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다 아는데 업적은 글쎄... 안창호 선생 오페라 '도산'의 명과 암 작성일 07-15 5 목록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김성호의 무대만세 9] 코리아아르츠그룹 오페라 도산></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F5VVJHmeDC"> <p contents-hash="76a73543cf8505c5b322153712d5a0845d355ba4db2d3476c127e64dd5b9cedf" dmcf-pid="31ffiXsdEI" dmcf-ptype="general">[김성호 평론가]</p> <p contents-hash="8c4e4168eed9bccae780678e7ac9e7b42a0bae06b93261e21cca3cec2f3a6d06" dmcf-pid="0t44nZOJsO" dmcf-ptype="general">도산 안창호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한국인 가운데서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인물이지만, 그가 무슨 일을 했느냐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이가 채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안창호와 함께 독립운동의 거두라 부를 만한 이들, 이를테면 백범 김구가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주도한 배후라는 사실 등에 비하여 안창호의 활동은 얼마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p> <p contents-hash="50da1c0f701f3ed1a8329378b78baadc87fe4385253b1069792dea723d2422bc" dmcf-pid="pF88L5Iiss" dmcf-ptype="general">공산주의나 무정부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도산 안창호의 경우엔 독립 이후 한국과 이념적 측면에서도 반하지 않기에 어딘지 아쉬운 대목이 적잖다. 어째서 한국 교육은 안창호라는 인물을 충실히 기억하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과 활약을 재평가하고 되새기는 작업이 충실히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p> <p contents-hash="06f41de9adcb95aff1bfb47c7c24549ba834e008e423e1cf8ab168d96273576a" dmcf-pid="U0PPgthLIm" dmcf-ptype="general">11일부터 13일까지, 이달 사흘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도산>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삶을 조명하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6월 6일부터 7월 13일까지 한 달 여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마지막 주자로, 개막작 <카르멘>부터 <라 보엠> <세비야의 이발사> <마일즈와 삼총사> <돈 조반니> <빨간모자와 늑대>에 이르는 일련의 여정을 폐막작으로 갈무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00석에 이르는 오페라극장 객석을 사흘 연속 가득 채운 이 작품은 2018년 미국에서 뮤지컬로 기획돼 공연되던 것을 올해 들어 오페라로 새로 탈바꿈시켜 관심을 모았다.</p> <div contents-hash="983a8184c7d2df9518baa4a3cb955b3e99ff16e4eec866d04dbae30b24a23f1e" dmcf-pid="upQQaFloEr" dmcf-ptype="general"> 출연배우가 대사를 노래로 소화하는 음악극이란 점에선 보다 대중적인 뮤지컬과 흡사하지만, 중심을 음악에 둔다는 점에서 극이 중심인 뮤지컬과 장르적 구분을 두는 게 보통이다. 특히 정통 오페라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을 무대 앞에 배치하게 마련인데, 클래식음악을 기반으로 한 대부분의 오페라에서 악단은 실내 관현악단, 즉 오케스트라로 꾸려진다. 보다 자유로운 형식의 오페라인 오페레타를 표방한 <도산>도 마찬가지,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았다. 총감독은 성악가 하만택,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은 김은혜, 극 연출은 이효석, 대본은 추정화, 안무는 이은선이 책임졌다. 극과 음악을 양 축으로, 무용과 연기, 무대연출 등의 제 요소까지 포함하는 오페라이니 만큼 이들 각각이 중책을 맡았다 해도 좋겠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3ba635ad50dc486dd9b3f248ea7f83a9d8855779e45995fd2f1e1493ed2c2f8b" dmcf-pid="7UxxN3Sgww"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7/15/ohmynews/20250715103602262usph.jpg" data-org-width="400" dmcf-mid="WYCWpNP3E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15/ohmynews/20250715103602262usph.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도산</strong> 포스터</td> </tr> <tr> <td align="left">ⓒ 코리아아르츠그룹</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a6db406750d787bbf9ef5f256e809c164a9360b17bbe63cbef248d3d54c7454a" dmcf-pid="zuMMj0vaED" dmcf-ptype="general"> <strong>안창호 삶 조명한 오페라 '도산'</strong> </div> <p contents-hash="54afc1f82d670f906744e92e062bc266eb9e7be1a1d6eecb5f0f3b32e468a856" dmcf-pid="q7RRApTNDE" dmcf-ptype="general">작품은 도산 안창호의 일대기를 그대로 밟는다. 미국 유학을 떠난 청년 안창호가 어떻게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지도자로 성장하게 되는지를 한 편의 위인전을 보듯 연대식으로 서술한다. 도산이란 호를 얻는 유명한 일화, 20여 일에 걸친 태평양 항해 끝에 우뚝 솟은 하와이의 산을 보고서 그와 같은 인물이 되리라고 섬 도(島) 자에 산 산(山)자를 합쳐 도산이라 정한 것도 개중 한 장을 이룬다.</p> <p contents-hash="d0d3ea2dc68c6215a7cfbc30baa8c134e31e8f22ebc5c0373a48cff3f826b74c" dmcf-pid="BzeecUyjmk" dmcf-ptype="general">인삼 판매를 두고 싸우는 조선인 인삼장수들의 이권다툼을 중재하고 한인들을 규합한 일도 주요하게 등장한다. 나아가 미국 내에서 한인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운동에 매진하고, 그에 그치지 않고 공립협회를 창설해 향후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일도 인상적으로 그려진다.</p> <p contents-hash="910f4997f1b4fc713fad08ba0a2036f0cac5dd043a7bc68ffc8e019a09ad0209" dmcf-pid="bqddkuWAsc" dmcf-ptype="general">안창호의 가장 주요한 업적은 나라 잃은 한민족을 묶어내고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일 테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 정통을 계승했다 표방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창기 핵심 요인으로, 출신과 주 활동지역, 이해관계 등에 따라 갈라진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는 데 주력했다.</p> <p contents-hash="5ff94e7814e539480fc26a1da0f1ed167fd8922ea3a04d9bd1ad6020e981518b" dmcf-pid="K9LLrBXDrA" dmcf-ptype="general">특히 임시정부 행정부 수반인 초대 국무총리로 추대돼 놓고도 미국에 체류하며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이승만과 러시아 연해주를 주무대로 활동한 독립운동 거두였던 이동휘의 극렬한 갈등은 임시정부 초기 운영을 어렵게 한 중차대한 문제였다. <도산>은 안창호가 이승만과 이동휘 사이를 오가며 임시정부를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p> <div contents-hash="86666a9fb6a737436c05720c6374e2de2ab3c0dca292acd8a4b4d5780bd822cc" dmcf-pid="92oombZwEj" dmcf-ptype="general"> 이승만은 조선의 실력이 부족하니 외교로써 독립을 쟁취하자는 주장을, 이동휘는 외세에 의지하지 않고서 무장투쟁으로 자주독립을 일궈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두 배우가 노랫말로써 각자의 사상과 지향의 핵심을 주창하는 가운데, 안창호가 이들 사이를 어떻게든 메꾸어내려 수고하는 과정이 <도산>의 중심 줄기를 이룬다 해도 좋겠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304f0624e932b0efe25f7173492ff5c0bd30add4a355a5725d110ca4fadb03b7" dmcf-pid="2VggsK5rDN"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7/15/ohmynews/20250715103603510lapr.jpg" data-org-width="768" dmcf-mid="G2H32sLKI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15/ohmynews/20250715103603510lapr.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도산</strong> 공연 장면</td> </tr> <tr> <td align="left">ⓒ 코리아아르츠그룹</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fe1c1da6e99e2c8386f97a7b06dbd4f8441a4be187e51dd52e16348e540158f0" dmcf-pid="VfaaO91mwa" dmcf-ptype="general"> <strong>정치가이자 사상가 도산의 모습 없어</strong> </div> <p contents-hash="c6a6745ab1124d29f12fa880f0737902c73892ba201fd5fa87069f306766f67e" dmcf-pid="f4NNI2tsrg" dmcf-ptype="general">아쉬운 건 오페라가 담고 있는 이 같은 주장이 사상적 차이일 뿐, 이승만과 이동휘의 두 파벌 간 첨예한 갈등의 진상을 다루지 못한단 점에 있다. 당시 이승만은 국무총리임에도 대통령(President)이란 직함으로 임시정부의 동의 없이 미국에서 활동했고, 미주에서 마련한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로 보내오지도 않았으며, 한반도가 일제 대신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받겠다는 청원을 미국에 보내는 등 임시정부의 이익에 반하는 독단적인 행동을 이어가던 때였다. 마찬가지로 이동휘 역시 공산주의에 심취해 임시정부를 특정한 사상집단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들의 대립을 그저 서로의 기본적 입장을 노랫말로 정리한 정도로 풀어내는 <도산>의 표현이 충실하다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p> <p contents-hash="9d3c8270ae27146b008abbc4d6edbd3fcb6051348ed1f7f691a30d8b9b740184" dmcf-pid="48jjCVFOro" dmcf-ptype="general">안창호는 그저 분열하는 두 세력을 통합하려 애쓴 인물임을 넘어, 이승만과 이동휘 외에도 수많은 분파로 갈라진 한반도 외 조선인 사회의 주요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미주에 확고한 기반을 가졌단 점에서 자금동원력에 있어 수위를 다투는 입장이기도 했다. 안창호는 단순히 여러 세력 간 대립을 봉합하려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임시정부 개조파로 상당한 수준의 개혁을 감행해야 한다는 적극적 주장을 개진했으며, 주장이 관철되지 않은 뒤엔 내각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활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이승만, 김구 등과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던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p> <p contents-hash="a0625f9e3383779ed993748fbf6220cae3010be54d5c3a1e3038cba4ff2fdd70" dmcf-pid="86AAhf3IIL" dmcf-ptype="general">그럼에도 <도산>은 안창호가 독자적인 기반을 가진 임시정부 내 유력 정치가로, 나름의 노선을 갖고 정치활동을 한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승만과 이동휘, 김구 정도를 임시정부 내 유력 인사로 한정하고, 특히 이승만과 이동휘의 대립 가운데 안창호가 중재를 했다는 정도로 그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다.</p> <div contents-hash="bb074e072b1ea903dc216ecdc1da845c6bf6927f231995c34c7d974e09dfb5d0" dmcf-pid="6Pccl40Cwn" dmcf-ptype="general"> 김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정치가의 입장보다 윤봉길의 의거를 계획한 배후로써의 모습이 작품 가운데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이것이 안창호의 일대기와는 전혀 얽혀들지 못해 당혹스럽다. 윤봉길의 홍커우 공원 의거는 임시정부의 결정이 아닌, 김구가 창설한 한인애국단의 독자적 작전이다. 안창호의 일대기 가운데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오페라 <도산>이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안창호의 삶에 집중하기보다 한국 근현대사를 요약 정리하길 선택했다고 이해할 밖에 없다. </div> <table align="center"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contents-hash="e4a767c28959c3501f828a8d39bdd99a2a9fbe443fa2025e8a4f30747a0b40ce" dmcf-pid="PC332sLKOi" dmcf-ptype="general"> <tbody> <tr> <td>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p class="link_figure"><img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7/15/ohmynews/20250715103604793gnhd.jpg" data-org-width="768" dmcf-mid="tGmmYMqyrh"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15/ohmynews/20250715103604793gnhd.jpg" width="658"></p> </figure> </td> </tr> <tr> <td align="left"> <strong>▲ 도산</strong> 공연 장면</td> </tr> <tr> <td align="left">ⓒ 코리아아르츠그룹</td> </tr> </tbody> </table> <div contents-hash="cd8670e49ee7aacba538019d611e298b8361e1710d5df9d4ca8a8f2bbc6a9ea4" dmcf-pid="Qh00VOo9sJ" dmcf-ptype="general"> <strong>80년째 똑같은 방식의 추앙, 이제는 이해할 때</strong> </div> <p contents-hash="7af698016a3efa67e602eeea60467bd37ea922b66ea0d3ac91781e6da32ea29b" dmcf-pid="xlppfIg2Dd" dmcf-ptype="general">요컨대 <도산>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하나는 '영웅적 독립운동가로만 기억되던 안창호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노래하고자 한다'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고 전체 독립운동사에 따르는 부수적 인물로 그를 묘사한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안창호의 사상과 생애를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어린이용 위인전에 나올 법한 수준으로만 사건과 사상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극보다도 음악에 중심을 두는 오페라의 특징을 고려할 때 차라리 원안처럼 뮤지컬로, 그것도 연극적 요소를 보다 확대한 뮤지컬로 들여왔다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p> <p contents-hash="9bb79992e8b9430671005a5cf13104784ce3df7caf3e85be7bbfbdea48d0b67c" dmcf-pid="y8jjCVFOIe" dmcf-ptype="general">또한 한 가지 아쉬움은 음악적 요소가 큰 <도산>이 정작 음악이 부실하다는 점일 테다. 전곡을 새로 작곡해 창작극으로 만든 노력은 칭찬할 만하지만, 160분에 이르는 공연시간 가운데 오늘날 듣는 귀가 한껏 높아진 관객에게 호소할 만큼 매력적인 곡을 하나도 갖지 못했단 점이 대표적이다. 오페라가 끝나고도 대표곡 하나 회자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창작극이 갖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이자 아쉬운 성적표로 기록될 밖에 없다. 작품을 보는 내내 다른 오페라에 비해서도 많은 이들이 집중치 못하고, 1부 뒤 자리를 뜨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단 게 특별히 아쉬울 따름이다.</p> <p contents-hash="5b6ef773b5807195f27fa54737c3b7f8ef0f216e17518f9bb2fea35bcea80ca9" dmcf-pid="W6AAhf3IOR" dmcf-ptype="general">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그것도 나름대로 전통이 있는 '제16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일환임에도 매표과정에서의 소란과 해프닝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3일 찾은 극장 매표소 앞에선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는데, 체계적이지 않은 매표로 10만 원에 해당하는 A석 좌석을 예매하고도 3만 원 상당의 C석 좌석을 받는 관객을 수명씩이나 마주할 수 있었다. 전산 시스템 없이 사람이 직접 표를 내어주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무려 수십 명에 이르는 관객이 제 시간에 극장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광경이 놀랍기까지 했다. 해외 유명 오페라극장들과 달리 예술의전당이 그저 대관만 할 뿐 매표 등 서비스를 공연을 진행하는 외주업체가 노하우 없이 맡아 행하고 고객에 대응하는 것 또한 임시직 아르바이트생에게 하도록 하는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한국 오페라를 경험하러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그저 민망할 밖에 없는 광경이었다.</p> <p contents-hash="494c9a79a806a524337f1808a6dce97bf2cd897ecc68523c5ada141e0ad22e4e" dmcf-pid="YPccl40CIM" dmcf-ptype="general">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산>에는 의미가 없지 않다. 도산 안창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여전히 한국사회는 충실히 조명하지 못하고 있는 때문이다. 안창호 뿐 아니라 이승만과 김구를 비롯하여 이동녕과 이동휘, 김원봉, 최재형, 조소앙, 김규식 등 유력한 당대 독립운동가를 한국의 역사와 대중이 기억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란 사실이 민망하기만 하다. 그들이 갈라지는 결정적 이유가 독립 이후까지 정치적으로 생존하지 못하여 그를 추앙하는 이들이 적은 때문이며, 또 공산주의 등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독립 이후 8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까지 독립운동가를 이처럼 편향적이고 유아적으로 기리는 것은 후손으로서 창피한 일이다.</p> <p contents-hash="94fca460614691465b7a13276308b5ac843bbbdc5af008e060343add2deca3ac" dmcf-pid="GQkkS8phIx" dmcf-ptype="general"><도산>이 비록 안창호의 생을 깊이 있게 조명하지도, 그 사상과 업적을 충실히 평가하지도 못하였으나, 적어도 다시금 그를 문화예술의 전면에 끌어올려 다루었다는 점에서 격려받을 지점이 있다고 여긴다. 오늘의 부족함이 내일의 나아짐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도산>에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평하려 한다.</p> <p contents-hash="8fed95358e7b8e916dbfbcb3c9f75e87fed2031d5cc8fc761efb1f779a685785" dmcf-pid="HxEEv6UlIQ" dmcf-ptype="general"><strong>덧붙이는 글 | </strong>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무대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관련자료 이전 '55세' 하희라, 데뷔 44년만 '파격' 금발 변신...♥최수종 또 반했다 07-15 다음 싸이, 대전 '흠뻑쇼' 후 울었다 "2025년 처음으로 눈물" 07-15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