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여전히 직접 읽고 쓰는 이유 작성일 07-21 3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PddFAqiBw6">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0d19026a9bdceb9f5ed61e4193c2ceb7ef8688d3942affab73e1b209c5db020e" dmcf-pid="QJJ3cBnbD8"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7/21/hani/20250721092650712ihwc.jpg" data-org-width="754" dmcf-mid="8ZjBO8c6m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21/hani/20250721092650712ihwc.jpg" width="658"></p> </figure> <p contents-hash="157f91fbd5785d0600ffc6008febf8129e14b258f8d932fd5ecd2d287a139d36" dmcf-pid="xLLUD9g2m4" dmcf-ptype="general"> “사실 전 예술의 전 과정이 재미있어요. 스케치에서 채색, 명암 표현까지… 이걸 다 인공지능(AI)에게 넘겨버리면 재미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일본의 명작 만화 ‘마스터 키튼’과 ‘플루토(PLUTO)’의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작업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가능성에 대해 한 말이다.<br><br> 생성형 인공지능이 리터러시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긴 글을 짜임새있게 요약하고, 어려운 텍스트를 쉽게 설명한다. 문헌 조사 결과를 제시하고, 여러 문서를 종합하여 글을 써낸다. 사실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글쓰기라면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은 ‘전통적 글쓰기의 종언’을 말한다. 한 단어 한 단어 글을 쓸 일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br><br>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소설을 축약본으로 읽으려 하는 이는 드물다. 저자의 단어 하나하나에 공명하는 마음들이 있다. 자신보다 잘쓰는 작가들이 넘쳐나는 걸 알지만 온라인에 단상과 북리뷰를 올린다.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글을 쓴다. 왜 이들은 그토록 놀라운 기술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고 쓰려 할까? <br><br> 인간과 인공지능이 언어를 배우는 방식의 근본적 차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 보자. 식사 중인 가족.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계란말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지지.” 아빠가 말한다. 아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손을 뻗는다. “지지! 지지!” 이번에는 엄마가 외친다. 다급한 제지도 무소용. 아이는 계란말이를 집어든다. 끼익. 아빠가 일어서고 의자가 바닥에 긁힌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심상찮은 표정을 살핀다. 급기야 아이의 계란말이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아빠.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br><br> 일련의 사건 속에서 아이는 ‘지지’라는 단어만 배우지 않는다. ‘지지’라는 말을 둘러싼 여러 경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떨어진 계란말이를 향한 애타는 눈빛, 양육자의 근엄한 표정, 멀어지는 계란말이를 바라보는 무력감, 터져나오는 눈물 등이 모두 엮여 ‘지지’로 대표되는 경험을 구성한다. ‘지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단어도 구체적인 경험의 축적 없이 습득되지 않는다. <br><br>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챗지피티나 제미나이와 같은 인공지능 챗봇은 이렇게 배우지 않는다. 인터넷에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정제하고, 수리통계학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언어를 학습한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삶을 통해 말을 배우고,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말을 배운다. <br><br> 인간은 읽으며 기억을 소환하고, 추론하고, 궁리하고, 공감한다. “기후재난이 무섭다”라는 문장을 쓰는 나는 두려움과 무력감,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한 단어 한 단어가 감정과 상상, 행위를 추동한다. 슬픈 단어는 정말로 슬프고, 아픈 문장은 정말로 아프다. 인간은 언어를 경험하지만 기계는 언어를 계산한다. 그들의 계산은 우리의 경험을 대체하지 못한다.<br><br> 우라사와 나오키의 말에 기대어 나 또한 묻고 싶다. ‘읽기쓰기가 얼마나 재미없으면 그 모든 걸 인공지능에게 넘기려는 걸까?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어쩌면 편리함이나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서, 가치를 못 느껴서 인공지능에게 떠넘기려 하는 건 아닐까?’ 인공지능의 언어처리 역량에 경탄하기 전에 재미도 기쁨도 상실한 읽기 쓰기의 풍경을 똑똑히 바라보자. 그게 먼저다. <br><br><strong>※‘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연구하고 시민과 소통하는 데 앞장서 온 응용언어학자인 저자가 인공지능, 사회, 리터러시에 대한 통찰과 성찰을 담은 글을 4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strong><br><br> 김성우 응용언어학자<br><br> </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c6a42db8ab0b95700a757b829bbdaf6fa7d5fcea98cef8c33ae48154404868c1" dmcf-pid="y11AqsFOEf"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7/21/hani/20250721092651985cqoh.jpg" data-org-width="970" dmcf-mid="6FzO8yBWO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21/hani/20250721092651985cqoh.jpg" width="658"></p> </figure>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p> 관련자료 이전 경력자 vs 신입, ‘AI발 해고’ 누구를 더 위협할까 07-21 다음 박서준, 절친 손흥민 앞에서 시축… 쿠팡플레이 시리즈 화제 07-21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