팬덤 '헐크매니아'를 합성한 것이다.<br><br>1985년부터 시작된 '레슬매니아'는 그야말로 호건을 위한 무대였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첫 대회부터 메인이벤트에 출전한 호건은 1987년 9만3173명의 관중이 운집한 레슬매니아3에서 218cm236kg의 거인 안드레 더 자이언트에게 바디슬램을 성공시키며 팬들을 열광 시켰다. 1980년대 후반에는 미스 엘리자베스를 사이에 두고 태그팀 파트너였던 '마초맨' 랜디 새비지와 1년 넘게 대립했다.<br><br>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초미의 관심이 집중됐던 최고의 빅매치는 바로 얼티밋 워리어와의 레슬매니아6 메인이벤트였다. WWF를 대표하는 무적 기믹 선역 레슬러들의 맞대결에 팬들의 기대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졌다. 물론 경기는 경기 후 영화 촬영을 위해 자리를 비워야 했던 호건의 다소 허무한 패배로 끝났지만 최고의 파워 레슬러들끼리 맞붙은 레슬매니아6는 레슬링 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br><br>사실 호건은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미스터 퍼펙트나 브렛 하트 등에 비하면 기술이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특히 상대의 필살기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튕겨내고 거짓말처럼 되살아나는 '헐크 업'은 국내에서 '프로레슬링 가짜 논란'이 나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화려한 등장부터 과할 정도로 긴 승리 세리머니까지 관중들을 끊임없이 열광 시키는 호건의 카리스마는 따라올 이가 없다.<br><br><strong>악역 전환 후 WWF로 금의환향</strong><br><br>1990년대 초까지 '무적의 선역'으로 군림하던 호건은 프로레슬링의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비판과 함께 세대 교체의 바람에 밀려났고 1994년 라이벌 단체 WCW로 이적했다. 그리고 호건은 WCW 부사장 에릭 비숍의 설득에 악역으로 변신하면서 링네임을 '헐리우드 호건'으로 변경했다. 악역으로 변신한 호건은 케빈 내시, 스캇 홀과 함께 전설적인 악역 스테이블 'nWo'를 결성하며 WCW의 인기를 주도했다.<br><br>미국의 영웅이자 아이들의 우승이었던 호건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깡패 집단의 수장으로 타락하자 프로레슬링 팬들은 충격에 빠짐과 동시에 WCW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WCW는 한 때 WWE를 위협하는 단체로 떠올랐지만 무리한 각본과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더 락을 앞세운 WWE의 반등으로 주춤했고 호건은 2000년 '배쉬 앳 더 비치'를 끝으로 WCW를 떠나 2002년 WWF로 컴백했다.<br><br>호건은 WWF 재입성 후에도 nWo를 재결성해 계속 '헐리우드 호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2002년 레슬매니아18에서 더 락과 '아이콘 대 아이콘' 매치를 벌였다. 당시 WWF 슈퍼스타 더 락보다 더 많은 환호를 받은 호건은 경기가 끝난 후 관중들의 호응에 승리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자연스럽게 선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달 후 '백래시'에서 트리플H를 꺾고 커리어 마지막 WWE 싱글 챔피언에 등극했다.<br><br>하지만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던 호건의 체력은 매주 이어지는 WWE의 강행군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풀타임 레슬러로 활약하지 못한 호건은 가끔 이벤트로 경기에 출전해 2005년 '섬머슬램'에서 숀 마이클스, 2006년 '섬머슬램'에서 랜디 오턴에게 승리를 거둔 후 다시 WWE를 떠났다. 호건은 2010년 2위 단체 TNA로 이적했지만 경기는 거의 하지 않고 쇼를 진행하는 제너럴 매니저 역할을 수행했다.<br><br>2014년 세 번째로 WWE에 복귀한 호건은 '레슬매니아 30'의 호스트로 선정돼 오프닝을 진행했다.호건은 2015년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서 논란을 일으켰지만 WWE는 상품성이 있는 호건을 꾸준히 쇼에 출연 시켰다. 하지만 연이은 구설로 호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호건은 올해 1월에 등장했던 WWE RAW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이는 호건의 마지막 WWE 출연이 됐다.<br><br><strong>전·현직 레슬러들의 추모 행렬</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7/26/0002482382_002_20250726105507713.jpg" alt="" /></span></td></tr><tr><td><b>▲ </b> 2016년 3월 헐크 호건의 모습.</td></tr><tr><td>ⓒ AP/연합뉴스</td></tr></tbody></table><br>호건은 에릭 비숍, 이지 마르티네스와 함께 지난 4월 '리얼 아메리칸 프리스타일 레슬링'이라는 단체를 창설하며 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호건은 24일 플로리다에 위치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물론 혹사와 약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프로레슬러의 직업적 특성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선수들도 많지만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던 '아이콘' 호건의 사망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br><br>평생 호건과 애증의 관계였던 빈스 맥맨 전 WWE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호건은 우리에게 '훈련하고 비타민 잘 챙기고 기도하렴'이란 말을 남겼다. 오늘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이밖에 릭 플레어와 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 스팅, 커트 앵글,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숀 마이클스 등 현역 시절 호건과 대립했던 많은 레슬러들이 SNS를 통해 호건을 애도하는 글을 남겼다.<br><br>사실 호건은 선수 생활 내내 WWE 외에도 많은 단체를 오갔고 사생활이나 언행 역시 모범적인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호건이 프로레슬링 역사에 남긴 업적들은 그 어떤 선수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초등학생 시절 호건의 경기를 보면서 성장했고 세월이 흘러 어느덧 40대 후반 아재가 된 한국의 프로레슬링 팬도 오늘 만큼은 호건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br> 관련자료 이전 유도 김하윤·김종훈,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동반 금메달 07-26 다음 234명 성착취한 ‘목사’ 정체,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 직장인이었다(용형4) 07-26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