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응원석의 배꼽 잡는 대화... "여기가 꼭대기인가유?" 작성일 07-14 32 목록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팬심으로 말하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원년 팬이 설명하는 '인내와 해학'으로 가득찬 응원문화</strong>화수목금토일, 이들의 평일 저녁과 주말엔 늘 야구가 있습니다. 운 좋으면 직관으로, 아니면 중계를 보며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습니다. 1200만 관중을 향해 달려가는 2025 프로야구 돌풍의 중심에는 이들 '찐팬'이 있습니다. 팬심으로 말하는 '내 팀'의 이야기, 야구를 좋아해서 겪어야 했을 희로애락,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말><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뭐여! 뭐여! 뭐여! 뭐하는겨! 뭐하잔겨!"</span><br><br>상대 팀 투수가 1루에 있는 우리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지는 순간, 한화 응원석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다. KBO 리그에서는 투수의 견제구에 대응하는 응원 문화가 팀마다 다르다. 한화이글스는 충청도 사투리로 "뭐여!"다. 투수가 잇달아 세 차례나 견제구를 날리면서 관중석에서는 흥분이 고조됐다. 이때 옆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던 60대 아재가 나직한 소리로 한마디를 날린다.<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뭐긴 뭐여! 견제여. 몰라서 물어?"</span><br><br>주변에서 폭소가 터져 나온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아재가 한마디 거든다.<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견제여? 난 또 1루수가 포수로 바뀐 줄 알았네"</span><br><br>다들 배꼽을 잡는다. 이렇듯 한화이글스의 응원이란 충청도 특유의 해학에서 시작한다. 지금이야 응원단장의 지휘와 치어리더들의 율동에 맞춰 응원하고, 또 개별 선수들에 대한 응원가가 따로 있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제멋대로였다.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있듯, 친구들끼리 술 마시며 웃고 떠드는 데 더 진심이었다. 물론 그때는 야구장에서 음주가 자유로웠다.<br><br><strong>능청스러운 '부처님'들</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7/14/0002480743_001_20250714065708891.jpg" alt="" /></span></td></tr><tr><td><b>▲ </b> 지난 5월 7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 팬들이 한화 득점에 환호하고 있다.</td></tr><tr><td>ⓒ 연합뉴스</td></tr></tbody></table><br>대전 경기장에서 늘 치열하게 싸운 팀이 해태 타이거즈였다. 대전 인구의 3분의 1이 호남 사람이고, 경기장에는 해태 팬들이 더 많았다.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 팬들도 만만치 않았지만, 응원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다.<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뭐여! 여기가 대전 홈 경기 아녀?"</span><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광주 경기장이 일루 이사왔나벼"</span><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냅둬! 저렇게 소리 지르면 지들 목구녕이 아프지 뭐. 우리 목구녕이 탈나것어?"</span><br><br>1990년대 초 대전 출신 한대화 선수가 해태에서 활약하던 때였다. 대전 경기장에서 한대화 선수가 홈런을 치고 해태가 승리를 거둘 당시 한대화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었다.<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쟤가 대전고 출신 아녀?"</span><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게다가 한밭중핵교 나왔다믄서"</span><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아주 자~알 하는구먼. 고향팀 상대로 홈런 뻥뻥 날리고. 나긴 난 눔여!"</span><br><br>충청도에서는 "자~알한다"는 말은 상대방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을 때, 비꼬는 투로 하는 말이다. 이렇듯 충청도 팬들의 응원에는 분노보다는 해학이 넘쳤다. 흔히 한화이글스 팬을 '보살팬'이라고 한다. 순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한화만의 육성 응원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빗대 만든 신조어다. 팀 성적이 장기간 바닥을 쳐도 무던히 참아내며 열심히 응원하는 팬들이 존경스럽다. 그래서 김응룡 전 감독은 이런 팬들을 보고 "부처님"이라고 말했다.<br><br>연달아 지는 경기에 부아가 안 나는 팬이 어디 있을까만, 무던하게도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데에는 충청도 기질이 발현된 것이리라.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아내는 은근함과 우직함, 그리고 그 화를 비틀어 웃음으로 승화하는 능청스러움.<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7/14/0002480743_002_20250714065708968.jpg" alt="" /></span></td></tr><tr><td><b>▲ </b> 지난해 7월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LG트윈스와의 경기장면</td></tr><tr><td>ⓒ 우희창</td></tr></tbody></table><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아니 이게 뭐여? 지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span><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그러게 세 번째잖여"</span><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지둘려봐. 지들도 사람이믄 도리가 있고 염치가 있는겨. 한 번쯤은 져주지 않겠어?"</span><br><br>한두번이 아니라고 하니까 세 번째라고 받아치는 것도 그렇고, 지고 있는 한화를 욕하기보다는 이기고 있는 팀에다 오히려 도리와 염치를 들이댄다. 이게 바로 이글스 팬들이 분노를 푸는 방법이다.<br><br>그런 이글스 팬들에게도 한 때 경기장의 난동꾼으로 불린 흑역사가 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대전 경기장에서 툭하면 일부 관중들이 술병, 맥주캔, 쓰레기통 등을 운동장으로 던져댔다. 경기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취한 채 험한 욕설을 날리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이러한 난동은 대전 야구장만의 얘기는 아니다. 아무튼 당시 아이를 데리고 야구장 가는 것은 금물이었다. 그때 직접 보고 겪었던 두 장면이다.<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333399;"><strong># 첫 번째 장면</strong></span><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333399;">아마 1988년 해태와의 경기였을 것이고 5월 중간고사 기간이었을 것이다. 시험공부는 안 하고 친구들과 야구를 보러 갔다. 경기는 지고 있었고, 술 한잔 마시면서 얼굴 붉히고 있을 때였다. 관중들의 고함이 들리고 소주병, 맥주병이 그라운드로 날아들었다. 한화(당시 빙그레)의 타격 때 1루에서 세이프 논란이 있었다. 여러 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난입한 상황에서 옆에 있던 친구가 느닷없이 그물을 타고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span><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333399;">그러고는 1루 심판을 2단 옆차기로 날렸다. 의과대 본과 학생이었던 그 친구는 곧장 체포되어 경찰서 유치장으로 직행했다. 다음날이 중간고사였는데,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무조건 유급이었다. 후에 들은 얘기로 지도교수가 경찰서로 찾아와 사정하고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다음날 법원에서 즉결심판을 받아 벌금을 내고 풀려나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단다. 물론 판사의 준엄한 훈계가 뒤따랐다.</span><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333399;">이 친구는 이후 TV 캠페인의 주인공이 되었다. 정확한 캠페인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경기장 질서를 지키자"였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 친구의 2단 옆차기 날리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마다 "TV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친구"라고 했다. 지금은 타계하고 곁에 없는 친구지만 야구를 보다 보면 그때 그 일이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span><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333399;"><strong># 두 번째 장면</strong></span><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333399;">지역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1990년대 초반. 그때도 해태와의 경기였다. 타 신문사 사진기자였던 친구의 얘기다. 프로야구를 취재하는 사진기자들은 대부분 홈 플레이트 뒤쪽에 자리를 잡고 경기 장면을 촬영했다. 파올볼로부터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그물막 뒤에 삼각대를 세워놓고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찍는다.</span><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333399;">그날도 여지없이 관중들이 병을 던지고 소란을 피웠다. 중앙지정석에서 던진 병들이 그물에 맞고 사진기자들이 자리한 쪽으로 떨어졌다. 이때 이 친구가 관중석을 올려다보며 삿대질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한 관중이 먹던 컵라면을 던지는 바람에 라면 국물과 면을 흠뻑 뒤집어썼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이 친구, "너 거기 기다려"라며 바닥에 떨어진 병을 들고 관중석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그자가 거기서 "날 잡아 잡수"하고 기다릴 리 만무했다. 이미 줄행랑치고 보이지 않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이 되고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당시 기자실에서 취재를 하던 나는 그 장면을 목격했고, 그날 저녁 기사 마감 후 그 친구에게 술을 사주며 달래주어야 했다.</span><br><br><strong>'한화'라서 행복합니다</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7/14/0002480743_003_20250714065709021.jpg" alt="" /></span></td></tr><tr><td><b>▲ </b> 새로 신축한 대전 한화이글스볼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한화이글스와 KT위즈와의 지난 6월 5일 경기에서 한화 팬들이 열성적으로 응원하고 있다.</td></tr><tr><td>ⓒ 우희창</td></tr></tbody></table><br>이랬던 경기장의 폭력적인 응원 문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져 갔고 이제는 완전히 건전한 응원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한화이글스의 응원은 KBO 리그에서 유명하다. 8회만 되면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최·강·한·화!" 육성 응원은 경기장 분위기를 완전히 압도한다. 간혹 이 응원에 대거리하는 팀도 있지만 비교 불가다. 호루라기 소리에 이은 "최·강·한·화!" 소리는 "우리는 최강"이라는 주문이자 확신이다. 근데, '최강 한화'와 '무적 엘지'가 붙으면 도대체 누가 이기는겨?<br><br>'행복송'은 한화이글스 대표 응원곡이다. 팀이 지고 있는데도 "나는 행복합니다"를 연발하고 "한화라서 행복합니다"라고 외친다. 연패를 당할 때도 이 노래를 불렀던 한화 팬들은 사리가 나오거나 득도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지금은 대량 득점이 나거나 역전에 성공하는 경우에만 불러서 자주 들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한화라서 행복'하다.<br><br>열정적인 응원은 기록으로도 나타난다. 한화이글스는 4월 13일부터 6월 5일까지 홈 24경기 연속 매진이라는 KBO 리그 신기록을 썼다. 전체 350경기 중 169경기가 매진을 기록했을 정도로, 응원 열기는 한여름 날씨만큼 뜨겁고 한국 프로야구를 녹이고 있다.<br><br>프로야구가 언제부터였나 되돌아보면 까마득하다. 대학 1학년 때인 1982년부터다. 무려 43년 전이다. 당시 충청 연고 팀은 원년 우승팀 OB베어스(현재의 두산베어스)였다. 박철순 투수와 큰 키의 1루수 신경식 선수가 기억난다. 신경식 선수는 공주고 출신으로 1루에서 양다리를 쭉 벌리며 포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학다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충청도에서는 그 옛날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두산베어스는 애증의 팀이다.<br><br>3년 뒤 OB는 연고를 서울로 옮겼고 대신 한화가 충청을 연고로 한 '빙그레 이글스'를 창단한다. 모기업인 한화보다 빙과류 등 소비재를 판매하는 계열사 '빙그레'가 더 유명해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 8년 뒤인 1993년 '한화 이글스'로 이름을 바꿨는데, 사실 나는 '빙그레'라는 이름이 더 정겹고 좋다.<br><br>빙그레는 창단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주름잡았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번번이 가로막혔고 롯데 자이언츠에 목덜미를 잡혀 우승컵을 들지 못했지만 절대 강팀이었다. 탄탄한 타선과 투수력은 무시무시한 팀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br><br>이정훈, 이강돈, 장종훈을 주축으로 한 타선은 한번 불붙으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폭발하기 때문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 불렸다. 화약을 생산하던 모기업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연습생 출신 장종훈은 '홈런왕'의 대명사로 매년 타격왕을 휩쓸고, 2003년 프로통산 첫 1700 안타를 쳤다. KBO 최초의 단일 시즌 40홈런 달성자이자 최초의 3시즌 연속 단독 홈런왕으로 통산 340홈런을 기록한 선수였다.<br><br>투수진은 또 어떤가? 창단 초기 이상군과 한희민이 쌍두마차를 이뤘고, KBO 리그 통산 유일한 200승 투수이며, 역대 최다승, 최다 이닝의 기록을 보유한 송진우도 있다. 그는 노히트노런 기록도 가지고 있다. 정민철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발투수로 명성을 높였고 그 역시 노히트노런의 역사를 썼다. 연습생 출신 한용덕도 국내 야구 경기를 평정한 막강한 투수였다.<br><br>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승컵을 향한 열망은 1999년에 이뤄졌다. IMF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우울했던 그해,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드디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이 맹활약했고 구원투수였던 구대성이 MVP로 선정됐다. 구대성이 등판하면 지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대성불패'란 별명은 명예로운 이름이었다. 로마이어와 데이비스, 두 외국인 타자의 활약도 돋보였다. 2001년 김태균이 신인왕을 차지하고 2006년 괴물 투수 류현진이 입단해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MVP, 골든글러브 수상을 거머쥐는 등 영광은 이어졌다.<br><br><strong>올해는 다르다, "꼭대기에 있으니 어질어질"</strong><br><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47/2025/07/14/0002480743_004_20250714065709065.jpg" alt="" /></span></td></tr><tr><td><b>▲ </b> 지난 5월 7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9회 초 삼성 공격을 막아내고 10-6으로 승리를 확정 지은 뒤 한화 마무리 투수 김서현과 포수 이재원이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td></tr><tr><td>ⓒ 연합뉴스</td></tr></tbody></table><br>아!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2005년부터 장종훈, 송진우, 박찬호 등이 차례로 은퇴하고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서 팬들은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 노래를 불렀다. 꼴찌 언저리가 편하게 느껴지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타팀 팬들에게 이글스는 '독수리'가 아니라 '치킨'으로 업신여겨졌다. '꼴찌하는 치킨'이라는 뜻으로 '꼴칰'이라고 불리는 수모를 당하고, 화나게 하는 2군팀 수준이라며 '화나 이군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br><br>이런 무시와 비아냥에도 나는 여전히 이글스의 옛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매년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나더라도 '믿음의 야구', 아니 '응원'이다. 사람들은 시즌 초반에 잘하다가 중반에 무너지면 "첫 끗발이 개 끗발이여"하기도 하고 초반부터 무너지면 "애저녁에 글러 먹었구먼"한다.<br><br>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이글스는 지난 5일 전반기 마지막 주말 키움과의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33년 만에 전반기 1위를 확정지었다. 외국인 투수 원투 펀치 폰세와 와이스, 그리고 류현진과 김서현 등 국내 투수들의 활약 덕분이다. 10번째 선수 한화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도 한몫했으리라.<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어쩐 일이랴! 해가 서쪽에 떴남? 독수리 둥지에 볕이 들어오네?"</span><br><br>요즘 이글스 팬들에게 금기어가 하나 있다. '고산병'이란 말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생기는 병인데, 시즌 초반 고공행진을 벌일 때, 너무 높은 순위를 달성한 것을 두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이 문구가 TV 중계에 잡힌 이후 연패에 빠지고 순위가 하락하자 팬들 사이에서는 입에 올리면 안되는 단어가 되었다. 그런들 어떠하리, 입에서는 그 말이 저절로 삐져나오는 것을. 웃음과 해학으로 인내하고 열정적으로 응원한 덕분에 갖게 된 행복인 것을.<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꼭대기에 있으니 어질어질 하구먼."</span><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아! 나는 고소증세가 왔는지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려고 혀"</span><br><br>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이글스의 찐팬으로, 또 원년부터 한국 야구를 사랑해 온 한 사람으로서,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날린다.<br><br><span class="cssFont" style="color:#996633;">"저~~기 아래쪽 분위기는 워뗘유? 꼭대기에 있으니께 잘 모르것구먼유. 그래도 참고 기둘려봐유. 불철주야 성심성의껏 응원하다 보믄 좋은 날 만나지 않것슈? 우린 가유. 우승을 향해서."</span><br> 관련자료 이전 MLB 탬파베이 김하성, 두 경기 연속 무안타…팀은 4연패 07-14 다음 '이경실 아들' 손보승, 139kg 체중 공개…살 빼랬더니 복싱대회 출전 [조선의 사랑꾼] 07-14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한 회원만 댓글 등록이 가능합니다.